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환경운동가로 위장한 어느 경찰의 이중생활

영국 경찰 마크 케네디의 뒤틀린 7년... "모든 것이 미안하다"

등록 2011.01.10 20:54수정 2011.01.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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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환경운동가로 위장해 살아간 마크 케네디의 이야기를 보도한 <가디언>.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마크 케네디다. ⓒ <가디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03년 8월 12일, '지구 먼저(Earth First)'라는 영국 환경운동 단체의 모임이 열리고 있던 낙농장에 한 사내가 홀로 나타났다. 장발에다 문신을 하고 나무타기에 대해 끝없는 열정을 보인 이 기묘한 사내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고 고기를 먹는다는 것 외에는 다른 활동가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33세의 프리랜서 등반가 마크 스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사내는 사실은 런던경찰청 소속 경찰이었다. 이름은 마크 케네디. 1994년 무렵부터 경찰로 일한 케네디는 2003년 초 경찰청 산하 국가공안정보국(the National Public Order Intelligence Unit)에서 주관한 기밀 작전 요원으로 선발돼 환경단체에 잠입한 것이었다. 국가공안정보국의 목적은 이른바 "국내의 극단주의자들"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7년 넘게 케네디는 환경운동가로 위장해 살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0일(현지 시각) 케네디의 이중생활에 대해 보도했다.

기후 변화 문제에 적극 대처할 것을 촉구하는 평화적 운동을 방해하고자 잠입했던 케네디는 그 후 겉보기에는 열성적인 환경운동가로 살아갔다. 그는 2003년 이래 영국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해 열린 주요 집회에 거의 매번 참가했다. 런던에서 열린 G20정상회의 규탄 집회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인종주의 반대, 아나키즘, 동물권 보호 운동 단체 등과도 활동을 같이한다.

잠입 1년 후, 케네디는 활동가들에게서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그 다음해에 열린 G8정상회의를 비판하는 운동을 준비하는 네트워크였던 디센트(Dissent)에도 관여하게 됐다. 케네디는 2005년 석유회사인 BP를 규탄하는 배너를 걸기 위해 런던에서 나무에 올라갔다. 그 후 스코틀랜드로 가서 환경캠프에 쓰일 장비를 자신의 밴으로 실어 날랐다. 2006년에는 자기 몸을 하틀리풀 핵 발전소에 묶었고, 디드콧 발전소 크레인에도 올랐다. 

케네디의 활동 범위는 해외로 넓어졌다. 케네디는 가짜 여권을 활용해 22개 이상의 나라를 방문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댐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했고,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에스파냐를 여행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 네트워크를 죽 훑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행사를 조직하고 운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는 역할도 했다. 또한 세간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끌었던 몇몇 사안들에서는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그 덕분에 활동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이처럼 케네디는 단순히 환경운동 행사에 참여만 한 수준이 아니었다.


환경운동 심장부에 침투한 '스파이 경찰'

이렇게 환경운동의 중심부에서 살아가면서도 케네디는 경찰이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다. 케네디가 환경운동가라는 위장된 신분을 활용해 얻어낸 자세한 내부 정보들은 그대로 경찰 손에 들어갔다.

외관상 "완벽한 활동가"로 보이는 케네디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2008년부터 늘면서 이중생활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케네디를 미심쩍어한 일부 동료들은 그의 등 뒤에서 "형사가 박아놓은 돌"이라고 수군거렸다. 2010년 10월, 마침내 이중생활이 막을 내리는 날이 왔다. 몇몇 사람이 케네디의 본명이 적힌 여권을 발견한 것이다. 뒤이어 케네디가 경찰이라는 증거 서류를 찾아낸 이들은 그것을 케네디에게 들이댔고, 케네디는 정체를 실토했다.

케네디는 위장요원으로 활동한 대가로 매년 25만 파운드(약 4억3000만원)를 받았으며, 자신이 잠입한 것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고 환경운동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미안하다. 정말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며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후 케네디는 경찰청에 사표를 내고 영국을 떠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케네디의 정체와 그가 한 일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신분을 위조해 위장 침투시킨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 사회운동을 조종하려 한 것은 아닌지 등의 비판에 답해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런던경찰청 대변인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현재 영국에서는 케네디가 환경운동가로 위장해 활동하던 시절 벌어진 한 사건에 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비판하고자 '랫클리프 온 소어' 화력발전소에 침투할 음모를 꾸민 혐의로 2009년 4월 체포된 환경운동가 6명에 대한 재판이다. 당시 침투 계획을 수립할 때 케네디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는데, 경찰은 이들이 침투하기 전날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이들을 체포했다(케네디가 경찰에 정보를 넘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케네디는 속죄한다는 의미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들을 "도울 것"임을 내비치고 그들의 변호사와 접촉했었다. 그러다 3주 전 가족과 그 자신의 안전이 염려된다며, 돕겠다는 뜻을 철회한 상태다.
#영국 #경찰 #환경운동 #위장 #마크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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