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고?

[서평] 이언 스튜어트의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등록 2011.01.03 17:03수정 2011.01.03 17:03
0
원고료로 응원

미국 CBS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6(Criminal Minds, 2010)>의 한 장면. ⓒ CBS


글을 시작하면서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드라마를 가끔 본다. '범죄 심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수사물이다. 언젠가 거기에 '얼굴대칭'과 관련된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들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대칭에 이끌린 용의자가 연쇄적으로 살인행각을 벌이게 된다는 줄거리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대상에는 반드시 '대칭'이 들어있다고 한다. 대칭의 무늬를 만드는 회화기법인 '데칼코마니'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대상을 보면서 인간은 미의식이 선사하는 희열과 함께 커다란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름다움의 첫 번째 필요충분조건은 대칭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의 부제는 '대칭의 역사'다. 여기서 우리는 이언 스튜어트의 집필 의도를 금방 포착할 수 있다. 대칭의 역사를 통하여 아름다움과 진리의 관계를 엮어내려는 시도. 지은이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 <그리스의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를 인용하여 "아름다움은 진리이며, 진리는 아름답다"고 못 박는다. 사실인가.

60진법과 수(數)의 약사에 대하여

수가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세비야의 대주교였던 성 이시도루스는 <어원사전>에서 일갈했다. "모든 것에서 수를 없애보라. 그러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 데모크리토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히피아스 등이 포진하여 전성기를 맞았던 피타고라스학파가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주장한 것은 설득력이 있다.

오늘날 통용되는 숫자표기법은 1500년 전에 만들어졌고, 800년 전에 유럽에 소개되었다. 생각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수의 체계에 담긴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수께끼를 풀어온 셈이다. 한 가지 질문.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왜 60진법을 썼을까.


"그들은 원을 360도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나누었다. 왜 그들은 10진법 대신 60진법을 썼을까. 60이라는 숫자가 가진 유용성 때문일 것이다. 60은 약수의 개수가 많다. 60은 2, 3, 4, 5, 6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10, 12, 15, 20, 30으로도 나누어진다. 이것은 곡물이나 토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아주 편리한 성질이다." (22~37쪽)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의 체계는 꽤나 복잡하고 기나긴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한동안 1과 2를 제외하고 3부터 숫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복수성과 다수성을 인식하기에 1과 2는 부족한 숫자였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과 2가 수의 체계에 포섭되고, 훨씬 뒤에 인도 수학자들이 신비한 수 '0'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0을 인식하고 난 다음 인도와 중국의 수학자들이 음수개념을 발전시켰고, 그 이후에 분수와 무리수, 소수와 무한소수가 발견된다. 그러다가 영국의 수학자 윌리스가 허수직선과 복소평면을 발견하였고, 1837년에는 해밀턴이 복소수를 대수학의 대상으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수리물리학의 거의 모든 문제를 푸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225쪽)

대칭에 관하여

책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 대칭의 역사>(이언 스튜어트 저/안재권 공역) 겉그림. ⓒ 승산

이언 스튜어트에 따르면, 대칭은 수학의 모든 분야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기본적인 수리물리학 개념의 기초라고 한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대칭은 세계에 내재된 근본적인 규칙성을 표현하며, 물리학을 추진하는 동력이다. 회전과 같은 연속적인 대칭은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이것들은 폐쇄된 계(界)가 에너지를 얻지도 잃지도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법칙 같은 여러 가지 보존법칙을 암시한다. 이것을 밝힌 사람은 에미 뇌터(E. Noether)였다." (251쪽)

지은이는 아인슈타인을 대칭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꼽는다. 수학을 기초물리학 분야로 옮김으로써 거미줄처럼 복잡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자, 수학적 원리에 지배받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신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주질서의 상징이었다.

