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 미국에만 일자리 만들 것"

[인터뷰] 전 현대자동차 사장,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

등록 2010.12.10 10:54수정 2010.12.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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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업계 입장에서만 보면 바로 없어질 예정이었던 관세가 4년 연장되면서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도 아예 (FTA를) 안 한 것보다는 이익이다. 하지만 이제 다국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 국민의 이익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은 전 현대자동차 사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협상'이라고 할 만큼 자동차 분야에 변화가 많았던 이번 한미 FTA 재협상 결과에 대해 "FTA를 안 한 것보다는 나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관세철폐가 4년 동안 유예되면서 당장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줄었지만 결국에는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이 이사장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온 것이다. 그는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항상 연결된다고 볼 수 없다"며 "미국에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결과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가운데 한미FTA를 반대한 몇 안 되는 의원 중 한 명이다. 그는 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마무리된 한미 FTA 재협상 결과에 대해 말할 때도 이 점을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최초 협상시기부터 우리나라가 손해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FTA 경험을 충분히 쌓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성급하게 진행된 한미 FTA에 대해 반대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또 이번 재협상과 관련해 "안보 위기 상황조지워싱턴호의 포격 아래서 한 협상"이라며 "애초에 4대 선결 조건(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쇠고기 재수입, 의약품 제도 개선)을 내주고 했던 최초의 협상이 잘못이지만, 그것과 비교했을 때도 이번 재협상은 실패한 협상인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FTA 재협상, 실익을 논한 협상으로 생각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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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실에서 한미FTA 재협상 결과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 이번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 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간단하게 총평을 한다면?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무역협상이 어려워지고 FTA를 통한 양자간 협상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 우리나라가 무역확대를 통해 성장해온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 때, FTA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맺을 수 있다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미 FTA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힘에 밀릴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가능하다면 다른 나라와 연습을 충분히 하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4대 선결 조건을 내주고 협상을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협상하는 것은 협상의 방법에서부터 틀렸다는 생각에 최초의 한미 FTA 협상 때부터 반대해 왔다.

특히 이번 재협상은 단기적인 이익에 있어서 분명히 지난번 협상보다 후퇴한, 손해나는 협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연평도 사태로 인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조지워싱턴호의 포격 아래서 협상한 것이다. 김종훈 본부장도 안보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을 보면 어떤 실익을 두고 한 협상이라고 볼 수 없다."

- 이번 자동차협상에서 핵심은 미 자동차 관세 즉시철폐가 양국 모두 4년으로 유예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산 자동차 값이 미국에서 그만큼 가격을 내리는 시기가 미뤄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수출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국산 자동차의 가격경쟁력 부분에서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것을 4년 후로 연장했다는 점에서 분명 손해다. 하지만 당장 이익이 줄어든 것만 보기보다는 그 안에 숨은 메시지를 봐야 한다. 이 협정에 재밌는 부분이 있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철폐는 그대로 두고 완성차만 4년 후로 연장했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 완성차도 싼 한국산 부품을 가져다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부품만 들여와서 미국에서 조립을 하면 관세 혜택을 볼 수 있으니 한국에서 완성차를 만들지 말고 미국에 조립공장을 세워 일자리를 만들라는 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점에서 단순히 관세를 철폐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4년의 유예기간을 두면서 그동안 어떻게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 미국에만 일자리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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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 ⓒ 블룸버그=연합뉴스


