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감동으로 장애 편견 깨는 극단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

등록 2011.01.20 21:30수정 2011.01.21 09:47
0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끼는 빠르다. 거북이는 느리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는 '부지런함'과 '게으름'이란 변수로 당연히 여겨지던 이 사실을 비튼다. '물 속'이란 변수가 생기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거북이는 빠르다. 토끼는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전래동화 <토끼와 자라>는 자라 등에 업혀 용궁으로 향하는 토끼를 보여준다.

 

여기 "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부터 도움만 받는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도울 수 있고, 우리 그 자체로 당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 극단이다. 거북이, 토끼, 늑대 모양의 인형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매주 서울 강서구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형에 자신의 혼을 담고 있는 10여 명의 여성장애인들로 구성된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를 2010년 12월 23일 만났다.

 

"집에만 있다가 남 앞에 나선다니까 가슴 떨렸죠. 첫 공연 때는 움직이다가 전동 휠체어가 고장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했는데 끝나고 무대에 오르니까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2008년 9월 창단 멤버로 지난해 공연에 참가했던 이경자(63)씨가 당시 이야기를 전하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당뇨합병증이 있는 이씨는 처음 방화11복지관을 통해 극단을 알았을 때 밥 하는 거나 돕자는 마음으로 참여했단다. 사진 찍을 때면 도망갔을 정도로 주변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던 그가 실제 공연에서는 1인2역을 했다.

 

집에만 있다가 인형극 강습 날이면 아침부터 복지관에 나왔다. 극을 배우고 나선 각자 집에서 갖고 온 반찬들을 내놓고 함께 밥을 해먹다 보니 뇌병변, 청각, 언어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즐거웠단다.

 

"비장애인과 있을 때보다 부끄러움이 덜하죠. 눈이 어두워서 바늘귀를 못 꿰면 눈 밝은 사람이 실 꿰어 주면서 서로 의지하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집에만 있다 무대 서니 가슴 벅차


공연만이 인형극의 전부가 아니다. 직접 인형을 만드는 것부터가 인형극의 시작이다. 똑같은 걸 오리고 색칠하고 꿰매는 고된 단순작업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1기 때는 장대인형을 만들었고 2010년 6월부터 시작한 2기는 그림자 인형극으로 장르를 바꿔 두꺼운 검정 도화지로 꽃과 동물들을 만들어냈다.

 

극단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는 방화11복지관 홍영호 팀장은 "한쪽 몸 못 쓰는 분, 눈 침침한 분 등 다듬는 속도가 다 다르지만 다 같이 힘을 합쳐 만들었을 때 성취감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인형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요"라면서 인형을 만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연습실 책상 위에 놓인 나비, 거북이, 장미, 늑대 등의 인형들을 자세히 보니 꽃잎 등 장식모양들이 일정하진 않다. 하지만 단원들이 마음대로 칠했다는 각각의 인형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 인형들을 OHP필름(광학필름)으로 떠서 화면에 비치는 극으로 표현되면 더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단다.

 

뇌성마비로 몸 움직임이 불편한 김정은(42)씨가 "손이 떨려서 인형 만드는 걸 많이 못 도왔어요"라고 미안해 하자 주변 회원들이 저마다 "아니야. 그만큼 열심히 했어" "정은이는 분위기 메이커잖아"라면서 격려한다. 나사 조이는 일 등을 한 김씨는 몇 달에 걸쳐 인형을 다 만들었을 때 "뿌듯했어요"라고 느리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김씨는 남편이 출근할 때 함께 나와 퇴근할 때 같이 들어갈 정도로 여러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도 많은 아픔을 경험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나왔는데 뇌성마비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활동할 게 별로 없었어요. 처음 컴퓨터 1년 과정을 마치고 취직을 몇 번 했는데 그 역시 편견 때문에 그만두고 집에 오래 있었죠. 그러니까 우울증이 심해지더라고요. 집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복지관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면서 많이 밝아졌어요."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하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이야기가 오가는 중 인형극을 지도하는 단장 최순이(31, 현대인형극회)씨가 이경자씨에게 말을 건넨다.

 

"어르신, 원래 차도로 가세요? 어제 사거리에서 지나가시는 거 잠깐 봤는데 위험해 보이더라고요."

 

이씨가 답한다.

 

"전동휠체어 타면 원래는 인도로 가는데 인도가 경사가 급하고 울퉁불퉁한 데는 어쩔 수 없이 차도 가장자리로 가요."

 

다들 한마디씩 한다. "인도들이 다 높아" "매너 있는 사람들은 멈추고 우리 지나가도록 해주는데 그냥 빠른 속도로 오는 차들도 많아" 홍영호 팀장은 자기 잘못인 양 "다른 나라는 인도 만들고 차도를 만드는데 한국은 차도 먼저 만들고 인도를 만들어서 그래요"라며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이경자씨가 전동휠체어에 등을 단 경위를 설명했다.

 

"작년에 공연 끝난 날 뒤풀이 하고 밤 12시 넘어 휠체어 타고 오는데 차들이 너무 쌩쌩 달려오는 거야. 그날 따라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얼마나 심장이 뛰던지…. 그 다음에 바로 전등을 달았잖아."

