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의 주검(尸)은 널브러진 채 천장을 향해 누워있었고 그 곁엔 닷되들이 나무통 셋이 나뒹굴었다. 상흔이 없는 시첸 안색이 푸르고 매우 검었다. 이런 사내의 주검을 신고한 자는 전후풍(纏喉風)을 앓으며 하룻밤 잠자릴 구하려 역촌 주변을 서성이던 비렁뱅이 사내였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간 정약용이 초가(草家) 주위의 다섯 걸음 밖에 금역을 설치하자 비렁뱅이 행색의 사내는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소인이 이곳으로 향했을 때 웬 사내가 급히 아랫길로 내려오는 걸 봤습니다. 여차했으면 부딪칠 뻔하여 재수없는 놈이라고 푸념을 터뜨렸습니다만, 들었는지 아니 들었는지 횅하니 사라졌습니다."
"나이는 어찌 보이더냐?"
"스물은 넘고, 서른은 안 돼 보였습니다."
얘기를 하는 중에 서과는 안으로 들어와 죽은 자의 검안에 들어갔다. 외진 곳에 사는 사내일수록 머리 위의 정심(頂心)을 살피는 게 기본이지만 다행히 그곳은 깨끗했다. 이따금 정심에 대갈못이 박힌 시신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서과가 잠깐 밖으로 시선을 준 사이 동행한 오작인(仵作人)은 사체의 항문을 살폈다. 그곳에 딱딱한 물건이 박히지 않았나 싶어서였지만 그곳도 깨끗해 서과를 바라보며 아래턱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뜻이었다. 서과가 주검 가까이 다가서자 정약용의 말이 떨어졌다.
"안색이 푸르고 검은 것으로 보아 타살이 분명하다. 낯은 어쩐가?"
"얼굴 한쪽이 부은 것 같습니다."
"부었다는 건 뭘 말하는가?"
"어떤 물건으로 입과 코를 막히거나 덮거나 눌려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상흔이 보이지 않는 건 무슨 이유인가?"
"수건이나 자루 등으로 목졸라 죽은 경웁니다."
"다른 곳은 조사했느냐?"
"예에, 머리 윗부분의 살이 단단한지, 또는 죽은 자의 손과 발에 결박이 있는질 살폈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혀는 어떤가?"
"혀를 깨물어 으깨진 상처가 있는질 살폈으나 별다른 이상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작인(仵作人)은 대·소변을 보는 두 곳이 밟혀 부어오른 흔적이 있는지도 살피고, 입안에 거품이 있는지, 목구멍이 부어올랐는지를 살폈으니 이상 없었다. 그렇다면 사체가 죽음에 이른 경운 뭔가? 정약용이 생각에 빠져들자 사내의 고의춤에서 네 겹으로 접은 얄따란 종이쪽지를 서과가 꺼내들었다.
씌어있는 내용으로 보아 그것은 망월사(望月寺)에 있는 여승을 한강변에서 본 어떤 사내가 우연히 동대문까지 동행하여 여승에게 구애한 내용이었다. 처음 본 여승의 미모에 반해, 들뜬 심정으로 쓴 가사였는데 어떤 연유에선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두미(斗尾) 월계(月溪) 좁은 길에 남 없이 둘이 만나
추파를 보낼 적에 눈엣가시 되었는가
광나루 함께 건너 마장문(馬場門) 돌아들 때
그의 가는 길이 남북으로 나뉘었소
단순호치(丹脣晧齒) 반개(半開)하고 삼절죽장 잠깐들어
평안히 행차하시오, 후일 다시 보사이다
말가죽 잡고 바라보니 한없는 정이로세
아장아장 걷는 걸음 가슴에 불이 난다
한 걸음 두 걸음에 길이 점점 멀어가니
이전에 걷던 말(馬) 어이 그리 빨라졌나
여승을 보고 얼마나 반했는지를 고백한 내용이다. 곳곳에 금줄을 쳐 외인이 함부로 들어오는 걸 차단하고 사체를 사헌부로 이송시킨 후, 정약용은 <승가(僧歌)>란 서책을 뽑아들었다. 거기엔 <승가>의 창작과 가사가 나오게 된 배경과 동기가 나와 있었다. 눈이 띄는 게 '삼첩승가(三疊僧歌)'로 세 편의 스님 노래란 뜻이다.
그곳에 나오는 남휘(南徽)란 도사가 젊은 시절 길을 가다 여승을 만났다. 그는 돌아와서도 잊지 못해 긴 노래를 지어 사랑하는 마음을 호소했다. 여인도 답하는 노래를 지어 세 편의 가사를 주고 받았는데 이후 여인은 머리를 기르고 남휘의 첩이 돼 한세상을 같이 했다. 훗날 임천상(任天常)이란 학자가 <시필(試筆)>이란 책에 쓴 내용은 이러했다.
