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창덕궁, 흔적도 희미한 경희궁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3)

등록 2011.01.09 17:14수정 2011.01.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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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인정전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인정전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인정전 ⓒ 정만진

창덕궁은 1405년(태종 5)에 지어졌다. 당시 종묘, 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건재했으므로 하나의 별궁(別宮)으로 세워졌는데,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다.

 

조선의 임금들은 주로 경복궁에서 정치를 했다. 따라서 창덕궁은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에 타 없어져 버린 후에는 경희궁과 함께 조선 왕실의 주요 무대가 된다. (창덕궁도 임란 때 불에 탔으나 곧바로 다시 지어졌고, 경복궁 대신 정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창덕궁은 뒤에도 여러 번 화재를 당했으나 그때그때 바로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대체로 본래의 궁궐 면모를 잃지 않았다.)

 

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어수문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어수문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어수문 ⓒ 정만진

창덕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外殿),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전 뒤에 펼쳐진 후원은 160여 종에 이르는 나무들과 300년이 넘는 고목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잘 살린 점에서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 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춘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에서 기념 촬영 중인 영친왕 내외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에서 기념 촬영 중인 영친왕 내외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창덕궁에서 기념 촬영 중인 영친왕 내외 ⓒ 정만진

창덕궁에 비하면 경희궁의 운명은 정말 기구하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이궁(離宮, 왕이 나들이 때 머물던 별궁으로 흔히 행궁이라 함)인 경희궁은 본래 왕족의 사저(私邸)였다. 그런데 이 집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말이 나돌자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로 증축을 하였다(1616년). 탄생부터가 창덕궁과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이 궁의 본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는데 영조 때 경희궁으로 개칭되었다.

 

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경희궁 숭정전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경희궁 숭정전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경희궁 숭정전 ⓒ 정만진

위의 사진은 1909년경에 촬영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의 숭정전은 지금 동국대학교로 옮겨져 있다. 그렇게 된 것은 1907년에서 1910년에 걸쳐 일제가 강제로 경희궁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그로써 본래 7만평 규모를 자랑했던 경희궁은 부속건물이 대부분 없어지고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되며 규모도 크게 축소되어 결국 지금 모양으로 줄어들면서 궁궐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현재의 자리에서 궁궐이 있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물로는 정전이었던 숭정전의 기단부와, 제자리에서 옮겨진 석수(石獸), 댓돌 정도가 있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있을 뿐이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어쩌면 이런 수모는 당해 마땅한 필연인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없는 궁궐의 사진 앞에서 문득 망국의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극찬의 <정치학> 제4 전정판 263쪽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이 문득 생각난다.

 

책임감은 특히 직업으로서 정치를 선택한 정치가들이 따라야 할 윤리이다. 정치가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한 일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정치가는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심정윤리뿐만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동기의 순수성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동기의 순수성을 구실이나 변명으로 하여 실패로 끝난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특히 정치의 세계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중략) 정치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결과가 중시된다.

 

조선이 망하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이 땅의 무고한 백성들은 수탈과 착취, 고문과 학살에 시달렸다. 그러나 정신대와 징병, 창씨개명으로 상징되는 민족의 잔혹사 앞에서 권력을 향유했던 자들은 어떤 책임을 졌던가.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한 민족 배반자들과 고종의 일부 친인척들이 나라를 내놓는 데 협조한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를 받았다는 보도를 보면, 그들에게는 책임윤리는커녕 심정윤리마저도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해방 이후 60년이 지났건만 친일 청산은 아직도 요원하고, 적극적 친일파의 자손들이 여전히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일제 덕분에 우리가 지금처럼 살게 되었다고 내놓고 떠들어대는 자들이 여기저기 건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과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럿셀(Bertrand Russell)은 인간에게 세 가지 싸움이 있다면서, 인간과 자연과의 투쟁, 인간과 인간과의 투쟁, 인간의 그 자신과의 투쟁을 말했는데, 친일 청산 문제가 이토록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우리는 잘 싸우지 못하는 민족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1932년 이전의 경희문 흥화문 정경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1932년 이전의 경희문 흥화문 정경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1932년 이전의 경희문 흥화문 정경 ⓒ 정만진

 

a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후손인 우리는 숭례문도 불로 태웠다. 2008년 2월 10일 밤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후손인 우리는 숭례문도 불로 태웠다. 2008년 2월 10일 밤의 일이다. ⓒ 정만진

▲ 일제 강점기 조선의 궁궐 유리건판 사진전 후손인 우리는 숭례문도 불로 태웠다. 2008년 2월 10일 밤의 일이다. ⓒ 정만진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시된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므로 크기, 구도, 이미지. 색깔 등이 본래의 것과 다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궁궐 사진이 많아 창경궁과 덕수궁 사진은 다음 꼭지에 싣습니다.

2011.01.09 17:14ⓒ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시된 작품을 재촬영한 것이므로 크기, 구도, 이미지. 색깔 등이 본래의 것과 다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궁궐 사진이 많아 창경궁과 덕수궁 사진은 다음 꼭지에 싣습니다.
#조선의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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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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