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세월, 황토고원에 숨 쉬던 '역사의 활화석'

[중국발품취재 2010-5] 위츠 허우거우 고촌락을 가다

등록 2010.12.30 17:20수정 2010.12.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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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황토고원에 숨 쉬던 '역사의 활화석' ⓒ 최종명

▲ 천년 세월, 황토고원에 숨 쉬던 '역사의 활화석' ⓒ 최종명

오래된 마을을 찾을수록 신기하고 정겹다. 중국에는 수많은 옛 촌락이 관광지로 개발돼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구와 역사, 영토와 민족이 다양한 만큼 촌락도 각각 독특하다. 그래서 촌락만 전문으로 여행하거나 또는 연구하기도 한다. 안후이(安徽) 남부의 고촌락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전국 어디나 지형과 풍토에 어울리는 재미난 촌락이 많으니, 관심 가져보면 흥미롭다.

 

산시(山西) 진중(晋中)에 있는 허우거우(后沟)라는 이름의 촌락도 매우 특이하다. 성 수도 타이위엔(太原)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가면 위츠라오청(榆次老城) 종점이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 기찻길도 없고 국도도 먼 지방도로를 1시간 더 달려간 후 또 1시간 이상을 더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이 대중교통도 변변하지 않은 마을이니 택시요금도 비싸다. 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예 모른다고 내빼는 택시 몇 대를 보내고 나니 점점 손님과 운전사가 합의할 수 있는 요금, 60위엔이다. 거의 1시간이나 달려 둥자오향(东赵乡) 마을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40위엔이나 받는 이 촌락의 공식이름은 위츠허우거우농경문화관광구(榆次后沟农耕文化景区)이다. 되돌아갈 일도 걱정이지만 우선은 이 마을 속으로 푹 들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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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허우거우 고촌락 입구에 있는 조형물 ⓒ 최종명

농경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허우거우 고촌락 입구에 있는 조형물 ⓒ 최종명

황토 산과 푸른 빛 살짝 도는 나무 앞에 황토 색깔 나는 조각상이 보인다. 땅을 가는 소와 소를 재촉하는 사람, 후구구촌(後溝古村) 농경문명(農耕文明) 8글자도 모두 누렇다. 메마르고 높은 고원지대를 한위엔(旱塬)이라 하는데 정말 온 산이 다 황토로 뒤범벅이고 해발도 거의 1천 미터에 육박한다. 어떻게 이곳에 촌락을 형성하고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마을로 들어서니 주민들도 군데군데 보이고 방문객들도 여럿 눈에 띤다. 입구에 5백 년은 붙박고 살아온 노목 2그루가 서로 가지를 잇대고 서 있다. 아마도 마을의 광장인가 보다. 무대인 구시타이(古戏台)와 도관(道观)이 마주 보고 있는데 미술학도도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옥황상제가 자리잡고 있는 도관 앞에 앉은 학생은 곁에 다가가도 인기척도 없다. 건너편 언덕 불교사원 관음당(观音堂)에도 도화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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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에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학생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에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학생 ⓒ 최종명

산길을 따라 오르면 벽돌로 쌓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약 70여 채의 집이 옹기종기 살아왔으며 지금은 250여 명의 주민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워낙 멀리 떨어진 두메산골이라 농사부터 생활에 필요한 것을 다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흔적이 많다.

 

집마다 역할분담이 이뤄졌던 듯 쌀, 팥, 밀, 콩, 기장을 찧던 오곡방(五谷坊)이나 술을 빚던 주방(酒坊), 두부를 만들던 두부방(豆腐坊), 식초를 만들던 초방(醋坊), 그리고 기름을 짜던 향유방(香油坊) 간판이 걸려 있다. 당나귀가 식초 공장에서 눈을 가리고 돌고 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정미용 연자방아도 있다.

