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무슨 복지를 하려면, 돈이 남아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결코 아니다. 정말 경제발전하면서, 잘살아 보려고 한다면, 복지가 튼튼해야 한다."
권우성
그의 거침없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약속했던 시간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다. 올해 정치나 경제 등에서 핵심 이슈인 '복지' 문제를 물었다. 장 교수는 그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 유럽식 보편적 복지에 방점을 두어 왔다.
- 아시다시피 새해에도 '복지'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말이 오고 갈 것 같다."먼저 잘사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잘사는 것이고,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 하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식으로 보고 있는데."(목소리를 높이며) 한국에선 무슨 복지를 하려면, 돈이 남아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결코 아니다. 정말 경제발전하면서, 잘살아 보려고 한다면, 복지가 튼튼해야 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속에 고용이 불안하니까 진취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유능한 자원들은 모두 고시나 의사로 몰리고… 경제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역동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얼마 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복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는데, 일부 언론에선 박 전 대표를 만났다는 보도도 있었다."(웃으면서) 잘못 낸 것이다. 난 (박 전 대표를) 만난 적이 없다. 내 얘기를 듣고 싶다면, 어떤 정당이나 인물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 개인을 만나서 이야기해주거나, 그런 것은 하지 않는다."
- 복지 문제가 나오면 항상 거론되는 것이 '돈은 어디서 구할거냐'는 것이다."(국민이) 다 같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좀 더 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세금을 정부가 가져다 태워버리는 돈쯤으로 생각하는데, 좀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증세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나 기업들도 있는데."기업들은 세금 안 내려면,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가서 하면된다. 거기는 세금을 걷지도 못한다. 인프라가 안돼서…. 그런데 왜 그쪽으로 안 가고 스웨덴·핀란드 등 높은 세금을 내는 곳에 가서 사업하는지를 봐야 한다."
"현 남북격차 감안하면 통일세로 할 수 없다"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세계 최하위권이며, 한국보다 소득의 절반도 안되는 남미 국가는 오히려 조세부담률이 높은 곳도 있다"면서 "물론 정부가 투명하게 세금을 걷고, 의료나 교육 등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새해에 다시 불거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은 여전했다. 그는 FTA가 추진됐던 지난 2007년부터 꾸준하게 비판해 왔다(2007년 8월 30일 인터뷰
"한미FTA 반대하면, 대원군 지지자?").
특히 장 교수의 한미FTA의 반대에 대해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영국에 사는 장하준과 그의 아이들은 상관없겠지만 이 땅에 사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나 절실한 FTA임을 모르는 모양"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서로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이라며 "국익에 도움 되지 않으니까 반대하는 것이지, 단지 영국에 산다고 해서 그러는 것은(반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또 정부가 새해 향후 남북관계에 대비해 '통일세'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의 말을 잠깐 옮겨본다.
"독일은 아직도 구 동독에 주는 보조금이 GDP의 5%라고 해요. 동서독은 생활수준 차이가 3배에서 5배 정도였지만, 남북한 20배 차이가 나잖아요. 우리가 북한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하려면 아마 GDP의 25% 정도까지 지원해야 돼요. 국민소득 25%를 북한에 보조금 주고 살 수 있어요? 단지 통일세 정도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을텐데… 그렇다고 말은 통일했다고 하면서, 철조망 쳐놓고, 북한 주민 여권 가지고 들어오게 하는 것도… 그건 통일이 아니죠."이날 예정된 시간은 1시간 30분. 하지만 역시나 2시간 가까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매번 그와의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솔직하고 정직한 경제학자였다. 8년 전 첫 만남에서나, 지금에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