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불명확...사문화된 조항 갑작스레 적용"

헌재, 미네르바 구속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 위헌 결정

등록 2010.12.28 17:18수정 2010.12.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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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판정 후 박대성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사이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2)씨의 기소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검찰은 박씨가 2008년 7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라는 제목으로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것처럼 허위 사실을 게시해 수만 명의 누리꾼들이 열람하게 함으로써 정부의 외환정책 및 대외지급능력에 대한 신뢰도 등을 떨어뜨렸다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촛불집회 유죄 선고' 김아무개씨도 같은 헌법소원 내 

박씨를 구속시킨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지난해 4월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박씨는 재판 진행 중에 전기통신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당하고, 검찰이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자 지난해 5월 전기통신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또한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 경찰관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집회에 참여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허위 내용의 글과 자신이 직접 조작한 합성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은 김아무개(39)도 같은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8일 재판관 7(위헌)대 2(합헌)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전기통신법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의 통신을 금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익'은 형벌조항의 구성요건으로서 구체적인 표지를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 또는 헌법상 언론 출판의 자유의 한계를 그대로 법률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할 정도로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어떤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판단주체가 법률전문가라 해도 마찬가지이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해 그 의미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익간 형량의 결과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아니고,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해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사문화된 상태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작스레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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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판정 후 박대성(오른쪽)씨와 박찬종(오른쪽 두번째) 변호사가 박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박경신(왼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조대현, 김희옥, 송두환 재판관은 '허위의 통신' 부분의 명확성 원칙 위반 여부에 관해 보충의견을 냈다. 이들은 "장시간에 걸쳐 사문화된 상태에 있었던 이 사건 법률조항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내용상 허위의 통신 행위에 대해 갑작스레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 법률조항의 '허위의 통신'이 어떠한 행위를 말하는지 다시 의문이 제기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법류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이 불명확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허위의 통신' 부분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도,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를 국민이 알 수 없게 해 법을 지키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범죄의 성립 여부를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

또 이강국, 이공현, 조대한, 김종대, 송두환 재판관은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보충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허위사실의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이 침해된다거나 국가질서의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해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 주체로 하여금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 스스로 표현행위를 억제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아, 제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표현이 억제된다면, 표현의 자유의 기능은 훼손될 수밖에 없어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이동흡·목영준 재판관 "정당한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

반면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허위사실의 유포에 의한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의 침해, 국가공공질서의 교란 등을 방지하고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권을 보호해 민주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당한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이라며 합헌 의견을 냈다.

또 "전기통신설비에 의한 허위사실의 유포는 강한 파급력을 가진 점, 명백한 허위의 사실이라도 통신이용자들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신속하게 교정되기가 매우 어려운 점, 허위사실을 둘러싼 장시간의 논쟁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소모될 수 있는 점 등을 참작하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일정한 범위의 명백한 허위통신에 대해 통상의 표현행위보다 엄격한 규제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미네르바 #박대성 #전기통신기본법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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