스튜어트는 대칭에 내재된 함의를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대칭이 물리학, 또는 모든 과학에서 가지는 의미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우리는 대칭군(對稱群)이 미개척지로 나아가는 길임을 안다. 적어도 더욱 강력한 수학적 개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414-415쪽)

아름다움의 영역을 넘어서 과학적 진리에 이르는 대칭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무엇이 옳은가

지동설을 이단으로 간주한 로마 가톨릭교회가 지동설을 끝까지 주장한 조르다노 브루노를 1600년에 로마의 저잣거리에서 재갈을 물려 화형에 처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천동설이 아니라, 지동설이 옳다고 확신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고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설명이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설명이나 큰 차이가 없다. 어떤 설명이든 선택하는 기준틀에 따라 타당하기 때문이다. 기준틀이 태양과 함께 움직이면 지구가 그 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며, 기준틀이 지구와 함께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상은 태양이 된다." (283쪽)

달리는 열차에서 창밖을 보면 승객이 고정되어 있어서 창밖 풍경이 지나간다는 인상을 준다. 들판에 서서 달리는 열차를 바라보는 사람 눈에는 반대로 보인다. 바라보는 주체와 기준틀에 따라 운동주체와 대상의 차이가 생긴다는 얘기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동설 때문이 아니라, '신의 존재부정' 같은 이단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아름다움과 진리의 관계: 원근법과 기하학

"수학을 모르는 자는 나의 저작을 읽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작 <회화론> 첫 번째 문장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과학자였던 다빈치는 이런 문구를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학당 입구에 붙어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문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이지 마라!"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과 예술이 가까운 사이였는데, 건축은 물론 회화에서도 수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기하학을 원근법에 적용하는 법을 알아낸 것이다. 브루넬레스키가 정확한 원근법에 필요한 수학적 방법을 체계화했고, 알베르티의 저서 <그림에 관하여>를 거쳐 피에로 프란체스카에 이르러 원근법은 완성된다.

원근법의 정수는 '사영(射影: 프로젝션)'이란 개념이다.

"화가는 사영을 이용하여 개념적으로 풍경의 각 지점으로부터 관찰자의 눈에 이르는 선을 그린 다음, 선이 종이와 만나는 지점을 관찰하여 평면 종이 위에 삼차원의 풍경을 옮긴다. 사영은 비유클리드적인 방식으로 형태를 왜곡시키는데, 특히 평행선을 평행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한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철로나 멀리 사라지는 고속도로를 보면 직선은 수렴하여 지평선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400-401쪽)

실물과 가까운 형태의 그림을 그리려고 생각해낸 개념이 원근법인데, 거기 담긴 모순을 스튜어트의 서책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은 작지 않은 기쁨이다. 예술과 과학 혹은 수학의 아름다운 공존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간단치 않은 문제인 셈이다.

글을 맺으면서

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는 "지구외문명탐사연구소가 최근 세 대의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가장 큰 우주선은 지름만 240㎞의 초대형이며, 나머지 둘은 이보다 작은 규모로 우주선들은 명왕성 궤도 너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곧 화성 궤도까지 다다를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2012년에 지구에 도착하리라는 기사와 더해져 우주선 이야기는 우리의 관심을 촉발시킨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발표한 슈퍼미생물도 우리가 도달한 과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독성물질인 비소를 신진대사 물질로 활용하는 미생물의 존재는 기존의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의 지은이는 "참이 아닌 모든 것은 추하기 때문에 수학에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참"이라고 결론 내린다. 진선미의 3일치 가운데서 진과 미의 일치를 주장하는 그에게 대한민국의 젊은 남녀는 성형으로 보답한다. 오늘도 우리는 '자연산'이 아니라, '성형미인'에게 이끌린다. 예쁘면 정말로 모든 게 용서되는가?!

덧붙이는 글 |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승산, 2010.


덧붙이는 글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승산, 2010.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 대칭의 역사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승산, 2010


#대칭 #수학 #물리학 #아름다움 #진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영화와 세상, 책과 문학, 일상과 관련한 글을 대략 3,000편 넘게 올려놓고 있으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라면 한 봉지 10원'... 익산이 발칵 뒤집어졌다
  2. 2 "이러다간 몰살"...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
  3. 3 기아타이거즈는 북한군? KBS 유튜브 영상에 '발칵'
  4. 4 한밤중 시청역 참사 현장 찾은 김건희 여사에 쏟아진 비판, 왜?
  5. 5 "곧 결혼한다" 웃던 딸, 아버지는 예비사위와 장례를 준비한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