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새해에는 딱 헌법만큼만 제발 해주세요

[서평]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등록 2010.12.28 16:36수정 2010.12.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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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민국의 광장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사람들의 입에서 노래로 흘러나왔다. 노래는 외침이 되고 노래는 때로 물대포 앞에서 절규가 되었다. 그 앞에서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이 당연한 말을 알려줘야 하는 상황에 분노했고 슬펐다. 그리고 2009년 초 정부는 스스로에게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주었다. 불법시위를 근절하고 법치주의를 확립시켰다는 것이다.

 

2010년 여름 우리의 각하는 공정한 사회를 외쳤고, 각하가 감명 깊게 읽으셨다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8년, 2009년의 화두가 법치주의였다면 2010년의 화두는 공정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가장 공정해야 할 검찰은 떡검을 넘어 섹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청와대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으로 얼룩졌다. 공정함을 찾아보려야 볼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이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다시금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펼친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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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 ⓒ 돌베개

▲ 책겉그림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 ⓒ 돌베개

2009년 출간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헌법에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지식소상인으로 돌아온 유시민 전 장관이 헌법을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1부와 장관과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자신이 느꼈던 바를 가감 없이 적은 2부로 나뉘어져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 책의 백미는 2부가 아니라 1부에 있다고 생각된다. 늘 알고 있다고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헌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벅찬 말로 이루어져있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 헌법만큼도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말한다. 국민 모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의 불가침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단어를 들어야 하며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예산을 늘기는커녕 줄어들고만 있다.

 

다시 헌법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 집회와 결사, 그리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집회와 결사를 하기 위해 불법집회가 아님을 관(官)으로부터 허가받아야하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촛불을 들고 때로는 목소리를 드높였다가 밥그릇을 뺏겨야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또 헌법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국경 넘어 있는 그곳은 적이 아니라 인정해야 할 민족이며 우리의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날 한반도의 두 국가는 대포를 쏘고 맞서 사격훈련을 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자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헌법만큼만, 헌법처럼만 해주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올라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우리 사회를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헌법만큼도 지키지 못하는 사회 말이다. 헌법이 존재가 아니라 당위인 사회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나는 바란다. 2011년 새해에는 헌법이 당위가 아니라 존재인 사회로 한발 성큼 내딛기를 말이다. 적어도 정책을 국민 앞에 서고 정책을 비판받고 정책으로 사과하는 정부를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각하, 새해에는 헌법만큼은 지켜주십시오. 그게 공정사회고 그게 법치주의입니다. 각하.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수정 후 중복게제합니다.

2010.12.28 16:3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수정 후 중복게제합니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09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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