 

역시 사람들이 시끌벅적거리는 곳은 양조장이다. 전통양조 방식으로 만드는 허우거우구주(后沟古酒)가 탐이 난다. 항아리에 담은 것도 있고 유리병에 담은 것도 있는데 맛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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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에 있는 오곡방(五谷坊). 술 빚던 주방(酒坊), 두부 만들던 두부방(豆腐坊), 식초 만들던 초방(醋坊), 기름 짜던 향유방(香油坊)이 있다.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에 있는 오곡방(五谷坊). 술 빚던 주방(酒坊), 두부 만들던 두부방(豆腐坊), 식초 만들던 초방(醋坊), 기름 짜던 향유방(香油坊)이 있다. ⓒ 최종명

다시 산비탈을 걸어 오르는데 한 노인이 길바닥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화롭게 조용히 부르다가 낯선 이방인이 다가가니 약간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낯익은 노래인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홀로 노래를 즐기고 있는데 방해를 한 것 같아 미안하다.

 

갑자기 불쑥 여행을 온 초등학생들이 잔뜩 나타났다. 흰 모자를 쓰고 오렌지색 셔츠를 한 아이들이 인솔 선생님을 따라 가는데 시끄럽다. 이런 산골까지 와서 농경문화를 배우러 오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우리나라라면 어느 학교가 이런 곳을 일부러 찾을까 생각해봤다. 아이들은 농경생활문화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농사 짓는 법이나 농가 생활을 보며 여전히 떠든다. 한 아이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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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 관람 온 초등학생 아이들. 농경박물관을 둘러보며 학습한다.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 관람 온 초등학생 아이들. 농경박물관을 둘러보며 학습한다. ⓒ 최종명

아이들을 따라 가는데 집 마당에 서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인다. 옆집 처마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옹기종기 앉아 있고 그 앞을 고양이 한 마리가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뒷동산으로 오르니 빨간 부리가 멋진 토종 닭도 보인다.

 

이곳은 평지와 해발이 67미터 차이가 난다. 높은 곳으로 오르니 마을도 다 보이고 둘러싼 산세도 다 보인다. 황토를 부은 듯한 산 2개가 양쪽으로 빙 둘러 위치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 마을 속설로 전해오는 말로 '얼룽시주허우거우춘(二龙戏珠后沟村)'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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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 모습. 황토고원에 자리잡은 마을답게 용 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듯 길게 뻗은 2개의 산이 양쪽으로 마을을 보듬고 있다.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 모습. 황토고원에 자리잡은 마을답게 용 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듯 길게 뻗은 2개의 산이 양쪽으로 마을을 보듬고 있다. ⓒ 최종명

두 마리 용이 구슬을 물고 하늘을 오르는 형세라는 뜻인데 사뭇 마을 별명이 극존칭이라 할만하다. 이 말은 중국 황제나 공자를 상징하는 건물에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속담으로 전해왔길래 망정이지 이를 기록했다면 아마 마을은 전멸했을 지도 모른다. 이 마을이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당나라 시대인 9세기 초 묘비명 기록이라 하니 천년 이상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마을이다.

 

비탈길을 따라 윗동네로 올라갈수록 집들은 관광지답게 숙식을 겸하고 있다. 집 이름도 독특하며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것도 재미있다. 댜오차오위엔(吊桥院)은 'Hanging Bridge Courtyard', 반포위엔(半坡院)은 'Half-slope Courtyard'라고 적혀 있다. 사실 댜오차오라는 말은 방어시설로 긴 동굴로 이어진 지형이며 반포라는 말은 비탈 중간이라는 뜻이니 집의 위치를 연상해 지은 듯하다. 장씨 일가의 사당도 보이는데 황토 굴을 파고 그 안에 초상화와 신주를 모시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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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에 있는 장씨사당. 황토고원에 동굴을 짓고 사당을 세웠다.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에 있는 장씨사당. 황토고원에 동굴을 짓고 사당을 세웠다. ⓒ 최종명

