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99회)

낙수(落穗) <2>

등록 2010.12.28 11:01수정 2010.12.28 11:01
0
원고료로 응원
우선 대제학 대감의 식솔부터 파고들었다. 사소하게 여기는  종놈부터 살피는 게 순서여서 경험이 작은 쪽은 털어버리고 술과 계집을 아는 놈을 구하니 스물 셋인 칠복(七福)이가 그물에 걸렸다. 정약용은 녀석이 잘 가는 사발막걸리 집을 찾아들었다.

"너는 칠복이 아니냐?"
"누구신지."


생면부지의 사내가 아는 척 해오자 녀석은 잔뜩 웅크린 채 꽁지를 말아 감았다.
"나는 사헌부 관리로 대감의 주검을 수사 중이다. 대제학 대감이 '옥류천' 동인과 관계있을 것이라 보고 널 만나기 위해 이렇게 들렀다. 대감이 살해당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밖에 있었습니다."

칠복은 고개를 갸웃대며 생각을 굴리다 정약용이 슬쩍 찔러온 바람에 그런대로 넘어갔다.
대제학 대감이 살해당하기 전만 해도 집안엔 낯선 선비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선비들은 과시가 열리면 선례에 따라 과거의 주시관인 대제학 대감을 찾아오는 자들이어서 두 해 전엔 전씨(全氏) 성을 쓰는 젊은이가 찾아들어 대담한 말을 늘어놓았다.

"대감마님, 시생의 집이 빈한해 어떻게든 벼슬을 얻어야 굶어 죽지 않습니다. 이번에 등과를 해야겠는데 대감께서 주시관이 되면 소인을 구원해 주십시오."

젊은이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조아리자 대감의 노여움이 거칠게 쏟아졌다.
"젊은 놈이 너무 당돌하구나! 너의 집안이 옹색한 건 네 부모 탓인데 그걸 어찌 내가 책임지느냐. 과거란, 시관들의 의도가 개입될 수 없다는 걸 아는 법이거늘 외람되이 죄 받을 그런 청탁을 하느냐! 고얀 놈이로고. 써억 물러가지 못할까!"

분노를 참지 못한 대제학이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리자 젊은이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올 때 그는 대비전에서 내린 정순왕후의 서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다음 날 다시 들렀을 때 알게 됐다.


"오래 전에, 대감께선 대비마마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생의 선조는 왕씨지만 목숨을 구하려 전씨(全氏)로 성을 바꿔 지금껏 지내왔습니다. 시생이 대감의 사위가 되어 일을 도모하라는 대비마마의 명이 떨어졌습니다."

젊은이는 서찰을 비롯해 간룡척(看龍尺)을 건네주었다. 대제학 이 어찌 그 물건을 모르겠는가. 이것은 딸 가진 이에게 던지는 은밀한 약조의 물건이었다.

궁에 들어와 상감을 모시거나, 후손 중에 딸이 있을 때 궁인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려면 젊은이를 사위로 맞아들여야 했지만 그가 전씨 성을 쓴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대비마마께서 시생을 이씨 문중에 양자로 보내 이진원이란 이름을 갖게 했습니다. 몰락한 집안이지만 대비마마의 손길이 있어선지 사는 것은 궁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함부로 내 딸을 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네."
"하오면?"

"이번 과시에 급제하면 주위를 다독거릴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네. 그때 가서 혼사를 말하세.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고맙습니다."

"허나 이번뿐임을 대비마마께 말씀 드리게.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사사로이 부정을 저지르는 게 얼마나 힘든 것임을 대비마마도 아실 게야. 자네가 도성 안에 거처를 정하면 우리 집 칠복이 놈이 심부름 할 것이야."

얼마 후 과거가 열린다는 공고가 나자 대제학이 주시관으로 발표되었다. 그 날 칠복이가 이진원에게 달려와 일봉 서찰을 건넸다.

<내가 대비마마께 입을 은혜가 이번 과거로 갚을 수 있길 바라네. 그러나 과거는 글만 잘한다고 급제되는 건 아니네. 자네의 재주를 못 믿어서 아니라 혹시 누락될까 염려하니 과시 답안지 시권(試券) 끝에 '경사 경(慶)' 자를 쓰고 글자를 겨우 알아볼 정도로 먹칠해 지우게. 그리하면 내가 알아서 조치하겠네.>

결과는 당연히 과거에 합격했다. 그러나 일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비록 대제학에게 손을 내민 건 아니었으나 이진원은 인왕산을 오르내리며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본뜬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위항 시인 장혼(張混)이 '수계첩'에 차서한 내용을 슬쩍 뒤바꾸었다.
"장기나 바둑으로 사귀는 건 하루를 가지 못하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면 한 달을 가지 못하며,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는 건 한 해를 넘지 못한다. 다만, 새로운 일을 찾는 것만은 영원하다."

'새로운 일을 찾는다는 것'은 옥류천(玉流泉)이란 모임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털어내고 알곡과 같은 동인을 추려내니 일곱이었다. 이진원은 발문을 만들었다.

