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기차, 새롭게 태어나다

[현장] 경춘선 철도 마지막과 복선전철 첫 출발

등록 2010.12.21 18:15수정 2010.12.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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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10시, 청량리역 5번 승강장은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과 카메라에서 터져나오는 플래시 불빛으로 가득찼다. 이날은 경춘선 철도가 70여 년간의 운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기차를 타기 위한 승객들이 열차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지막 기차를 타기 위한 승객들이 열차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원정연

"이 열차는 춘천가는 경춘선 마지막 열차인 무궁화호 제1837 열차입니다."

차장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열차 안에 퍼져나가고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강장에 서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열차에 올라탔다.

1939년 7월 25일 서울 제기동(성동역)에서 강원도 춘천(춘천역)에 이르는 93.5km의 구간을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사설철도로 개통한 경춘선은 이후 서울시가 확장됨에 따라 1971년 성동~성북역 구간을 폐지하고, 성북역을 기점으로 하는 노선(87.3km)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다.

북한강변을 따라 운행하는 경춘선은 아름다운 퐁경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추억이 담긴 철도 노선으로 기억된다. 대학 시절의 낭만을 물씬 느끼게 하던 MT 장소로, 연인들의 사랑이 담긴 여행의 장소로, 또 누군가에게는 군대에 입대하는 입영 열차로 기억되어 왔다. 오랜시간 서민들 곁에 함께해 온 경춘선은 1989년 발표된 김현철 1집 수록곡 '춘천 가는 기차'와 함께 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70여 년 추억 담아온 경춘선 철도의 마지막 날

 춘천 가는 마지막 1837 열차를 견인하는 7421호 기관차가 청량리역 승강장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춘천 가는 마지막 1837 열차를 견인하는 7421호 기관차가 청량리역 승강장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원정연

이날 마지막 기차는 6량(기관차, 발전차 제외)으로 운행된 가운데 승객들을 가득 싣고 예정된 출발시간보다 3분 지연된 오후 10시 6분 청량리역을 출발했다. 승강장에는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열차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떠나는 열차를 배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열차 안에는 경춘선에 대한 온갖 추억을 갖은 승객들이 있었다. 특히 불혹을 넘긴 이들의 모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등산가방을 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은 의자를 마주보게끔 돌려서는 준비해 온 통닭과 맥주를 꺼내놓고 서로 잔을 기울였고, 철도 동호회 회원들은 기차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을 녹음하고, 역명판과 승강장을 촬영하는 등 마지막을 그들 방식대로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열차는 천천히 종착역인 남춘천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춘천역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남춘천역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원정연

한유정(21, 서울 도봉구)씨는 옆에 앉은 친구와 함께 메모지에 춘천에 가서 무엇을 먹고 할 것인가 계획을 짜고 있었다. "저같은 경우만해도 경춘선에 대한 추억은 많지 않지만 우리 곁에 있던 것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아쉬움에 친구랑 1박 2일로 여행을 가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메모장에는 막국수와 남이섬 등 춘천을 대표하는 장소와 먹을거리들이 적혀 있었다.


"대학 다닐 때 대성리로 엠티를 갔는데 거기서 아내를 만났지."

박성오(50, 경기 구리시)씨는 이야기하는 내내 함께 온 아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낼부터 전철이 다닌다고는 하지만 기차와 전철의 느낌은 다르잖아. 그래서 마지막으로 타 보려고 나왔어."  

강촌역을 지나면서 열차 중간에 위치한 방송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남춘천 도착 안내방송을 준비하고 있던 송인종 차장(청량리승무사무소)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한 승객이 와서는 즉석카메라로 송 차장을 찍고 나온 사진을 건네주고 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미리 멘트를 준비했는데 잘 할지 모르겠다"면서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지막 안내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송인종 차장.
마지막 안내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송인종 차장.원정연


이윽코 열차가 남춘천역에 도착을 앞두자 송 차장은 방송실 내에 마련된 방송용 마이크를 들고 입을 땠다.

"많은 세월, 경춘선을 사랑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후 우리 열차는 70여 년을 달려왔던 경춘선의 마지막 역인 남춘천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소지품을 두고내리지 않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청량리열차 승무원들은 고객여러분 곁에서 언제나 편한 발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침과 동시에 기관차에서는 경적을 길게 울리며 종운을 알렸고, 방송실 주변에 있던 승객들은 박수로 송 차장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다.

 경춘선의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도착한 승객들은 열차를 배경으로 마지막 추억을 남기는 사진을 찍고 있다.
경춘선의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도착한 승객들은 열차를 배경으로 마지막 추억을 남기는 사진을 찍고 있다. 원정연

예정시간보다 2분 늦은 오후 11시 45분 도착한 남춘천역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쉽사리 승강장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며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일부는 코레일 직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열차를 서울로 회송하기 위해 기관차를 분리해서 서울 쪽으로 다시 연결한 직후 승강장으로 내려온 7421호 기관차 최광용 기관사는 "고향인 춘천으로 가는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를 운전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

 최광용 기관사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경춘선 무궁화호 행선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광용 기관사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경춘선 무궁화호 행선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원정연

승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남춘천역 대합실은 한적했다. 몇몇 사람들이 대합실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지만 이조차도 길지는 않았다. 남춘천역 직원은 구내 방송을 통해 "잠시 후 역사 내 전원을 차단할 예정이니 역 안에 남아계신 분들은 모두 역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멘트가 나왔고, 21일 0시 20분 남춘천역은 영업을 마무리하고 폐쇄됐다.

