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93회)

뇌공도(雷公圖) <5>

등록 2010.12.03 11:20수정 2010.12.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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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살피고, 역수(曆數)로 재상(災祥)을 살피는 게 주업무다. 이것은 인간이 사는 세상의 재앙과 상서로운 일에 대한 측정이기 때문이다.

최고 책임자인 영사(領事)는 영의정이 겸임하고 제조(提調)는 벽파와 시파가 각각 한 사람으로, 각 사(司)나 청(廳)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실제론 그 일을 맡아 다스렸다. 그렇다보니 크고 작은 일에 협잡과 궤계가 파벌을 따라 움직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순왕후의 천거로 제조 자리에 오른 송필원(宋弼遠)은 형조의 관리 오경환이 극구 추천한 인물로, 학문은 얇으나 앞뒤의 상황연출에 뛰어나 사도세자 묘역의 괴변을 주도한 공이 있다고 엄지를 내세울 인물이었다.

양주 배봉산 갑좌(甲坐) 언덕의 수은묘(垂恩墓)가, 수원부 관가 뒷산으로 옮겨온다는 얘길 듣자 때를 만난 듯 그의 머릿속이 춤추었던 건, 사도세자의 장지(葬地)가 '반룡농주형(盤龍弄珠形)'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단계나 아래인 부정(副正) 오창하를 불러 계책을 엮어나갔다.

"이 사람 오부정, 관상감에선 내명부의 위셀 뭐라 보는가?"
"봉(鳳)이지요."

"특성을 아는가?"
"봉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왕과 같은 격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조정에서도 흉배 등에 봉무늬를 놓았고, 왕궁이나 수레에도 봉을 꾸며 봉거(鳳車)니 봉궐(鳳闕)이라지 않습니까. 봉은 오색의 깃털을 지니고 있어 오음(五音)을 나타내며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신령스러운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면, 봉의 모양은 어떤가?"
"닭의 주둥이에, 제비 턱이고, 뱀의 목에, 거북이 등이며, 용  무늬에 물고기 꼬리를 갖춘 상상의 새입니다. 하온대 어찌 묻습니까?"


"가만, 용(龍)은 어떤가."
"중원의 옛 문헌 <광아(廣雅)>에 의하면, 용은 다른 짐승과 비슷한 아홉 가지 모양이 있다 했습니다. 머리 생김은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했습니다. 용의 비늘은 양(陽)의 수인 여든 하나가 있는데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銅盤)을 울리는 것 같고, 입 주위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 명주(明珠)가 있으며, 목 아래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습니다."

"머리 위엔 박산(博山)이 있다 들었는데, 아는가?"
"중원의 전설에 나오는 신령스런 산이지요. 이것은 용의 권위와 길상의 상징으로, 왕실에선 주로 전하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이것 때문에 용은 조화능력이 무궁한 것으로 알려져 수신(水神)으로 추앙받았다. 용은 물에서 낳으며 작아지려면 번데기처럼 작아질 수 있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덮을만큼 커질 수도 있다.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로 치솟을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도 있다.

관자(管子)는 '수지편(水地篇)'에서 용은 '변화무일(變化無日)하고 상하무시(上下無時)한 신'과 같다고 했으나 송길원의 생각은 달랐다.

용이 구름 위로 치솟을 수 있는 것도 또는 천하를 덮을만큼 커질 수 있는 것도 혼자만의 뜻대론 어림없다는 얘기였다. 상감이 보위에 앉을 수 있었던 건 그를 도울 수 있는 벽파의 중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약하고 여리디여린 용이 어느 정도 힘이 살아돋자 이제까지의 모든 걸 거부한 것이다. 송길원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도세자의 천장지에 계책을 불어넣은 것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조정은 하루아침에 시파(時派)쪽으로 넘어가고 벽파(僻派)의 옛 영화는 가끔 회자될 따름이네. 자네와 나는 정순왕후가 관상감에 밀어 넣었지만, 처음관 달리 마마께선 조정의 평안을 위해 욕심 부리지 않고 전하의 뜻을 따르니 벽파 중신들이 의혹의 눈길을 던질 수밖에 없잖은가!"
"아, 예에."

"더구나 전하께선 세상을 뜨신 사도세자의 권위를 회복시켜 수은묘를 영우원으로 바꾸고 이장(移葬) 한다지 않은가. 장소가 수원부의 관가 뒷산인데다 천장지(遷葬地)는 '누운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반룡농주형(盤龍弄珠形)이란 명당이야. 내가 관상감의 여러 감여들에게 흘린 말이 있네."

"무슨···, 말씀이신지?"
"하늘이 내린 혈(穴)자린, 일단 와겸유돌(窩鉗乳突)을 살펴야 한다고 말이야. 굳이 사상(四象)을 빗대 그런 말을 한 것은 천장지를 둘도 없는 음란한 곳으로 만들려는 계책이었는데, 그 일이 어떻게 밖으로 새어나갔는지 해미현에 유배된 정약용을 불러 올리는 등 상감의 움직임이 빨라지지 않았는가."

송필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무거운 신음소릴 꾸욱 삼켰다. 자신의 비계(秘計)가 너무 쉽게 깨뜨려진 것이다.

