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 철새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박평수 위원장과 철새들에게 먹이주기

등록 2011.01.08 16:09수정 2011.01.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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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환경운동연합에서 1월에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12시에 진행하는 환경생태강의를 들으러 주교동 주민센터로 갔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안병옥(기후변화연구소 소장) 강사가 진행하는 "올바른 하천의 이해"였다.

안병옥 강사는 호수와 강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고, 건강한 강의 4가지 조건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건강한 강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상태가 제일 건강한 강이라는 것이다. 댐이나 보가 있어 강이 흐르지 못 하면 강은 죽는다. 강은 강변 육지와도 관계가 깊어 강변에다가 도로를 놓거나 체육시설화 하면 로드킬 같은 동물들의 죽음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특강이 끝나고, 콩나물국을 뜨뜻하게 먹으면서 옆 좌석에 있던 안병옥 강사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안병옥 아저씨 : "몇 학년이냐?"
나 : "중 3학년인데, 올해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됩니다."
안병욱 아저씨 : "학교는 어디 다니냐?"
나 : "파주자유학교에 다닙니다."
안병옥 아저씨 : "어? 내가 그 학교 이사장하고 좀 아는데..."
나 : "저희 아버지이십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의 아빠랑 친한 분이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 아저씨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사람은 605동, 한 사람은 602동에 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웃을 참 어렵게 만났다.

밥을 다 먹고 나니, 고양환경운동연합 박평수 집행위원장님이 장항습지에 철새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응했다. 박평수 위원장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소개하자면, 지난 여름, 41일간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 이포보 위에 올라서 농성을 하였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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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습지에 도착한 박평수 위원장 장항습지는 자유로 안에 있어서 들어가려면 군 철조망을 통과해야 한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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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바인에 포대를 묶는 박평수 위원장 ⓒ 김어진


박평수 위원장님의 차를 타고 자유로 한 가운데에 있는 장항습지 입구에 도착했다. 장항습지를 지키는 보초병의 안내를 받고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다. 풀숲에는 고라니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새들이 있어야 할 논밭에는 새가 없고 커다란 콤바인 한 대가 논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위원장님이 차를 논밭쪽에 세우자, 논밭을 돌아다니던 콤바인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콤바인에는 '농부' 라는 두 글자가 너무나 어울려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타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철새들에게 먹이를 나누는 일을 하게 되었다. 커다란 두 포대를 콤바인에다가 매단 후 밑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면 그 사이로 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할아버지는 그 콤바인을 몰고 논밭을 돌아다녔다. 나와 위원장님은 벼들이 한 곳에만 너무 모여 있는 경우, 손이나 발을 이용해서 넓게 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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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뿌리는 콤바인과 고라니. 고라니는 콤바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 김어진


새매가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다. ⓒ 김어진


작업하는 사이에, 내 머리 위로 새매 암컷이 나타나 날아갔다. 나는 황급히 사진을 찍어봤지만 녀석이 너무 가까웠고 빠르게 날아가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 했다. 장항습지에 어른 세 분이 더 오셨다. 위원장님이 그 어른들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방금 전에 날아간 새매를 찾기 위해 새매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논밭을 보니 고라니 2마리가 논밭을 뛰놀고 있었다. 고라니들 가까이서 찍어보겠다는 생각에 삵처럼 논둑 밑으로 몸을 숨기고 접근했다. 고라니와 나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 졌을 때,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고라니가 오길 기다렸다. 내가 고라니한테 접근하면, 고라니가 도망갈 게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고라니가 점점 내 쪽으로 걸어온다. 걸어오면서도 나를 가끔씩 쳐다보는데 내가 하도 가만히 있어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녀석은 태연하게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거 너무 가까이 오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쯤 녀석이 내 앞에서 우뚝 서 벼를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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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쳐다보는 고라니 . ⓒ 김어진


고라니는 다시 터벅터벅 자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눈 속에 누워있다 보니 춥고 어깨와 다리가 저려왔다. 되돌아갈 때도 접근하는 것처럼 고라니한테 들키지 않고 가기 위해 고라니가 더 멀리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고라니는 오히려 논둑을 건너, 내가 있는 논밭으로 왔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고라니가 안 보는 사이에 후다닥 논둑에서 기어 나와 고라니와의 조우를 피할 수 있었다.

다시 위원장님 차를 타고 장항습지의 진객 재두루미를 찾으러 가는 길에 보니 도로변에 고라니 2마리, 꿩 열댓 마리와 쇠기러기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동물들은 잠깐 멍하니 우릴 쳐다보다가 우리가 멈춰서니 그제야 일제히 도망을 갔다. 논밭에 있어야 할 동물들이 왜 이런 도로변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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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뿌리는 박평수 위원장 겨울을 나는 철새들을 위해 먹이를 뿌리고 있다. ⓒ 김어진


박평수 위원장님이 볍씨를 손으로 뿌리고 있다. ⓒ 김어진


박평수 위원장님은 먹이가 부족해서라고 한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산속에 멧돼지들이나 고라니들이 겨울철에 농가로 와서 배추를 먹고 벼를 먹고 해서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농민들은 멧돼지와 고라니를 잡으러 총과 사냥개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는데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우리 한국처럼 밀렵꾼들이 산에 직접 들어가서 총으로 쏴 잡는 식으로 동물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동물을 잡으면 오히려 동물들이 산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에다가 산채로 잡는 덫을 놔 산에서 내려오는 동물만 잡는다고 한다.

재두루미를 찾아봤지만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먹이를 뿌려놨으니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비행장을 바퀴로 잠시 달리는 것처럼 날갯짓을 하는 동시에 땅 위를 도움닫기하며 날아가는 기러기가 왠지 안타까워 보였다. 원래 기러기들은 이렇게 날아가지 않고 날고 싶으면 바로 위로 급상승하는 법인데, 먹이가 부족하니 힘이 없어 도움닫기에 의존해 날아야 한다. 오늘 준 볍씨가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러기가 날개를 펼치고 날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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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에 앉아 있는 쇠기러기들 쇠기러기들이 먹이를 찾으러 도로변으로 나왔다. ⓒ 김어진

덧붙이는 글 | 위원장님 사진만 3개가 나오네요. 위원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위원장님 사진만 3개가 나오네요. 위원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랍니다.
#장항습지 #철새 #먹이주기 #고라니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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