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억' 때문에 낙마한 정동기, 억울하겠다

[주장] 죄질 더 나쁜 '투기' 최중경은?...'그들만의 MB 정부'

등록 2011.01.14 10:20수정 2011.01.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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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한 달 봉급 1억'이라는 급여명세서는, 끝내 국민들을 납득시키질 못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지난 12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다.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못내 아쉽고 섭섭했던지 사퇴 기자회견에선 자못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청문회 자리에서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등 떠밀려 쫓겨나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울부짖듯 하소연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신문에서는 그에 대해 동정론도 내비쳤다. 비록 들끓는 여론에 자진 사퇴로 내몰렸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느 고위공직자와는 달리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지금껏 현 정부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줄곧 봐온 경우와는 달리, 불법을 저질렀거나, 사익을 위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등의 도덕적인 흠결은 없지 않느냐는 두둔이다.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의 지원 사격 내용도 비슷하다. 단지 봉급이 많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비판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고액 봉급에 합당한 업무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데, 청문회가 그것에 대한 검증의 장이라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해명으로 들리지만, 대체 한 달 1억 원에 '합당한 업무'가 대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긴 하다.

 

정동기의 모습에, '버스비 70원' 황태자가 겹쳐졌다

 

사퇴 기자회견을 한 정 후보자와 그를 애써 두둔하고 있는 몇몇 여권 정치인들의 얼굴에 2008년 '70원 버스비'로 황태자 소동을 일으킨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이 겹쳐졌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 후보 토론에서 상대 후보의 '현재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70원이라고 답했다가 상대측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지탄과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

 

유권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청해야 하는 선거철을 제외하고 그가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는 일은 기실 없을 것이다. 그나마 국회의원 신분으로 요금을 손수 치르는 일은 더더욱 없으리라. 사정이 그러할진대 버스요금이 얼마나 올랐는지 어찌 알 수 있을까. 기실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진 국회의원이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가 답변하는 자리에서 서민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앞으로 관심을 쏟겠다며 했다면 분노가 조금 누그러졌을까. 그런데, 외려 그는 서민 행세를 한답시고 이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청소년용' 버스카드를 지지자로부터 받았다고 '쇼'를 펼친 것이 더 큰 패착이 됐고 조롱을 자초하게 됐다.


'그깟' 버스비를 몰랐던 게 죄일 리 없다.  정작 국민들의 화를 돋웠던 것은 생계조차 걱정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의 엄청난 재력과 황태자와 같은 생활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 기대 부응하는 사회지도층은 없다고 알려주는 MB정부

 

a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자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버스비 70원'이든, '한 달에 1억'이든 대다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토론회나 청문회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고 그네들끼리 적격, 부적격을 운운한다고 해도, 그 역시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한다고 해도,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불법, 합법은 그들만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고작 월급 88만 원 받고 생활하는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후보자의 사퇴 여부를 떠나 TV 앞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절망스러운 일이다. 88만 원 세대를 앞에 두고 '세금으로 3억 냈고, 실수령액은 4억 정도'라며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는 해명은, 그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드는 일이자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믿어온 법조차 불신하게 만드는 꼴이다.


그들은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국민들로부터 신망과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예우를 충분히 받아왔고 누려왔다. 거칠게 말해서, 그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이기에 정당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며, 흔히 말하는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의 연이은 고위공직 후보자 사퇴 파문을 통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거의 없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국민을 외치며 끼리끼리 벼슬자리를 나눠먹고 사리사욕에 눈 먼 저잣거리의 무뢰배들과 하등 다를 바 없음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의 일원임을 스스로 알려준 정동기

 

아울러, 사퇴한 정동기 후보자를 두둔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안타깝게도 주위로부터 신망을 받는 검소하고 청렴한 공직자로서의 이미지를 그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그는 그의 경력과 재산문제, 사생활 전체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유린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재산 문제 등 의혹 제기를 왜곡으로, 공인으로서의 검증 절차를 사생활 유린으로 못 박아버렸다.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맹목적인' 여론에 여당조차 부화뇌동했다며 맹비난한 것이다. 역시나 그도 이 시대 진골 귀족이라는 '그들만의 리그'의 일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학생용' 버스카드를 들고 와 자신의 서민성을 거짓 증명하려 했던 사례와 유사한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여론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한 달에 1억 원을 벌게 해 준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잘못된 것임을 고백하고, 알면서도 미처 문제 삼지 못했음을 겸허히 반성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지만, 비록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더라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스스로 깨닫고 과감히 뜯어고치려는 사회지도층 인사를 국민들은 학수고대했지만, 결국 백년하청이다.


세간의 평판처럼 그가 비록 검소하고 청렴한 공직자였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관행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눈 감아버리는 소인배였을 뿐이다. 고위공직 후보자의 사퇴가 연이어지다보니, 보다 못한 국민들이 현 정부를 두고 협잡꾼과 소인배들만 득시글거리는 소굴이라며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죄질' 나쁜 최중경 후보자, 살아남을까?

 

a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 연합뉴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 연합뉴스

레임덕의 문제를 넘어 대체 이 정부도 '정부'냐는 거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정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레임덕은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공직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느냐의 여부보다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것이 정부의 더 큰 힘이자 자산이라는 점을 현 정부는 모르는 모양이다. 고위공직자들이 국민들로부터 본받고 싶은 역할모델이 되기는커녕 손가락질 당하고 조롱받는 처지라면 대체 '정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족 하나 달자. 다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만 일방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국민들의 정서로 보자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더 '죄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재정부 차관 시절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으로, 연간 1202만 원을 종합부동산세로 납부해야 했던 그가 자신이 만든 개정안을 통해 고작 36만 원으로, 무려 세금부담을 34배나 줄여버렸다.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의도한 바가 아니며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항변하겠지만, 전관예우 관행에서 받은 '한 달 1억'보다, 투자 활성화와 경제 정책 운운하며 법을 바꿔 정작 자기 세금부담을 줄인 그가 더 치졸하다.


그는 정동기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보지도 못한 채 장렬히 전사한 어수선한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살아남는다면, 국민 정서상, 정동기 후보자가 많이 억울해 할 것 같다.

2011.01.14 10:20ⓒ 2011 OhmyNews
#정동기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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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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