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실 예언한, '소름끼치는' 66년 전 책

[이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 ③] 신자유주의 원조 저격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등록 2010.12.26 19:20수정 2011.03.11 11:13
0
원고료로 응원
a

'5천 원 치킨' 판매가 시작된 9일 오전 11시 롯데마트 영등포점에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김시연


신자유주의로 얼룩진 한국 경제

요즘 SSM이라는 용어가 관심을 끈다.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을 말하는데, 이것이 동네 한가운데로 들어오고 있다. 그 바람에 구멍가게를 비롯하여 재래식 시장 상인들은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다. 거대 자본의 가격 경쟁력을 동네 조그만 수퍼마켓 주인들이 무슨 수로 당해낼까. 이와 같은 현상을 자유경쟁이 지배하는 시장자본주의의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또 하나 사례를 들어보자. 얼마 전 어떤 대형 유통업체가 5천 원짜리 튀김 통닭을 내놓았다. 집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닭집에서 한 마리를 먹으려면 1만5천 원 이상은 주어야 하는데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판다니, 가격파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이 업체에 통닭을 사려는 손님들이 문을 열자마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도 당연했으리라. 이렇게 되니 주변 통닭집은 직격탄을 맞았다. 매상이 급격히 떨어져 손님을 구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도 자유경쟁을 금과옥조로 하는 시장자본주의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 구멍가게를 하는 동네 아저씨도, 재래식 시장에서 하루하루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아주머니도, 통닭집 운영해서 한 번 살아보겠다는 젊은 부부도 노동의 기쁨을 누리며 이 땅에서 아들 딸 키우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세상이 이렇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잡고 잡히는 식으로 마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은 시장자본주의의 자기 조절적 기능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 것인가.

자유경쟁과 시장의 조절기능을 들먹이며 그것이 경제를 움직이는 지고의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철학을 우리는 '자유주의 경제철학'이라 부른다. 이러한 철학은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장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소위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이를 '시장'이라 한다)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니 국가는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가는 그저 사람들의 자유로운 계약과 그 이행이 이루어지도록 질서만 잡아주면 되지 그 이상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괜히 국가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작은 정부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는 누구?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여 젊은 시절 헝가리에서 학창 생활을 보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헝가리에 극우 반동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자 빈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당시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지 중의 하나인 <오스트리아 경제>의 편집자가 되어 정열적으로 일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처참한 실상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40년 미국 버몬트의 베닝턴 대학에 자리를 잡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바로 세기의 명저가 된 <거대한 전환>은 바로 그곳에서 집필되고 출간되었다. 1947년 캐나다 토론트 근처 피커링에 정착하였고 동시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반 경제사를 강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철학은 1930년대 세계 대공항을 맞이해 근본적인 회의에 부딪혔다. 바야흐로 케인지안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되고 그것 없이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60년 후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세상은 자유주의 물결이 넘친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이 철학은 우리 경제에 대하여 개방, 민영화, 자유화, 시장주의라는 이름의 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죽을 것이고, 살기를 원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고 우리를 세뇌시킨다.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 현실이 소름 끼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원조 저격수' 칼 폴라니

책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 도서출판 길


칼 폴라니.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시점인 1944년 한 권의 책을 쓴다. <거대한 전환, The Great Transformation>(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기조정과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시장자본주의는 하나의 유토피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꿈에서 깰 것을 강조한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 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94쪽)

이 말은 시장자본주의가 말하는 자기조절 기능이라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는 절대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국가 개입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경제란 있을 수 없고, 또 그런 경제는 역사상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시장자본주의가 완전히 꿈이라니, 이 말이 무엇인가. 이에 대해 올해 베스트셀러가 된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말을 토해낸다.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저/김희정 역/안세민 역). ⓒ 부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유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2쪽)

그러니 장하준 교수의 말은 폴라니의 말을 다시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폴라니가 66년 전 <거대한 전환>에서 명언한 것을 장 교수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정확히 재현하였다. 이것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폴라니의 비판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폴라니를 신자유주의의 원조 저격수라 부르고 싶다.

<거대한 전환>은 폴라니의 방대한 독서에 근거한 세기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 책에는 역사, 철학, 인류학, 사회 이론 등 다양한 시각에 의한 경제분석이 동원된다. 이런 이유로 비전문가가 이 책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한다거나 그의 정치·경제·철학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폴라니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가면 폴라니가 말하는 시장자본주의 모순의 한 가운데에 다다를 수 있다.  

<거대한 전환>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국제시스템)와 제3부(진행 중인 전환)는 제1차 대전, 대공황, 유럽대륙의 파시즘, 미국의 뉴딜과 소련의 첫 5년간의 경제개발 등의 사건을 낳았던 당시 세계정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서 폴라니는 하나의 큰 의문을 제기한다. 1815년부터 1914년에 이르기까지 100년간 번영을 누리던 유럽이 왜 갑자기 세계대전에 빠져들고 경제적 붕괴가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2부가 말해 준다.

제2부는 이 책의 가장 중심 부분인데 여기에서 폴라니는 시장자유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되었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발전이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연원을 따진다. 그는 제1차 대전과 대공황으로 이어진 경제 질서의 붕괴는 모두가 시장자유주의를 지구적 차원에서 조직하려는 시도의 직접적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탄생을 이러한 시장자유주의의 거대한 전환 끝에 나온 또 다른 전환의 한 과정으로 설명한다.

