맥스는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말썽꾸러기 소년입니다. 헝겊으로 빨랫줄을 만들어 인형과 이불 따위를 걸어놓고, 포크로 강아지를 위협하기도 하지요. 어른들에게 맥스는 골칫덩어리인 모양이에요. 오죽하면 괴물딱지 같다고 하겠어요. 맥스도 지지 않고 엄마를 잡아먹겠다며 으름장을 놓네요.
이 말썽꾸러기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화분과 잘 정돈되어 있는 침대를 마구 헝클어트릴 것 같지요? 깊은 숲 속에서 살 것 같은 늑대가 이렇게나 단정한 방안에 와 있다니요.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어른이 침범할 수 없게 된 이 공간에서 나무와 풀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그림책의 거장 모리스 샌닥 아저씨가 그리고 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는 거대한 꿈을 걷는 소년 맥스가 등장합니다. 왜냐고요? 끝까지 지켜보세요. 나무와 풀은 자꾸자꾸 자라나 세상 전체가 되잖아요. 맥스는 배를 타고 바다 위를 항해합니다. 사실 맥스는 마음만 먹으면 바다 위를 걸어 다닐 수도 있을 거예요. 모리스 아저씨는 눈치를 못 챈 모양이지요? 아무리 무서운 괴물들도 맥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늑대 옷을 입은 맥스는 천하무적이거든요. 모든 것은 소년의 뜻대로 흘러갑니다.
모리스 아저씨가 그린 괴물들은 꼭 한 땀 한 땀 직접 수놓아 만든 인형 같습니다. 커다란 눈과 입 사이로 삐져나온 송곳니마저 어쩜 그리 귀여운지 몰라요. 위화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괴물은 물리쳐야 할 적으로 설정되지만, 동화 속에서 괴물들은 아이들과 곧잘 손을 맞잡고 소동을 즐깁니다. 어쩌면 이 괴물들도 이걸 바라고 있었는지 몰라요.
괴물들은 놀아주길 원하는데, 대개의 어른들은 깜짝 놀라며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귀 기울이기보다는 삿대질을 먼저 하기 마련인데요. 이건 바로 '나'와 '너'를 가르고 규율과 법칙을 만들어 배우게 되는 사회화 과정의 일종이지요. 사람들은 이걸 '성장'이라고 부르고요.
맥스는 괴물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맥스의 세상에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규율 따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꿈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좁은 방 안에만 머물 수도 없겠고요.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겁니다. 아이는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갑니다. 맥스는 그림책이 끝난 이후에도 종종 거대한 꿈을 거닐게 될 거예요. 그러고는 다시 따뜻한 밥을 먹으러 방으로 돌아오겠지요.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이 그림책을 보니 제 오래된 꿈을 다시 들춰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현실보다 한 뺨, 아니 두세 뺨은 더 커다란 꿈 말이에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이 거대한 꿈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책은 괴물들과 놀 수 있는 짜릿한 모험이 될 수 있겠어요. 부모님들에게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고요.
맥스는 거대한 꿈을 걷는 소년입니다. 늑대 옷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늑대 옷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그 방법을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늑대 옷을 갖고 있나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기억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