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그림편지

이수동의 〈토닥토닥 그림편지〉

등록 2010.12.21 15:28수정 2010.12.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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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토닥토닥 그림편지〉

책겉그림 〈토닥토닥 그림편지〉 ⓒ 아트북스

▲ 책겉그림 〈토닥토닥 그림편지〉 ⓒ 아트북스

어제 평소 알고 지내던 벗이 아파 쓰러질 지경이니 자신을 업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부랴부랴 그가 살고 있는 3층 옥탑방으로 달려갔다. 헌데 이를 어쩌랴. 그가 멀쩡한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졸지에 초상이라도 치를 뻔 했으니.

 

그와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난한 시골 목사를 안다고 했다. 이제 곧 칠순이 가까운, 장애우들의 벗으로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허리 구부정한 목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그는 그 목사를 만나러 화천 땅을 헤집고 다녔다 한다. 김 스무 톳을 사 들고서.

 

화가와 목사. 뭔가 어울리지 않는가.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신 그는 사실 붓쟁이다. 그리고 그와 내가 아는 시골 목사는 작가다. 붓쟁이는 유명하지 않으나 그 목사는 유명 작가다. 붓쟁이인 그가 어제는 내게 시를 써서 들려줬다. 그리고 멋진 그림도 그릴 계획이라 했다. 어쩌면 방 한 칸 짜리 그 옥탑방은 원대한 창작 세계를 열어줄지 모르겠다.

 

이수동의 〈토닥토닥 그림편지〉(이수동 저, 아트북스 펴냄)도 가난한 이들과 힘들어 하는 이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과 사랑을 안겨주는 멋진 그림 편지였다. 학창시절 미술학원에 다닐 학원비조차 없던 그로서는 그 한을 풀려고 온통 그림에만 매달렸고, 뜻하지 않게 자신의 그림이 빗발치듯 팔려나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드라마와 달력과 영화 포스터와 기업광고 이미지에 그의 그림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 뚜벅뚜벅 제 길을 걷다보니 엉뚱한 데서 길이 트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까닭이었을까? 그의 그림에 종종 달과 산과 나무와 눈이 펼쳐지는 모습이 보이는 게.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와 '사랑가'도 달빛 아래의 커피와 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가 그린 '나의 친구'는 화분을 붓통으로 쓰고 있는 걸 표현한 그림이다. 어느 날 친한 벗이 자기 화실에 멋진 화분을 놓고 갔는데, 꽃을 돌보지 못한 탓에 그 꽃이 말라 비틀었고, 그 사람 생각에 그걸 붓통으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가 그린 그림 하나하나에는 모든 사연들이 다 들어 있는 셈이다.

 

그의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무명 시절 그가 그린 그림들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면, 그의 어머니는 그 그림과 함께 손수 지은 버선도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 시절 그가 그린 그림보다도 더 잔뜩 쌓여가던 버선들을 볼 때면 속이 타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런 버선을 깁는 어머니마저 뵐 수 없는 생각에 마음이 싸할 뿐이라고 한다.

 

a 그림편지 〈토닥토닥 그림편지〉속 한 컷

그림편지 〈토닥토닥 그림편지〉속 한 컷 ⓒ 아트북스

▲ 그림편지 〈토닥토닥 그림편지〉속 한 컷 ⓒ 아트북스

'그래島'란 섬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만 있는,

이어도만큼 신비한 섬입니다.

 

미칠 듯 괴로울 때,

한없이 슬플 때,

증오와 좌절이 온 몸을 휘감을 때,

비로소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빛을 내며 나타나는 섬.

그게 '그래도'입니다.

 

섬 곳곳에는

"그래도 너는 멋진 사람이야"

"그래도 너는 건강하잖니?"

"그래도 너에겐 가족과 친구들이 있잖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단다"

같은 격려문들이 나붙어 있습니다.

 

그래島는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용서와 위로의 섬입니다.

당신의 그래島는 안녕하십니까?(21쪽)

 

이 그림편지를 대하는 내 마음이 울컥했다. 왠지 내 삶도 허전하고 뭔가 애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제 만났던 그를 생각하자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기다려주는 이 없이 매번 옥탑방에서 빈방을 대해야하는 쓸쓸함 때문이다. 그런 나나 그나 '그래島'라는 시는 그래서 굉장한 용기를 주지 않나 싶다. 그가 그린 80통의 그림편지들은 잔잔한 위안이 된다.

2010.12.21 15:28ⓒ 2010 OhmyNews

토닥토닥 그림편지 -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이 전하는 80통의 위로

이수동 글.그림,
아트북스, 2010


#그림편지 #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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