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도 TV도 없는 네팔 어린이들에게 배운다

끝없이 펼쳐진 네팔의 억새밭을 지나며...

등록 2010.12.27 18:05수정 2010.12.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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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다. 집에 컴퓨터도 없으며, 대부분 텔레비전도 없다. 그들은 아직 컴퓨터에 물든 사람들이 아니다. 즉 컴퓨터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그들의 미소는 행복을 전파하는 행복 바이러스처럼 보인다. 저 아이들 집에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있다면 저렇게 순박한 미소가 나올까? 온갖 못된 정보와 영상을 각인시키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킨다. 아, 억새꽃처럼 싱그럽고 티없는 아이들의 모습이여! 평화와 행복은 저 소박한 표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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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토도 텔레비젼도 없는 티없이 맑은 네팔 아이들의 표정 ⓒ 최오균

컴퓨토도 텔레비젼도 없는 티없이 맑은 네팔 아이들의 표정 ⓒ 최오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점점 프로그램화 된 컴퓨터형 인간의 생각이 조작을 해내고 있다. 전쟁, 전쟁의 도구들, 전쟁의 야만성, 살인, 폭탄 테러, 인질극, 시기, 질투, 사랑의 고통도 모두 오랫동안 길들여진 생각에서 나온다.
 
그 무엇도 겁내지 않는 컴퓨터형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편향된 생각이 세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생각, 생각, 생각... 사람은 때로 헛된 생각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멈출 것인가? 그것은 명상이다. 네팔의 끝없는 억새밭을 지나며 잠시라도 생각이 멈추는 명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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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억새밭 일람에서 치트완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라트나푸리 근처의 끝없는 억새밭 ⓒ 최오균

▲ 네팔의 억새밭 일람에서 치트완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라트나푸리 근처의 끝없는 억새밭 ⓒ 최오균

 

 

끝없이 펼쳐진 내팔의 억새밭

 

네팔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팔엔 8000m급 히말라야가 8개나 있는가 하면, 인도국경으로 가까이 가면 푸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기도 한다.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세계의 지붕 네팔은 3000m 이상의 산(갈색)과 1000m이상의 언덕(푸른색-네팔 사람들은 3000미터 이하는 언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000m 이하의 평야지대로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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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 네팔. 일람에서 치트완으로 가는 길 ⓒ 최오균

세계의 지붕 네팔. 일람에서 치트완으로 가는 길 ⓒ 최오균

 

자비공덕회 회원들은 네팔 동부 일람 지역에 있는 버드러칼리 학교를 방문하고, 룸비니를 향해 불교성지순례길에 나섰다. 버드러칼리 학교는 자비공덕회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자금을 후원하고 있는 학교다. 

 

일람 차밭을 출발한 버스는 인도국경 근처에 펼쳐진 끝없는 들판을 덜컹거리며 달려간다. 버스가 어느 강가에 다다르자 한없이 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일행들 모두가 "와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버스를 잠시 멈추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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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경지역에 끝없이 펼쳐진 네팔의 억새밭 ⓒ 최오균

인도 국경지역에 끝없이 펼쳐진 네팔의 억새밭 ⓒ 최오균

 

가냘픈 억새가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거린다. 일행들 모두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억새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억새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 생애 이렇게 넓은 억새밭은 처음 본다. 갈대처럼 연약하게 흔들거리는 억새.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매우 연약해 보인다.

 

강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저 억새와 달리 사람은 자기의 죽음이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강한 존재보다 숭고하다.

 

사람의 존재인 여행자들은 억새밭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다. 그냥 무심코 보는 사람, 시심이 떠 오른다는 사람,  억새밭을 걷고 싶다는 사람, 억새밭에서 명상을 하고 싶다고하는 사람... 생각은 각자의 몫이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연물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면서도 인류와 지구를 파괴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내는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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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거리는 연약한 억새 ⓒ 최오균

바람에 흔들거리는 연약한 억새 ⓒ 최오균

 

억새밭을 지나자 이젠 사라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라나무 숲을 지나며 일행들은 다시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여행은 때로는 침묵의 시간을 가져서 좋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쉬어가는 침묵이 절대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은 그런 침묵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여럿이 때거지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홀로, 혹은 둘이서 하는 여행은 때때로 침묵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생각이 지어낸 침묵이 아닌, 두 소음 사이의 침묵이 아닌, 전쟁과 전쟁 사이의 고요가 아닌, 그런 질서의 고요가 그 침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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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 최오균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 최오균

 

점점 컴퓨터형 인간이 되어가는 지구촌의 미래는?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럼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생각하고 활동한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생리적으로,  언론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가고 있다.

 

컴퓨터는 이미 정밀성과 정확성에 있어서 사람의 사고를 앞질러 가고 있다. 컴퓨터가 모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금융시장, 병원의 데이터, 정부의 행정자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우주를 측량하는 힘 등 컴퓨터 없이는 인간은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동차와 배, 기차, 비행기 등 움직이는 물체도 모두 컴퓨터에 의해서 자동 제어 되거나 움직인다. 컴퓨터의 시뮬레이션에 길들여진 인간은 포탄이 날아와도 이제 별로 놀라지를 않는다. 전쟁도 마치 컴퓨터에서 즐기는 게임처럼 무심코 바라보게된 지 오래다.

