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26)

― '훗날의 알아봄', '대통령의 뒷배' 다듬기

등록 2010.12.07 14:36수정 2010.12.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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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훗날의 알아봄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훗날의 알아봄을 위한 것이다 ..  <노블 앤 뽀또그라피>(진동선, 시공사, 2005) 122쪽

 

'후일(後日)'이라 하지 않고 '훗날'이라 적으니 반갑지만, '뒷날'이나 '나중'으로 적는다면 한결 낫습니다. "알아봄을 위(爲)한 것이다"는 "알아보고자 하기 때문이다"나 "알아볼 생각이기 때문이다"로 다듬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은 "사진을 찍는 까닭은"이나 "사진찍기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 훗날의 알아봄을 위한 것이다

 │

 │→ 나중에 알아보고자 하는 일이다

 │→ 나중에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 …

 

이 보기글을 살피면 어렵다 할 만한 낱말은 따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쉬 헤아릴 만하지는 않습니다. "사진의 촬영(撮影)이라는 것"이라 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라 했으나 바로 뒤에서는 "훗날에 알아보는"이라 하지 않고 "훗날의 알아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라든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가 아닌 "알아봄을 위한 것이다"처럼 적바림하며 우리 말투를 버리고 번역 말투를 씁니다.

 

한국사람이니 한국말로 내 생각을 밝히고 내 뜻을 적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한국사람이 읽도록 밝히거나 적는 글인지 알쏭달쏭하기 일쑤입니다. 나와 같은 한국사람이 읽도록 한국말로 내 느낌을 나타내고 내 마음을 담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들이 오늘날 쓰고 있는 한국말이란 얼마나 한국말답다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찌 보면 글쓴이는 이 보기글을 "사진의 촬영이라는 것은 미래의 인식을 위한 것이다"쯤으로 적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에는 이처럼 말할는지 모릅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이런 모양으로 글을 쓸 수 있고요. 그나마 몇 가지 한자말을 안 쓰고 토박이말 '찍다-알아보다'를 써서 고맙다 할 수 있습니다만, 낱말을 알뜰살뜰 잘 골라서 썼어도, 낱말을 엮는 짜임새가 우리 말답지 않다면 도루묵입니다. 낱말을 하나씩 따로따로 내뱉는다고 말이나 글이 되지 않는 만큼, 낱말을 올바르게 엮고 알맞게 자리를 잡으며 슬기롭게 생각을 풀어야 합니다.

 

 ┌ 사진을 찍는 까닭은 뒷날에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나중에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 사진찍기는 나중에 알아보려고 하는 일이다

 ├ 사진찍기는 나중에 알아보려고 한다

 ├ 사진은 나중에 알아보려고 찍는다

 ├ 사진은 뒷날에 알아보고 싶어 찍는다

 └ …

 

괜히 어렵게 쓸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굳이 비비 꼴 일이 없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쓸 글이요, 꾸밈없이 펼칠 말입니다.

 

내 이웃을 헤아리며 쓸 글입니다. 내 동무를 살피며 펼칠 말입니다. 내 살붙이를 사랑하며 쓸 글입니다. 내 겨레붙이를 섬기며 펼칠 말입니다.

 

나락 한 알에도, 낱말 하나에도, 흙 한 덩이에도, 눈물 한 방울에도 온누리 모든 넋과 얼이 고이 깃듭니다. 우리는 온누리 모든 넋과 얼을 느끼며 받아들일 너르고 깊은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ㄴ. 대통령의 뒷배

 

.. 따라서 그 여배우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활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대통령의 뒷배 덕분이었다 ..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히로세 다카시/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2010) 89쪽

 

'활보(闊步)할'은 '나다닐'이나 '굴'이나 '움직일'이나 '돌아다닐'이나 '다닐'이나 '뽐낼'로 다듬고, "있었던 것도"는 "있었던 까닭도"로 다듬습니다. '덕분(德分)'은 그대로 두어도 되며, '탓'이나 '때문'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 다 이런 대통령의 뒷배 덕분이었다

 │

 │→ 다 이런 대통령 덕분이었다

 │→ 다 이런 뒷배 덕분이었다

 │→ 다 이렇게 대통령이 뒷배한 탓이었다

 │→ 다 이렇게 대통령이 도왔기 때문이다

 └ …

 

토박이말 '뒷배'는 "겉이나 앞에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보살피는 일을 가리킵니다. 우리 말은 '뒷배'이고, 한자말은 '후원(後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말 '뒷배'를 잘 헤아리면서 알맞게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들 한자말 '후원'을 쓸 뿐입니다. 비슷한 뜻으로 '협찬(協贊)'이나 '찬조(贊助)'나 '지원(支援)'이나 '협조(協助)'나 '후견(後見)'만을 쓰고 있습니다. 더러 '도움'이라는 우리 말을 쓰는 분이 있으나, 거의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으레 쓰면서 흔히 쓰는 말이 되고, 흔히 쓰면서 깊이 뿌리를 내리는 말이 됩니다. 토박이말이든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쓸 만하니까 쓰기도 하지만, 그닥 쓸 만하지 않으면서도 둘레에서 으레 쓰니까 덩달아 쓰는 가운데 손에 익고 눈에 익으면서 뿌리내리곤 합니다. '뒷배' 같은 낱말을 한 번 쓰고 두 번 쓰며 차츰차츰 손에 익히고 눈에 익힌다면 차근차근 뿌리내릴 수 있는데, 이러한 낱말을 알맞게 즐겨쓰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더욱이 이 보기글을 돌아보면, 애써 '뒷배'라는 낱말을 잘 살려서 썼으나 토씨 '-의'를 붙이고 맙니다. 낱말 하나에는 마음을 기울였지만, 말투 하나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여태껏 낱말이며 말투이며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다가 낱말 하나에 마음을 기울였으니 앞으로는 한결 나아지리라 생각한다면 반가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 말과 삶과 넋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면서 땀을 들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올바로 말할 뿐 아니라 올바로 살고 올바로 생각해야 합니다. 알맞게 말할 뿐 아니라 알맞게 살고 알맞게 생각해야 합니다. 슬기롭게 말할 뿐 아니라 슬기롭게 살고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곱거나 바른 말에서 그치지 말고 고우며 바른 삶을 헤아리며, 고우며 바른 넋을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 그 여배우들은 다 이런 뒷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나다닐 수 있었다

 ├ 그 여배우들은 다 대통령이 뒷배했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뽐낼 수 있었다

 ├ 그 여배우들은 다 이렇게 뒷배했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 …

 

이 보기글은 글짜임을 살짝 손질하면서 토씨 '-의'를 덜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기글 글짜임이 엉성하기 때문에 토씨 '-의'가 끼어들었다 할 수 있고, 부드럽거나 매끄러운 우리 말투하고 동떨어진 탓에 토씨 '-의'가 달라붙는다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다스려 알맞춤하게 적바림하는 우리 말 우리 글일 때에는 토씨 '-의'가 엉뚱하게 붙는 일이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2.07 14:3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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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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