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무상급식이 풍선이라고 믿으십니까?"

<중도일보> 김학용 논설위원의 '무상급식 반대론'을 읽고

등록 2010.12.31 18:49수정 2010.12.3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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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30일 오후 지난 22일 부터 시작했던 무상급식 촉구 노상농성을 마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2010년이 다 가기 전 마지막 기운을 소진하는 듯, 연말을 앞두고 폭설과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에도 지난 22일부터 30일까지 대전시교육청 앞에서는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야5당 당직자들이 노상농성을 벌였다.

살을 에는 바람 한 점 막을 천막 하나 없이, 차디찬 길바닥에 종이박스와 장판 한 장 깔고 그들이 농성을 해야 했던 것은 바로 '무상급식' 때문이다. 아니,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김신호 대전교육감 때문이다.

지난 6월 새롭게 대전시장에 당선된 염홍철 대전시장은 2011년 3월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전면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대전시교육청이 무상급식에 반대해 매칭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모두 삭감했다.

몇몇 시의원들의 추궁에 김신호 교육감은 자신의 소신이며 교육철학이라고 강조하면서 예산의 우선순위를 내세웠다. 즉, 예산이 많아서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좋겠지만, 예산이 부족하니 무상급식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 교육감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무상급식을 "대중들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김 교육감의 확고한 소신 때문에 전국 16개 광역단체 중 10곳이 합의하고, 3곳이 진행 중에 있는 무상급식이 대전에서는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 등이 이 추운 엄동설한에 거리에 나앉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발 부탁이니 추경에서는 그 고집을 꺾고 무상급식 예산을 반영해 달라는 간절하고도 간곡한 호소를 보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러한 농성자들을 더욱 얼어붙게 하는 한 글이 지역 일간지인 <중도일보>에 실렸다. 김학용 논설위원이 30일자 신문 20면에 쓴 '신 목민학-무상급식 반대론'이 바로 그 글이다.

'나는 전면 무상급식엔 반대하는 쪽이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서 김 논설위원은 무상급식은 가난한 집 학생들이 가난을 친구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지방정부와 교육청이 숨겨주는 제도라고 규정했다. 그러고는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무상급식 대상자에게 돌아갈 다른 지원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가난을 숨겨주기 위해 그 학생에게 돌아가는 다른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논설위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김신호 교육감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거론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논리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무상급식은 '조삼모사'와 다르지 않다고 강변한다.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예산을 깎아 부자들에게 공짜 점심을 주는 방법으로라도 가난을 숨겨주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특히 그는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줄 밥값이면 가난한 아이들에게 컴퓨터도 바꿔주고 학원비도 대줄 수 있다는 김신호 교육감의 논리를 대변한다. 또 가난은 죄가 아닌데, 왜 감춰줘야 하느냐면서 가난은 숨겨줄 게 아니라 극복하도록 도와줘야한다고 말한다.

김 논설위원은 또 염홍철 대전시장이 무상급식 정책을 선택한 것은 진보진영에서 선거용 무기로 내놓은 '무상급식 프레임'에 걸려든 것이고, 거부하기 힘든 정치프레임에 휩쓸려 버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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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30일자 신문 20면에 실린 김학용 논설위원의 '신 목민학-무상급식 반대론' ⓒ 중도일보


나는 무상급식에 대한 김신호 교육감의 소신을 그대로 대변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역시 본질은 '정치구나'하는 생각에 손뼉을 쳤다. 정치(政治)=당파성(黨派性), 즉,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이거나 혹은 부자의 편이거나 하는 것 말이다.

'보편적 교육 복지'라 일컫는 무상급식을 두고 "가난한 집 학생들이 가난을 친구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지방정부와 교육청이 숨겨주는 제도"라고 (믿기지 않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 보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김학용 중도일보 논설위원…. 아니 어딘가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풍선효과(balloon effect)'를 맹신한다는 점이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그만큼 무상급식 대상자에게 돌아갈 다른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참으로 손쉬운 계산법이 아닐 수 없다. 왜 복지예산의 총액은 항상 그대로 두고 이리저리 풍선의 몸매만 탓하는지 모르겠다.

대전시교육청의 지난해 불용액이 6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라 불필요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예산을 줄이면 무상급식을 할 예산은 만들고도 남는다. 왜 꼭 무상급식을 하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주려던 혜택을 빼앗아서 주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나. 교육감 판공비 좀 줄이고, 불필요한 해외 연수도 좀 줄이고, 관변단체 지원금도 좀 줄이고, 언론인들 밥 사주는 예산도 좀 줄이고 하면 안 되나. 차라리 무상급식을 하면 해외연수도 못 가고, 언론인들과 밥도 마음껏 못 먹게 된다고 주장해 보라는 말이다.

결국, '풍선 논리'의 핵심은 이것이다.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밥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들의 아이들조차도 공짜로 밥을 먹게 되니, 정작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어든다?" 어찌 들으면 그럴듯하다.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세금탈루할 일이 없는데, 항상 부자들이 세금을 떼먹으니 세금도 안 낸 사람들에게 공짜로 밥까지 먹인다고 하면 좀 과한 복지로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착각이다. 무상급식은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재와 같다. 적어도 의무교육 기간에서의 무상급식은 더욱 그렇다. 등록금 낼 능력이 있는 부잣집 아들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록금을 내라고 하지 않는다. 돈 많은 부자이니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조세제도가 담당하는 것이지 교육과 의료, 그리고 급식이 그 역할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누구나 마음껏 교육받고 치료받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제기를 마땅히 해야 할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거꾸로 수혜자들이 나서서 떠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김학용 논설위원이 주장하는 '정치 프레임'에 그들이 갇힌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명품 대전 교육'을 외치고 있는 김신호 교육감은 이것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역 언론의 논설위원까지 나서서 자신의 소신을 이렇듯 대변해 주고 있으니 얼마나 흐뭇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미 대세는 굳어졌다. 김 교육감은 이미 무상급식의 주적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아무리 김 교육감을 옹호하려는 언론인이 열심히 필력을 휘날린다 해도 무상급식으로 가는 세계적 흐름, 도도한 역사의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해 벽두, 정치인이 아닌 교육자로서 김 교육감의 일설이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신정섭 기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 정책실장 입니다.


덧붙이는 글 신정섭 기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 정책실장 입니다.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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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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