- 말씀하신 대로, 현대기아차는 미국 공장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이미 현지생산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이번 한미 FTA 결과를 두고도 일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현지생산 증가'에 따른 국내 직접 수출물량이 줄어들면서, 고용악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 우려에 대해 부인하기 어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에 들어가는 국산 부품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그러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차량과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가격 차이가 점점 커지면서 한국에서 완성차를 만드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국내 자동차 공장의 가동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FTA를 통해 국내에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미국에만 일자리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국가와 기업 간의 이해상충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미국에만 일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현대자동차는 손해 볼 게 없다. 오히려 이익일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은 다국적 기업이 됐고, 그 기업의 글로벌매니지먼트를 국가가 하는 면에서 과연 기업의 이익이 대한민국의 이익으로 올 것이냐는 부분은 다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 또 이번 협정이 발효될 경우 미국산 자동차뿐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 자동차들의 국내 시장 접근도 그만큼 쉬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산 자동차의 미국을 통한 우회수출 물량이 더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도 도요타의 렉서스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만든 차량이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이 들어온다.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경우 미국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밀려 들어와도 그렇게 많이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차나 유럽차가 미국에서 생산돼 싸게 들어온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 차를 미국차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이번 협상 가운데 자동차에 대한 특별 세이프가드도 도입됐다. 한국차 수출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게 되면 15년 동안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한 번도 자동차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발동한 적이 없다"며 무마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우려되는 지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에서 무의미한 것을 협상할 필요가 뭐가 있나? 오히려 이러한 조항 때문에 자동차 업계가 현명한 대처를 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분쟁이 있을 때 미국이 일본차에 대해 자율규제를 하면서 수입량을 소형차 200만 대로 한정 지었다. 그러자 일본차들은 중대형 차량으로 치고 올라갔다. 이런 식으로 그러한 규제가 걸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회피해서 갈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미국 내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가가 협상을 한다면 세이프가드 조항에 대해 이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 과거에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미국 공무원들을 바보로 알고 하는 이야기다"

"환경기준 양보는 미국 패권주의에 굴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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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 현 2.1연구소 이사장 ⓒ 유성호


- 안전기준(미국 안전기준만 통과해도 판매가 가능한 차종 기준, 판매량 6500대 미만에서 2만5천대 미만으로 기준 완화)과 환경규제(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한국 기준의 19% 초과 허용)에서도 후퇴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이것이 가장 창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안전기준과 환경규제 부분을 내줬다는 것은 미국의 패권적인 전술에 우리가 굴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내 소비자들의 안정성과 국내 환경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건 물론이고, 미국이 교토협정을 따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환경 기준마저 없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협상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환경기준이 더 엄격하다는 것인데 엄격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 인류의 최대 과제인 환경문제에 미국이 가진 패권주의가 드러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 정부와 업계에선 대체로, 이번에 자동차에서 일부 후퇴했다고 하더라도, 대형위주의 미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이 우리 자동차나 유럽 등과 비교해서도 떨어진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별 영향이 없다고도 한다. 전직 현대자동차 CEO로서 미 자동차의 경쟁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자동차의 성능이 IMF 이후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자동차 업계의 과제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연비를 얼마나 높이는 가이고, 두 번째는 환경 차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GM이나 포드 등 미국차에 비해 연비문제나 환경문제에 뒤지지 않았지만 현재 뉴GM이 말하는 전기차, 또 포드가 말하는 하이브리드차와 비교해 말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가 결코 자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문제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극복할 문제이지 보호해야 할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GM이 망한 이유가 좋은 차를 만들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엄격한 환경기준에 맞추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동안 GM은 그 기준을 낮추는데 돈을 쓰며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후 공적자금을 통해 구제받은 GM은 현재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현재의 GM이다. 지금 미국차가 경쟁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고 본다."

- 이번 협상 결과대로 발효됐을 경우 미 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나 향후 전망은 어떻게 예상하며, 우리 업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가?
"미국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신뢰가 쉽게 높아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차, 유럽차에 대한 소비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국내 자동차시장이 현대기아자동차의 독점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가격정책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이런 부분도 과도한 독점상태에서 발생한다. 지금처럼 국산차량의 가격이 계속 올라간다면 문제가 된다. 한미 FTA 실효 이후에는 소비자들의 애국심에 기댄 구매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한미 FTA 재협상에서 자동차 분야만 놓고 봤을 때는 아예 FTA를 안 한 것보다는 이익이 있다고 볼 수는 있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에게는 분명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한미 FTA 자체에 대해, 또 이번 재협상의 성과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할 수 없다."
#한미FTA #한미FTA 재협상 #이계안 #현대자동차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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