 

무대설치 등 남자가 할 일도 있다고 해서 극단 활동에 참여하게 된 유일한 남자 회원인 임병혁(62)씨도 "장애인들이 신도림역을 잘 안 가요, 사람 많이 다니는 곳인데 엘리베이터랑 에스컬레이터가 없잖아요"라면서 신도림역에 장애이동시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5년 전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몸이 불편해지니 비장애인들의 무관심이 눈에 들어온다면서 "횡단보도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지나가도 갑자기 막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야속하다"고 전했다.

 

장애인이 있어도 쌩쌩 지나가는 차들 야속해

 

최순이 단장은 지체장애인이나 어르신들에게 인형극을 가르친 경험이 많다.

 

"사람들이 뭐든 기대감을 갖고 가면 실망감도 크잖아요. 그런데 장애인분들이 인형극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예 별 기대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비장애인 못지않은 공연을 보고나선 더 큰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선입견으로 많은 것을 놓치는 비장애인을 일깨우는 말이다. 최 단장의 공연 원칙은 '모두가 참여하자'이다.

 

"손이 아프시더라도 배제하지 않고 적절한 일을 드리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시도록 하죠. 공연을 다 같이 만들었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회원들 간의 화합도 강조한다.

 

"다들, 오늘 와서 한 번씩 이름 불러 주셨어요? 옆 사람하고만 말씀하시지 말고 건너 회원들 안부도 물어주세요."

 

전 주 강습을 쉬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극단 모임이 있었다. 전날 교육에 몸이 안 좋아서 빠졌던 이정희(36)씨가 대본 연습한 소감을 들려준다.

 

"인형극이니까 꼭 우리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자기가 하고 싶은 역 대사를 감정 실어서 읽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말을 버벅거리면서 힘들어하는 사람까지 왜 시키냐고 반발했어요. 그랬다가 선생님한테 '좀 늦어서 그렇지. 다 할 수 있는데 왜 못 한다고 하냐'고 혼났어요." 

 

'장애인은 부족하다'고 세상이 쳐놓은 한계선이 장애인을 스스로 위축되게 한다. 이씨도 젊은 시절 그런 한계를 경험했다. 세 살도 안 돼 전신화상을 입은 그는 목이나 팔 등 보이는 곳에도 화상이 남아 있다.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것도 싫어들 하더라고요."

 

그에겐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내가 나중에 의사 돼서 엄마 수술해 줄게"라고 하는 걸 보니 아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집에 복지관에서 만난 휠체어 타시는 분들이 자주 오시거든요. 아이에게 장애인은 부끄럽고 창피한 게 아니라는 걸 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인형극도 그런 뜻에서 하는 거죠. 공연을 보면 아이는 '엄마, 난 벌써 그렇게 하고 있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그걸 더 깊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장애는 창피한 게 아니"란 걸 공연으로 말하고 싶어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가 지금 연습중인 극 제목은 '내 꿈은 반쪽이 아니야'다. 장애로 여겨졌던 거북이의 등딱지 덕분에 토끼를 늑대로부터 구한다는 이야기다. 부모에게 장애가 있다고 따돌림 당하는 들쥐, 엄마, 아빠로부터도 "넌 다리가 불편해서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북이 등 장애를 갖고 있음으로써 겪는 많은 아픔들이 나온다. 이정희씨는 대본연습을 하다가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단다.

 

"초등학교 때 제가 도시락을 꺼내면 아이들이 '야, 밥순이도 밥을 먹는구나' 하면서 놀렸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과 밥 먹는다고 밥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더 가슴 아팠던 건 엄마, 아빠까지 저를 그렇게 볼 때였죠. 수영장에 가면 위에 뭘 못 걸치게 하잖아요. 저는 걸쳐야 하는데…. 그래서 수영장에 잘 못 갔는데 나중엔 엄마, 아빠도 제가 같이 안 가길 바라는 것 같은 거예요. 그때 많이 슬펐죠."

 

홍영호 팀장은 "극단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는 공연만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공연을 보는 분들이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됐으면 좋겠고, 가장 중요한 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던 장애여성들이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지내는 게 가장 큰 목적이죠"라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강서구청으로부터 2010년에 여성발전기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홍 팀장은 2011년 회원 모집을 더 해서 늦봄에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뒤뚱뒤뚱, 절뚝절뚝 걸어도 난 갈 수 있어. 내 앞발 하나 없다고 내 마음이 반쪽이 아니야. 생각하고 느끼고 하고 싶은 마음은 반쪽이 아니야. 남들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도 반쪽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내 마음 크고 넓어. 내 꿈도 반쪽이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난 달릴 수 있어. 저 넓은 세상을 향해 달려갈 거야."

 

대본 속 거봉(거북이)의 대사처럼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 는 손이 불편한 회원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덜덜 손을 떨면서 만들었던 그림자 인형을 들고서 '내 꿈은 반쪽이 아니야'를 세상에 펼쳐 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노동세상> 1월호(www.laborworld.co.kr)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1.20 21:30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노동세상> 1월호(www.laborworld.co.kr)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토끼를 업고 가는 거북이 #장애인 극단 #노동세상
댓글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3. 3 카자흐스탄 언론 "김 여사 동안 외모 비결은 성형"
  4. 4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5. 5 한국의 당뇨병 입원율이 높은 이유...다른 나라와 이게 달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