노동·토지·화폐의 상품화는 허구

첫째, 폴라니는 시장자본주의가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보고 경제시스템을 만들려고 한 것이 완전히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이 책의 제2부 제6장에 나오는데 폴라니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곳을 폴라니 주장의 핵심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임금은 노동에 대한 가격이고, 지대는 토지 사용의 가격이며, 이자는 화폐를 사용하는 가격이라고 배웠다. 바로 이것이 시장자본주의 곧 19세기 이후의 고전 경제학의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시장자본주의에서는 이들 요소를 공장의 상품과 같이 취급해야 하며 그 가격형성과 수요공급은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믿음을 강조한다. 이 말은 이들 영역에 국가는 가급적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폴라니는 노동·토지·화폐는 근본적으로는 상품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상품에 대한 경험적 정의에 따르면 이 세 가지는 상품이 될 수 없다. 노동이란 인간 활동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 토지란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며, 구매력이란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243쪽)

폴라니는 본래부터 상품이 될 수 없는 노동·토지·화폐에 대하여 시장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들 요소에 시장자본주의를 적용시킨다면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파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용의 자유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의 자유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토지에 대하여 그 소유와 사용에 대하여 규제를 풀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순간 전국의 땅은 투기 열풍 속에 들어갈 것이며 우리의 소중한 자연환경은 그날로 망가지게 되어 있다.

폴라니는 인간과 자연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결국 사회는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자연과 인간을 전적으로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물건처럼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경제적 주장이 아니라 도덕적 주장이다.

더욱 이 말은 경제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국가의 역할을 다하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권력을 사용하여 화폐의 공급과 신용의 공급을 조절하고 노동자들을 위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구제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나아가 토지의 경우 농업생산을 위해 농지를 보호하고 각종 환경규제를 해야 한다. 결코 국가는 이들 생산요소의 운명에 대하여 팔짱을 끼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실체를 발견하다

둘째, 폴라니의 사회사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의 실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제10장). 이것은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폴라니의 사회사상 중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말은 경제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기본 시각을 의미한다. 폴라니는 로버트 오웬의 사회주의에서 사회의 실체를 발견했다고 하면서 사회는 국가 자체도 아니고 시장경제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시장자본주의에서는 사회가 시장논리(경제)에 의해 종속(지배)된다고 본다. 그러나 폴라니는 경제와 사회의 관계는 오히려 정반대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경제는 정치, 종교, 사회관계 밖으로 빠져나와 그것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정상적 패턴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를 시장(경제)에 묻어 버리는 행위는 모두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대단히 도덕적인 주장이다. 사회는 경제보다 훨씬 심오한 것이며, 그것은 우리 인간의 자유와 가치, 그리고 이상이 잠재해 있는 실체이다. 따라서 경제는 바로 이러한 사회의 실체에 복무하는 기능을 담당해야지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면 이 사회가 시장경제의 부수물이 되지 않도록 사회에 의한 경제 통제를 허용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폴라니의 비전, 자유로운 사회주의

폴라니의 비전이 무엇일까?

셋째, 폴라니의 비전이 무엇인가이다. 폴라니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사회를 제안하는 것일까. 단지 시장자본주의를 하나의 허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나는 그것 이상으로 폴라니가 자유로운 사회주의의 비전을 말했다고 본다.

그는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장에서 그의 소망의 일단을 밝힌다. 그 소망의 핵심은 자유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유는 모든 개인 하나하나가 우주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그런 고로 그에게는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애당초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회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상은 사회라는 실재를 통해서만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간의 의지와 소망만으로는 인간은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이상이 사회의 일정한 규제와 통제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그는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는 사회주의를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폴라니의 이러한 비전이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소망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사회복지 이념은 폴라니의 비전이 강력하고도 현실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폴라니의 비전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희구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강력하게 실천되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학자란 무엇인가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학자의 임무를 생각해 본다. 대학에 있는 연구자로서 이와 같은 책을 읽다 보면 한편으론 부끄럽다. 세상의 위대한 학자들이 풍기는 아우라에 주눅이 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보통 학자와는 분명히 다른 큰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알아내고자 하는 지적 탐구였다.

뉴턴은 우주의 운동법칙이라는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꿈을 가졌다. 도대체 우주는 왜 이렇게 정확하게 돌아가는지 그 운동의 근본을 알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고자 했다. 한 마디로 인간의 본질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자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 또한 인간사를 지배하는 경제법칙을 알고자 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경제법칙에 의해 규율되는 세상사를 알고자 했다. 모두 담대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칼 폴라니는 어떤 꿈을 꾸면서 이 책을 썼는가. 한 세기를 지배한 시장자본주의의 실체를 알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시장자본주의의 병폐의 근원을 낱낱이 밝혔다. 그런 면에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분명히 시대를 뛰어 넘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통찰력을 보여 준 역작임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꿈을 꾸는 진짜 학자들이 나와야겠다. 단순히 세상의 지식을 모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라 근본에 천착하여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발견하는 그런 학자들이 나와야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 폴라니를 통해 얻는 담대한 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찬운 기자는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권법)이며 변호사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박찬운 기자는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권법)이며 변호사이다.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2009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신자유주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나이 들면 친구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
  2. 2 맨발 걷기 길이라니... 다음에 또 오고 싶다
  3. 3 노후 대비 취미로 시작한 모임,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이야
  4. 4 눈썹 문신한 사람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5. 5 어떤 기운 받은 땅이기에... 유명인들을 많이 배출했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