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부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자 야당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졸속심사 예산파행 국민 앞에 사죄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정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유성호
하지만 한나라당 스스로 약속한 템플스테이와 양육 수당 확대 예산까지 챙기지 못할 정도로 앞뒤 가릴 새가 없었던 날치기 법안처리 과정에서 이 같은 예결위 결정은 깨끗이 무시됐다. 덕분에 정부는 사실상 물건 너 갔던 예산 50억 원을 확보하는 횡재를 했다.
결식 아동의 방학 중 급식비 218억 원을 전액 삭감한 한나라당이 아이들 배는 곯리면서 '여사님'의 허울 좋은 한식 세계화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굳이 한식당을 세우려면 한식당이 없는 불모지에 세워야지 훌륭한 한식당이 많은 뉴욕에 왜 정부가 나서느냐"(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뉴욕 자본주의 시장 한 복판에 국가가 운영하는 한식당을 세우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라는 야당 비난은 덤이다.
하지만 이처럼 날치기에도 무능함을 보인 한나라당은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급기야 사찰에 '한나라당 의원 출입 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필수 민생 예산 삭감에 따른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자리를 내놓는 선에서 파문을 덮으려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나마 고흥길 의장 사퇴는 그 진정성도 의심 받고 있다. 국회 기능을 완벽히 무력화 시킨 '의회 쿠데타'로 평가 받는 이번 예산안 날치기에 대해 반성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사퇴는 이번 예산안 졸속 처리로 '좌파 주지' 발언 때문에 척을 진 불교계와 관계 개선이 물거품이 됐고, 또 소득 하위층 70% 복지를 외쳤지만 예산은 확보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안상수 대표의 심기를 거스른 '죄 값'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고 의장과 러닝메이트인 김무성 원내대표는 "(예산안 단독 처리가) 국가를 위한 정의"라는 말 한마디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형님·실세 예산에 당당한 고흥길, 진정성 없는 사퇴고 의장 자신도 사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비난 여론이 높은 형님, 실세 예산에 대해서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금년 뿐 아니라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것은 관례"라며 "지역 출신 의원이 자기 지역 사업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고 의장의 '소신'대로 한나라당이 예산을 심사한 결과가 지역 편중에 실세와 대통령 측근 챙기기가 돼버린 것은 '안바도 비디오'였다.
실제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증액된 151개 사업 4613억 원의 예산 배분을 살펴보면 경남 700억 원(38건), 부산 293억 원(12건), 울산 29억 원(4건) 등 'PK 예산'은 1012억 원, 대구 277억 원(11건), 경북 1795억 원(13건) 등 'TK 예산'은 2072억 원에 달하는 등 영남지역 예산이 전체 예산 증액분의 66.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호남은 2건 55억 원이 증액됐고 충청 지역은 1건, 5억 원이 증액되는 데 그쳤다.
특히 한나라당의 예산 증액 자료에는 예결위원 이름 밑에 '강만수 위원장'이라고 적힌 항목(고현·하동IC 확장·포장 사업 등 경남 예산 5건 82억 원)도 포함돼 있었다.(11일자 <경향신문> 보도)
그럼에도 고 의장의 사퇴의 변에는 날치기 와중에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민원성 예산까지 챙겨준 것에 대한 일말의 문제 의식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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