황허(黄河)를 따라 황토고원에는 동굴 집인 야오둥이 전통가옥이라 할 정도로 많다. 이 산골 가옥의 특징은 반혈거(半穴居) 형태의 야오둥(窑洞)이다. 완전 동굴 집 형태도 있지만 사합원(四合院)처럼 바깥문과 안쪽으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나오고 실제 사는 집은 동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허우거우 마을에 와서 가장 신기한 것은 마당 벽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조형물이다. 흔하게 보기 힘든 모양인데 대체로 마을 수호신인 토지야(土地爷)와 같은 조각상이 숨겨 있다. 벽을 파고 안에 아주 작은 크기의 수호신을 두고 지붕을 덮고 집 모양으로 쌓아 마치 축소된 사당을 집집마다 모셔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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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의 집집마다 자그맣게 만들어진 사당 형태의 조형물. 도교 및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오도묘(왼쪽 아래)는 옥황제의 후손으로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는 오도장군 사당.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의 집집마다 자그맣게 만들어진 사당 형태의 조형물. 도교 및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오도묘(왼쪽 아래)는 옥황제의 후손으로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는 오도장군 사당. ⓒ 최종명

그러고 보니 산 동쪽에는 문창묘(文昌庙)가 있고 서쪽에는 관제묘(关帝庙)가 있다. 동문서무(东文西武)의 원칙에 따라 마을 전체의 길흉화복을 빌고 있다. 마을 한복판에 도관인 옥황묘(玉皇庙)가 있는데다가 마을 서남쪽에는 불교 사당인 관음당(观音堂)이 있고 반대편에는 도교의 현무를 뜻하는 진무묘(真武庙)가 자리잡고 있다.

 

민간신앙과 관련된 산신묘(山神庙)나 사람의 생사를 관장한다는 오도장군(五道将军)의 오도묘(五道庙)도 있다. 마을 전체가 마치 모든 민간신앙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오랜 역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산골 깊은 곳에서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외부와 크게 교류하지 않고 공동체생활을 해온 마을치고는 굉장히 다양한 종교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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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 농가에서의 점심. 산채, 두부, 계란 요리로 조밥과 함께 전통 술을 곁들였다. 2인 기준 100위엔 미만.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 농가에서의 점심. 산채, 두부, 계란 요리로 조밥과 함께 전통 술을 곁들였다. 2인 기준 100위엔 미만. ⓒ 최종명

사합원과 동굴이 복합된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채나물과 토종 계란, 동네 두부를 반찬으로 조밥과 마을에서 직접 양조한 술 한 병을 주문했다. 친구와 동행해 함께 갔는데 서로 기다렸다는 듯 한 잔 마셨다.

 

곡주가 다 그렇지만 구수한 향과 더불어 지역특색이 강렬한 알코올 농도가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마침 촉촉한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방금 한 밥 내음이 노란 때깔까지 예뻐 빗소리 들으며 산골마을 한 끼 식사는 너무도 환상적이다.

 

동굴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내도 좋을 듯하다. 하루 묵는데 100위엔인데 다시 오면 아주 싸게 해주겠다고 한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명함까지 주면서 한국사람들에게 많이 알려달라고 한다. 글쎄 이 산골을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옆자리에는 남녀가 나란히 앉아 역시 조밥을 먹고 있다. 얼핏 보니 중년의 남자와 다소 어린 아가씨였기에 괜히 눈치가 보여 그저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누기만 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마침 비도 조금 그쳤다. 산골을 내려가는 길에 오도묘를 거쳐 관음당을 둘러봤다. 아담한 암자로 제 격인데 10여 개나 되는 마을홍보용 홍등을 걸어놓아 영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관음당으로 들어서는데 황토색 도포를 입은 스님이 따라온다.