1990년대 들어서 춘천 등 강원 영서지역의 수도권 접근성 개선에 대한 요구에 따라 경춘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복선전철 건설이 추진돼 1997년 첫 삽을 떠서 2조7483억 원을 투입해 공사가 진행됐다. 그동안 경춘선은 단선으로 상하행 열차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어 이전 역에서 반대편 열차를 기다리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운행 시간이 늘어나는 불편이 많았다.

21일 오전 5시 13분, 상봉행 경춘선 복선전철 첫 출발

21일(화) 개통한 경춘선(81.4km) 복선전철은 출발역을 청량리역에서 상봉역으로 옮겼다. 기존 성북~화랑대역 서울시계(6.3km) 구간이 폐선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직선화로 인해 가평, 경강, 대성리, 강촌역 등 상당수의 역이 새로운 노선 위에 지어졌다. 기존 폐선구간 일부는 레일바이크 등을 도입해 운영할 계획에 있다.

경춘선 운행을 위해 새롭게 들어온 15편성(120량)의 전동열차는 성북역-춘천역 구간을 하루 137회(주중기준, 주말 114회) 운행한다. 특히 급행열차(주중 41회, 주말 34회)와 일반열차(주중 96회, 주말 80회)를 운행하여 무궁화호 시절 한 시간 간격으로 1일 38회 운행하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증가한 숫자이다. 급행열차는 상봉역을 출발해 퇴계원, 평내, 마석, 가평, 남춘천을 거쳐 춘천역에 정차하며, 주말에는 청평과 강촌역에 추가로 정차한다.

운행시간도 크게 감소했다. 기존 무궁화호(청량리-남춘천)는 1시간 40분 가량 걸렸지만, 새로 개통한 전철의 급행열차(상봉-춘천)는 63분(주중, 주말 68분), 일반열차는 79분이 소요된다. 출퇴근시간 대는 12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평시에는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운임은 기존 5600원에서 2600원(현금 기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교통카드 이용시 수도권 통합환승이 가능하다.

2011년 말에는 좌석형 고급열차(EMU-180) 8편성(64량)을 도입해 용산-춘천 구간을 급행열차로 운행할 예정이다. 국내최초로 2층 객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40분 대로 운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1일 오전 5시 13분 새로 문을 연 남춘천역에서 상봉행 첫 급행열차(K8302)가 출발했다. 이 열차는 원래 오전 5시 10분 춘천역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개통식 준비관계로 오후 4시 30분까지는 남춘천역-춘천역 간 운행이 되지 않아 출발역을 변경해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21일, 상봉행 첫 급행열차(K8302)가 남춘천역 승강장에 진입하고 있다.
21일, 상봉행 첫 급행열차(K8302)가 남춘천역 승강장에 진입하고 있다.원정연

이른 아침부터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나온 160여 명의 승객을 탑승한 가운데 출발한 열차는 남춘천역을 출발해 4개 역을 통과, 20분 만에 가평역에 도착했다. 푸른 물결을 상징하는 도색으로 꾸며진 전동열차는 총 8량으로 이뤄져 있으며, 맨 앞칸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돼 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승객들이 경춘선 전동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승객들이 경춘선 전동열차를 이용하고 있다.원정연

전동열차 안은 예상보다 소음이 크게 들렸다. 급행 운행에 따른 고속 주행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소음에 민감한 사람들은 꽤나 신경쓰일 정도이다. 열차 내 영상표출장치에도 문제가 있었다. 마석역, 평내호평역 등 중간 정차역에 출입문 개방은 열차진행방향 기준 왼쪽으로 안내방송과 출입문은 정상적으로 송출되고 있었지만, 출입문을 안내하는 영상표출장치에서는 반대쪽인 오른쪽에 불이 들어왔다.

첫 전동열차에 탑승한 강성종(69, 강원 춘천시)씨는 "이제 서울갈 때도 편하게 갈 수 있다"면서 "특히 우리는 요금을 안 내도 되니 매우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열차는 오전 6시 13분 상봉역에 정확히 도착했다. K8302 열차를 운전한 정계영 기관사(이문승무사무소)는 "역 하나를 실수로 통과할 뻔 했지만 무사히 운행을 마쳤다"며 "첫 운행을 맡게 돼 기쁘다"라고 했다. 

 상봉행 첫 급행열차(K8302)를 운전한 정계영 기관사.
상봉행 첫 급행열차(K8302)를 운전한 정계영 기관사.원정연

이날 오후 3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광재 강원도지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광준 춘천시장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춘천역에서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식이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민생활에 변화가 크게 될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지역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다"며 축사했다.

한편 이날 중앙선 상봉역(중랑~망우역 사이), 오빈역(아신~양평역 사이)이 신규로 영업을 개시했다.
#경춘선 #청량리역 #남춘천역 #상봉역 #춘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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