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 팔려갈 뻔한 미륵암 석불입상

영험으로 인해 제자리를 지키다

등록 2010.12.17 10:00수정 2010.12.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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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입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5호 남원 미륵암 석불입상 ⓒ 하주성

▲ 석불입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5호 남원 미륵암 석불입상 ⓒ 하주성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는 '미륵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앞쪽에 건물이 없어 도로에서도 찾기가 수월하다. 미륵암은 전각이 3곳에 요사 정도가 있는, 산 밑에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암자이다. 절을 찾아들어 가다가 보면 입구 양편에 목장승이 서 있다. 절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는 듯하다.

 

미륵암에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5호인 '미륵암 석불입상'이 있다. 미륵암에 들어가면 좌측으로 요사가 있고, 앞으로 용화전이 보인다. 바로 석불입상을 모셔 놓은 전각이다. 이 건물은 1927년 미륵암 신도들이 기금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미륵입상이 노천에 서 있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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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미륵암 석불입상은 안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 하주성

▲ 안면 미륵암 석불입상은 안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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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가슴에는 두 팔을 모은 듯하다. ⓒ 하주성

▲ 가슴 가슴에는 두 팔을 모은 듯하다. ⓒ 하주성

고려초기의 일석으로 조성 된 석불입상

 

미륵암 석블입상은 온전한 형태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안면은 심하게 마모가 되었다. 아마 오랜 세월 풍상에 훼손이 된 듯하다. 미륵암 석불 역시, 석불입상과 뒤에 광채를 표현한 광배가 한 돌로 만들어졌다. 남원 지역의 거의 모든 석불입상들이 이렇게 일석으로 제작이 된 것을 보면, 이 지역의 특징인 듯하다.

 

미륵암은 통일신라 때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한다. 미륵암에 모신 석불입상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때 세웠다는 미륵암은 흔적도 없다. 다만 현재의 대웅전을 세우려고 기초공사를 할 때 예전의 와편 등이 많이 발굴이 되었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을 모르고 다 없앴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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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법의가 다리부분에서 양편으로 갈라져 U자 형으로 표현되었다 ⓒ 하주성

▲ 하부 법의가 다리부분에서 양편으로 갈라져 U자 형으로 표현되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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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대 일석으로 된 받침돌은 옮겨가느라 떼어 놓았다 ⓒ 하주성

▲ 받침대 일석으로 된 받침돌은 옮겨가느라 떼어 놓았다 ⓒ 하주성

심하게 훼손이 된 석불에는 사연이 많아

 

미륵암 석불입상은 전체적인 모습은 얼굴이 둥글고 온화한 표정인 듯하다. 머리 위에는 육계가 솟았으며 귀는 어깨까지 닿았다. 코나 입, 눈 등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가 되었다. 미륵암 주지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와서 코를 갉아갔다는 것이다. 아마 기자속(祈子俗)에 상당한 영험을 보인 듯하다.

 

어깨는 둥글게 표현을 하였으며, 손은 가슴께로 모은 듯하다. 법의는 양편으로 흘러내렸으며, 밑 부분에서 양편으로 U자형을 그리고 있다. 광배에는 불꽃 문양을 새겼는데, 거의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흐릿한 윤곽만 남아있다. 광배의 한편이 떨어져 한 옆에 따로 모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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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입상 석불과 광배가 한 돌에 조각이 되었다 ⓒ 하주성

▲ 석불입상 석불과 광배가 한 돌에 조각이 되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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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배조각 일본으로 가져가려다가 광배 일부가 쪼개졌다 ⓒ 하주성

▲ 광배조각 일본으로 가져가려다가 광배 일부가 쪼개졌다 ⓒ 하주성

일본인에게 팔려갈 뻔한 석불입상

 

단단한 바위로 조각한 미륵암 석불의 광배는 왜 쪼개진 것일까? 마침 주지스님이 차 한 잔을 하고 가라고 한다. 석불입상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겸, 방으로 들어갔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광배는 왜 쪼개졌나요?"

"그것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일제 때 군산에 사는 어떤 사람이, 이 미륵암 석불이 효험이 있다고 하여 일본인에게 팔았답니다. 그런 다음에 받침돌과 석불입상을 따로 떼어 내, 아마 당시에는 길이 안 좋아서 커다란 리어카 같은 것에 실어서 마을 밖으로 옮겨 갔던 것 같아요"

 

"그럼 그 때 깨졌나요?"

"예. 그런데 절 입구를 빠져나가자 그 사람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두려운 마음에 다시 제자리로 갔다가 놓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합니다. 그 때 광배 일부분이 깨어졌다고 합니다."

 

"다시 부쳐보지는 않았나요?"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부쳐준다고 했는데, 철심을 박고 쇠를 박아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해서 붙여놓으면, 볼썽사나울 것만 같아 그냥 놓아두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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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전 미륵암 석불입상을 모셔 놓은 용화전 ⓒ 하주성

▲ 용화전 미륵암 석불입상을 모셔 놓은 용화전 ⓒ 하주성

미륵암 석불입상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와서 정성을 드리면, 아이를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정성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미륵암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그래도 일본으로 팔려갈 것을 막아낸 것이 고맙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에 일본으로 건너갔더라면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2.17 10:0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석불입상 #미륵암 #남원 #문화재자료 #기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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