 

공짜로 향 3개를 받아 들고 관음보살 앞에서 예를 올리는 동행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눈치가 영 불안하다. 아니나다를까 친구를 붙잡더니 관상을 보기 시작한다. 사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빨리 나가려는데 계속하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첫 마디에 '당신은 추차이(储财) 능력이 별로 좋지 않다'고 꼬신다. 주차이라는 말은 돈을 벌어서 쓰지 않고 모으는 것을 말하는데 '1천위엔을 벌지만 8~9백위엔을 쓰는 사람'이라니 다음 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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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의 불교사당 관음당 모습. 관음당 안쪽(왼편)과 바깥(오른쪽) 모습이다.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의 불교사당 관음당 모습. 관음당 안쪽(왼편)과 바깥(오른쪽) 모습이다. ⓒ 최종명

한참 관음당 안을 두루 다 둘러보며 마음껏 돌아다녔다. 이런 사당은 관상을 보며 돈벌이를 하는 대신 사진 찍는 일에 관대한 편이다. 동행도 마음이 급해서인지 10여 분만에 나왔다. 관상을 봐주는데 1천위엔을 내라고 하는데 그냥 나오기 그래서 1백위엔을 주니 그냥 받더라고 한다. 원자재가 드는 일도 아닌데 아마 얼마를 줘도 고맙다고 할 스님이다. 그런데 정말 스님이 관상을 봐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도교와 불교, 유교가 다 융합돼 섞인 마을이라 해도 좀 심했다.

 

마을을 나와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버스 시간을 물었더니 걸어가는 것이 나을 듯싶다. 젊은 친구 하나가 한국사람이냐고 갑자기 물어서 몇 마디 나놨다. 방언이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인사말인 니하오(你好)를 '니호'라 발음한다. 베이징 인근 허베이(河北)나 산시(山西) 방언이 우리말과 비슷한 듯하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허베이 술인 라오바이갈(老白干儿)을 '로빼갈'로 발음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미가 붙어 헤어지는 말을 물었더니 자이젠(再见)을 '자이제'라 한다. 우리는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자이제'라고 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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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거우 고촌락이 있는 위츠 시에 있는 고성 관광지에서 쌀에 글자 새기는 공예인 미커(米刻)를 파는 여학생 ⓒ 최종명

허우거우 고촌락이 있는 위츠 시에 있는 고성 관광지에서 쌀에 글자 새기는 공예인 미커(米刻)를 파는 여학생 ⓒ 최종명

터벅터벅 1시간 걸어갈 일이 끔직하다 싶을 때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식당에서 만났던 불륜 느낌 강한 한 쌍이다. 급히 지나가기 전에 손을 흔들었더니 뜻밖에도 멈춰 서더니 차를 태워준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부탁한다고 했는데 시내까지 데려다 준다. 길에서 차를 얻어 타기 드문 중국이다 보니 정말 무지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위츠라오청(榆次老城)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쌀에 이름이나 명언을 새겨 넣어 목걸이를 만들어 파는 미커(米刻)가 보였다. 언니와 동생이 수업 끝난 후 아르바이트로 한다고 해서 하나 팔아줄 요량이 들었다.

 

쌀에 '13억과의 대화'라는 뜻의 <허스싼이두이화(和十三亿对话)>를 새겨달라고 하니 글자가 길어도 문제없다며 웃는다.

 

중국 고촌(古村)은 전국적으로 아주 많다고 했다. 각양각색의 마을마다 역사가 있고 토양이 다르며 생활방식이 다 다르다. 물이 많은 수향이 있으며 산이 높은 고원마을도 있을 것이다. 민족이 56개나 되고 민족문화 역시 주거문화가 기반일 터이니 정말 옛 촌락 다 둘러보려면 평생 다녀도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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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에 글자 새기는 공예를 파는 여학생 본문기사 참조 ⓒ 최종명

▲ 쌀에 글자 새기는 공예를 파는 여학생 본문기사 참조 ⓒ 최종명

 

유명 여행사이트인 르투(乐途)닷컴을 보면 고촌락을 '역사의 활화석(历史的活化石)'이라 표현했다. 정말 어울리는 말이다. 하루 종일 농경문화가 풍부하고 종교도 골고루 섞인 천 년 역사의 흔적과 만났다. 흔적만큼 진한 황토 마을의 인상도 머리 속에 또렷하게 새겼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촌락 #황토고원 #허우거우 #농경공동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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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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