"양자강의 근원이 민산(岷山)에서 시작될 무렵은 그 시작이 미미해 분량이 적고 물의 흐름도 고요했다. 이를테면 겨우 잔을 띄울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물의 양이 불어나 빠름이 급해지자 사람들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빠지는 걸 두려워했다. 그렇듯 한강도 마찬가지다. 인왕산 물줄기는 누각골과 옥류동에서 각기 흘러내리다 옥인동에서 만나 한강으로 흘러 백성들의 생명수가 된다. 이 물이 옥같이 맑아 옥류천이란 동인을 만들었으니 이제 세상을 위해 일하려 한다."

동인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밀담을 나누며 일을 꾸몄다. 그 과제가 무언지 알 수 없으나 경기 일원을 수탐하는 것 같았는데 대부분은 수원부를 중심으로 몰락한 양반이나 중인 계급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보다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몰락한 양반들에게 과시에 합격하는 것이 집안을 일으키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우친 듯 싶었다. 정약용이 그 부분을 짚었다.

"대제학 대감과 친분 관계에 있는 분은 몇 사람 있다만, 칠복이 네가 보기엔 어떠냐?"
"글쎄요. 소인은 대감이 참변을 당한 그날 새로운 주시관으로 임명된 이창섭 대감 댁에 심부름 다녀왔습니다. 사랑채에 들려 간단히 아뢰고 행랑채로 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시각이 언제 쯤이냐?"
"술시 무렵이었습니다."
술시면 저녁 8시 경이니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서책을 볼 무렵이었다.

"새로운 주시관 이창섭 대감에게 전할 말은 없더냐?"
"이창섭 대감이 오히려 소인에게 두 번이나 되물었습니다."

"무어냐?"
"그것은 예전의 방법이었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대감께서는 소인이 글을 모르는 줄 알고 심부름을 보냈으나 소인은 아가씨로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그러했기에 오고 가는 편지를 읽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서찰도 보았느냐?"
"예에. 이창섭 대감에게 보낸 내용은, 예전의 방법은 남들의 눈에 띄기 쉬우니 이번엔 방법을 바꾸겠다 하셨습니다. 답안의 맨 마지막 줄에 '묏 산(山)'을 넣어 문장을 만들되 '묏 산' 자를 유난히 크게 쓰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창섭 대감이 물었다?"
"예에, 게다가 간룡척(看龍尺)이 왜 없는지도 물었으나 소인이 모르는 일이라고 하자 대감께서 잊어먹은 것이라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알았다. 돌아가거든 말을 삼가라. 대감의 죽음을 밝혀야질 않겠느냐."

사발막걸리 집에서 나와 곧장 관아로 돌아오자 현장을 돌아보고 온 서과가 영화당 주변 상황을 풀어놓는다. 과시를 하루 앞뒀으면서도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의 영화당 앞뜰엔 과거장에 먼저 입장 하려 선비들이 몰려 있었다.

검은 빛을 띤 짙은 남색 옷을 걸치고 검은 띠에 유건을 쓴 선비 차림은 모양이 한결 청수하고 조촐하다. 과거장으로 입장하는 문마다 선비들이 몰려있어 곳곳이 사람 행렬이다.

"사람이 많더냐?"
"예에, 나으리. 홍화문을 비롯해 집춘문과 월근문, 그리고 통화문으로 거자(擧子)들이 몰려 있습니다. 선비들 모습은 청수하고 건장한 선접군(先接軍)은 자른 도포를 젖혀 매고 우산에 공석(空石) 쓰고 있습니다."

과거를 치르는 장소는 번호가 새겨진 장소가 없으니 누구보다 먼저 달려 좋은 자릴 잡는다. 시험 장소니 조용하고 근엄해야지만 건장한 선접군이 요란을 떠는 것은 좋은 자릴 잡기 위해서다.

그런 자린 어느 곳인가. 먼저는 시험문제를 빨리 볼 수 있는 곳이고 답안지를 빨리 낼 수 있는 곳이면 좋다. 이런 자릴 확보하려면 먼저 입장하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치러야 한다. 이때 몸싸움에 등장하는 이가 건장한 선접군이다.

그는 짜른 도포를 젖혀 매 옷매무새를 단단히 한데다 말뚝 막대기 등 이상한 도구를 들고 자기 편(接)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한 등을 밝히고 문 앞에 기다린다.

밤새 기다린 끝에 문이 열리면 등불이 줄을 이어 화살처럼 쏘아 들어간다. 이것이 과장으로 <천일록(千日錄)>엔 이런 내용이 보인다.

<과거철이 되면 한양과 시골의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잡된 무리들이 관광이라 핑계대고 세력가의 수종(隨從)이 되길 자원해 과거장에 입장하는 쟁접(爭接)을 자원하여 자신을 내세운다.>

한 마디로 과거철이 되면 과장에 들어가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밝히는 말이다. 날이 밝자 정약용은 과시가 열리는 영화당 앞뜰로 달려갔다.

[주]
∎거자(擧子) ; 과거 때,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
∎쟁접(爭接) ; 자리다툼
∎공석(空石) ; 빈자리
#추리,정약용,명탐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3. 3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4. 4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5. 5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