<조종산(祖宗山)이라 부른 땅의 머린 여인네의 머리 부분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작은 줄기가 두 개의 봉우릴 만들어놓는다. 그 밑에 평야와 우물이 있고 다시 뭉치면 주봉에 해당하는 불두덩이다. 그곳에서 좌청룡 우백호인 양쪽 다리를 만나 공작새처럼 날개를 펴 따르게 하고 팔자(八字)로써 태를 이루고 음핵 끝을 살짝 들고 잉(孕)이라는 요도구를 만든다. 대음순을 양편으로 가르고 그 난간에 소음순이란 육(育)을 그어 물을 떨궈내리며 전음순교련을 내고 그 밑에 질구를 맺어 자손들이 꿇어앉을 대전정선을 마련하고 후음순교련으로 혈자리를 감싸니 이것이야 말로 명당인 셈이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 난삽한 일인가. 특히 사상(四象)으로 통하는 '와겸유돌(窩鉗乳突)'은 여인의 은밀한 곳(陰貝)을 나타내는 네 가지 유형이었다.

첫째는 '와(窩)'니 더러는 얕거나 기우는 모습이고, 둘째는 '겸(鉗)'이니 간혹은 횅하게 열리거나 다물고 있으며 죄임새가 강하거나 주름져있다. 셋째는 '유(乳)'니 길쭉하게 내밀거나 경사가 심해 두두룩한 모습이며, 넷째는 '돌(突)'이니 높거나 낮게 또는 나지막이 솟아있는 유형이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의 기운으로 간룡척(看龍尺)이란 지남쇠를 만들어 사도세자의 천장지로 보냈는데 한결같이 그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송필원은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쉬며 꼬리를 달았다.

"이 일은 벼슬길에서 쫓겨 난 옛 중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순왕후가 허락하신 일이었네. 그런데 대전별감에게 사가의 옷을 입혀 도둑행세를 하며 흔적을 지우려는 건 이 일을 전하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게야."
"예에?"

"그러니 내가 더는 관직에 있을 수 없네. 이 길로 자취를 감출 것이니 오부정은 관상감이 번잡스런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아랫사람들을 잘 단속해 주게."

서둘러 자리를 뜬 송필원과는 달리, 이번 일이 모두 대비전에서 깊이 관계하고 있음을 오창하는 알아차렸다. 그렇다 하여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실마리는 없어 밤늦도록 관저의 자리를 지키며 묘책을 강구해 나갔다.

이와 같은 시각, 사헌부를 찾아 온 김덕성 화원은 해가 진 유시 어림에야 상감을 독대하고 돌아온 정약용을 만날 수 있었다.

"소인이 나으릴 찾아 온 것은 드릴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 하시게."

"이 번 일에 대전별감(大殿別監)이 나선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며 왕명을 전해야 할 자가 무슨 이유로 궁밖에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관상감의 별제 오치성(吳致星)이 전하께 주청드린 일 때문입니다."

"그 사람, 시파(時派)쪽 인물이잖은가?"
"그렇습니다. 그 분은 세자마마가 소인에게 하신 약속을 알고 계십니다."

"약속이라···."
"저들은 세자마마를 '죽은 용(死龍)'의 자리에 묻어 결코 발복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할 것이니, 마마께선 천둥 번개를 일으켜 용이 잠 들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구만."

가만히 뇌까리던 정약용의 낯도 무거웠다. 김덕성은 메마른 입술에 침 바르고 뒷수쇄를 붙였다.

"세자마마께선 뒤주에 갇히시기 전 이미 죽음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러했기에 소인에게 <벽화지매(壁畵枝梅)>를 그리게 하신 것입니다. 벽파 쪽에선 세자마마가 소인에게 특별한 일을 맡기신 것이라 보고 여러 모로 살핀 것 같습니다만, 소인은 관상감의 오별제 어른의 당부처럼 주야로 <뇌공도>를 그려왔기에 목숨을 부지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자마마가 살아생전, 유난히 천둥 번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소인이 <뇌공도>를 그리자 정순왕후는 그림에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이라 여겨 자신의 전각에 들어온 초란(草蘭)이란 궁인을 남별감에게 보내 사실을 알아오게 한 것 같습니다."

"소득이 있었는가?"
"없었을 것입니다."

"초란은 지금 '사포루(司圃樓)'의 주인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정순왕후에게 전해야 할 소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두고 보는 건 자신들이 거느린 중인이나 하속배들의 연락장소로 쓰기 위함입니다."

"허면, 역촌 숲길에서 화살 맞아 죽은 자는 누군가?"
"정순왕후가 보낸 목밀녀(木蜜女)와 관계있다 보옵니다."

"뭐라, 목밀녀? 화원께선 목밀녀가 어떤 여자인지 아는가?"
"대추받이 여자로 알고 있습니다. 후손을 잇지 못하는 사내에게 여인을 내려 자식을 갖게 하는 것으로, 조선 양반들이 별당에 여인을 머물게 하여 은밀한 곳에 다섯 알 남짓 대추를 넣어 그것을 퉁퉁 불려 사내가 먹고 양기를 돋우게 하는 비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촌의 살인은 그로 인해 일어났단 말인가? 예전(禮箭)을 사용한 걸 보면 이번 살인사건은 궁안 사람의 소행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의심이 가는 건 대전별감인데, 그 자가 노리는 인물이라면 세상을 뜬 사도세자와 관계있는 인물이 아닌가?"

[주]
∎비계(秘計) ; 은밀한 계책
∎목밀녀(木蜜女) ; 대추받이 여자. 조선의 양반들이 후손을 얻고자 이용한 여인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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