 

어렇게 컴퓨터에 길들여져 있는 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불멸의 음악가는 탄생하기 어렵다. 탁월한 발명과 음악, 예술, 사상을 펼쳐왔던 인물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종교적으로도 붓다나, 예수, 공자나 마호메트 같은 큰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컴퓨터와 기계문명의 발달이 침묵의 시간을 뺏어간 탓일까? 사람이 가진 고유한 영적 능력보다도 시뮬레이션화된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린다. 영감을 느끼지 못하고, 창조력이 고갈된 마음에서는 불멸의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서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컴퓨터형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영국인도, 인도인도, 러시아 인도, 북한사람들도.... 점점 모두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스찬도, 불교도들도, 힌두교인들도 점점 컴퓨터로 프로그램화 되어 가고 있다. 침묵의 시간, 즉 진정한 명상의 시간이 없는 한 위대한 인물의 탄생은 불가능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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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억새밭.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며 점점 컴퓨터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 최오균

네팔의 억새밭.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며 점점 컴퓨터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 최오균

 

컴퓨터형 생각의 그물에 휘말려 허덕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처해있다. 원자폭탄이 도처에 널려 있고, 어떤 미치광이가 핵폭탄을 언제, 어느 곳에 터트릴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심리적 공포와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생존이 그 어디에도 보장되어 있지않고, 근심걱정, 불안 초조, 불확실성, 욕구불만, 절망, 외로움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질투와 탐욕, 선망과 고통, 이기주의에 파 묻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된 잘못된 생각의 힘이 조작을 해내고 있다. 전쟁, 전쟁의 도구들, 전쟁의 야만성, 살인,  폭탄 테러, 인질극, 시기, 질투, 사랑의 고통도 모두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 생각, 생각... 헛된 생각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멈출 것인가? 그것은 명상이다.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 어느 노점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서 네팔식으로 칼질을 하며 미소를 짓는 할머니와 티없이 소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런 꾸밈없는 표정이다. 자연과 가까이 하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표정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다. 집안에 컴퓨터도 없으며, 대부분 텔레비전도 없다. 그들은 아직 컴퓨터에 물들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즉 컴퓨터형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그들의 미소는 행복을 전파하는 행복 바이러스처럼 보인다. 저 아이들 집에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있다면 저렇게 순박한 미소가 나올까? 온갖 못된 정보와 영상을 각인시키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은 사람의 정신을 사악한 정보로 오염시킨다. 아, 티없는 표정이여! 평화와 행복은 저 소박한 표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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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식 칼질을 하는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 ⓒ 최오균

네팔식 칼질을 하는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 ⓒ 최오균

 

명상소년 람 바하드라 봄존

 

점심을 먹고난 후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사라나무 숲을 지나갔다. 점심을 먹은 일행들은 모두 한 참을 졸고 있었다. "이곳은 네팔의 명상소년인 람 봄존(Ram Bahadur Bomjon)이 태어난 곳입니다" 가이드 아식이 침묵을 깨면서 람 봄존의 존재를 알려왔다.

 

나는 몇 년 전 신문과 TV에서 보았던 명상소년 람 봄존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 보았다. 이곳 라트나푸리(Rantnapru)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와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다. 람 바하더르 봄존(Ram Bahadur Bomjon). 그는 이 근처 숲에서 5년간 명상을 하고 있는 "소년부처"라 불리는 리틀붓다이다.

 

"람 봄존은 2005년도에 이 지역 보리수 나무 아래서 10개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명상을 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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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을 전폐하고 10개월간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있는 네팔 소년부처 람 바하드라 봄존 ⓒ 위키미디어

식음을 전폐하고 10개월간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있는 네팔 소년부처 람 바하드라 봄존 ⓒ 위키미디어

그는 2005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몇 개월 동안이나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던중 2006년 3월 자신이 수행하던 곳에 인파가 몰려들자 "이곳은 평화가 없어 떠납니다"란 말만 딸랑 남기고 사라졌다. "6년 뒤 나타나겠다"며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람 봄존은 명상에 들어가기 전에 6년 후에 깨어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봄존의 수행과정은 붓다와 비슷하다는 점이 증폭되고 있다. 소년이 명상하고 있는 이곳으로부터 250km 떨어진 인도의 보드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붓다는 6년 고행을 멈추고 49일 동안 수행한 뒤에 득도를 했다.

 

그런데 6년 뒤에 나타나겠다던 람 봄존은 사라진 뒤 1년여만에 이곳 정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침묵을 깨고 1만여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평화와 차별 철폐"에 대하여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5년 째 명상을 하며 가끔 나타나 연설을 하고 있다. 6년 뒤에 나타나겠다던 그가 침묵을 깨고 1년만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2010.10. 12 소년부처 <람 봄존>의 고향 네팔 남부 라트나푸르 숲에서)

2010.12.27 18:05 ⓒ 2010 OhmyNews
#네팔 억새밭 #람 바하드라 봄존 #네팔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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