<···도사 남휘는 용맹하고 지략이 있으며 의기를 좋아했다. 소싯적에는 방탕하게 놀기를 즐겨 자제하지 않았다. 언젠가 여승을 만났는데 몹시 아름다워 <승가>를 지어 그녀를 유혹했고 마침내 집에 데려 와 첩을 삼았다. 지금 세상에 전해지는 <승가>가 바로 그 작품이다.>
정약용은 가사의 내용을 살피다 이마를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승가>가 끝난 가장 아래쪽에 지워질 듯 말 듯 목탄으로 휘갈긴 동그라미를 친 '7'이란 숫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관측대 위의 주검을 검시하던 오작인이 낯이 질린 채 뛰어들었다.
"무슨 일인가?"
"나으리, 잠깐 오셔야겠습니다."
재우쳐 묻기도 전에 오작인은 숨 가쁘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어찌된 셈인지 죽은 자는 고환(睾丸)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고환이 없다니?"
서둘러 주검 앞으로 다가서니 역시 사체엔 고환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초탕(醋湯)을 끓이게 한 후 요해처(要害處)를 찾아나섰다. 사헌부까지 따라와 다시 한 번 증언을 해 주던 비렁뱅이가 돌아간 뒤지만, 현장엔 술 냄새를 풍기는 나무통 세 개가 구석에 놓여 있었다.
오가다 잠시 스친 사내에게서 술 냄새를 맡을 수 없었지만 닷되들이 나무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방 안에서 서로들 술을 마셨을 것이다. 죽은 자는 물론 상대방도 술을 먹었으리란 생각은 변함없었다. 만약 술을 마시다 싸움이 일어났다면 상대는 크게 취했으니 얻어맞고 기절한 상태에서 죽은 것이다. 얼굴 한쪽이 부은 건 수건이나 자루 등으로 덮어 눌렀기 때문이다.
"나으리, 초탕이 끓었습니다."
오작인이 멈칫거리자 정약용의 말이 다시 떨어졌다.
"의복과 솜에 초탕을 묻혀라!"
정약용은 그것을 받아 사체(死體)를 한 식경(食頃) 가량 덮어둔 후, 오작과 항인에게 배 아래를 주무르게 하자 신기하게도 사라지고 없던 고환이 뱃속에서 내려온 게 아닌가.
사헌부 서리배들과 죽은 자의 신원파악에 나섰던 서과가 관아로 들어온 건 이때쯤이었다.
"나으리, 죽은 자는 장안의 왈자 임찬호(林贊鎬)로 장안 기루의 기둥서방이랄 수 있는 쓰레기로 알려진 잡니다. 기루에서 내쫓기자 색주가(色酒家)를 출입했는데 주사가 워낙 거칠어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답니다."
"장안 한량이 술집에서 쫓겨났다면 어디 가서 뭘 한단 말인가?"
"언변이 좋아 그런대로 바빴던 모양입니다. 요즘엔 강정이 어떻고 비약이 어쩐다는 둥 듣기에도 난감한 약초이름을 들먹이며 힘께나 쓰는 자들의 집을 드나든 모양입니다. 그 자는 유난히 '일곱(7)이란 숫자를 강조했답니다."
"일곱?"
"들리는 얘긴, 기방에서 쫓겨나자 임찬호는 망월사(望月寺)의 여승 월계(月溪)를 만나려고 한강변에서 서성이던 게 부지기수였답니다."
"왜?"
"그 여승은 이제 열여덟인데 음기가 성해 목밀녀(木蜜女)로 쓰기엔 적격이란 것이지요. 그 자가 여승을 이용하려 했던 건 팽조비방(彭祖秘方) 때문입니다."
중원의 전설에 의하면, 팽조는 황제 왕조의 6대손으로 8백세까지 장수를 누린 인물이다. 그가 이렇게 장수를 누린 것은 들닭(野鷄)을 일미로 끓이는 재주가 뛰어나 장수비법을 남겼기 때문이다. 팽조가 말한다.
"정력을 절제하여 낭비시키지 말며 정신 수양에 힘쓰면서 여러 약을 복용하면 자연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합금(合衾)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소용없다. 남녀가 서로 건강을 유지해 나간다는 건 마치 하늘과 땅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하늘과 땅은 올바른 교합의 도리를 알고 있는 관계로 영원히 종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올바른 교합의 법을 지나쳐 버리므로 점점 수명이 단축되어 간다. 남녀가 음양 화합을 유지시킬 합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불사(不死)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비방이, 허약한 사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음양의 비방 '7'이었다. 정약용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가만, 죽은 임찬호가 끼적인 <승가>의 말미에 쓰인 숫자가 그걸 말하는 게 아닌가. 여승을 꼬드긴 글귀에 망측한 숫자를 써놓은 건 뭐란 말인가?'
[주]
∎합금(合衾) ; 섹스
∎전후풍(纏喉風) ; 목구멍 속에 바람이 들어와 부어오른 병
∎오작인(仵作人) ; 시체를 검시하던 사령
∎항인(行人) ; 사헌부 서리배를 따라온 길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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