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피켓들 내 승용차 안에는 4대강파괴공사 반대 손피켓들이 많이 실려 있다. 간혹 자기 차에도 붙이겠다고 여분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지요하
차에 '4대강 함성'들을 부착한 뒤로는 차를 더 많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평소 걸어 다니던 가까운 거리도 일부러 차를 이용하게 되고, 마누라와 조카아이에게 운전 봉사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주말에 집에 내려오는 대학생 아들 녀석에게도 선뜻 차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지근거리인 태안군청 종합민원실에 차를 가지고 갔을 때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쉰 살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 수염투성이인 낯모르는 이가 내게 와서 인사를 하며 차에 붙인 손피켓의 여분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반색을 하며 차 뒷문을 열고 내 차에 붙인 것과 똑같은 손피켓 세 장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통성명을 하며 명함도 교환하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와 청포대 해수욕장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2월 첫 주말에는 아들 녀석에게서 기쁜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하여 집에 내려온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만나 당구를 치고 오겠다며 차를 달라고 했습니다. 차 뒷문 유리에 부착한 손피켓들을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놓으라고 이르고는 선뜻 차 열쇠를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들 녀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열두 시쯤 당구장에서 나왔는데, 어떤 사람이 막 차에 오르려는 날 부르더니 차에 붙인 거 더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서울에서 아빠가 차에다 여러 장 실은 것이 기억나서 얼른 차 트렁크를 열고 두 장 꺼내 주었지요. 그 사람이 고맙다고 하면서 내게 악수를 청하고, 피켓들에 입을 맞추면서 가더라구요."
아들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반갑고 기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싸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군지 모를 사람이 아프게 안고 사는 '가슴'을 생각하자니 괜히 눈물이 날 것도 같았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서울에 갈 때는 꼭 세차를 하곤 합니다. 세차장 직원들도 내 차 뒷문을 보게 하려는 뜻이고, 깨끗해진 유리를 통해 손피켓들이 좀 더 명료하게 보이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하지요.
서해안고속도로와 서울 서부간선도로에서 심한 정체를 겪을 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차 뒷문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곤 합니다. 때로는 내 옆을 추월하면서 살짝 경적을 내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는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