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루무'에 가득한 어머니의 손길이 그립다

[한국의 풍물 6] - 추억속의 '동동구루무'

등록 2011.01.26 16:09수정 2011.01.26 16: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를 팔던 장사꾼 모습. 등 뒤에 커다란 북을 발에 연결해 치고 다녔다. ⓒ 하주성

▲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를 팔던 장사꾼 모습. 등 뒤에 커다란 북을 발에 연결해 치고 다녔다. ⓒ 하주성

 

예전에는 '동동구루무'라는 것이 있었다. 여자들이 즐겨 쓰던 화장품이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동동'은 그 제품의 명칭일 테고, '구루무'란 크림을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이 동동구루무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 지금 70~80대 정도의 아르신이라면 한두 가지 재미난 일화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제는 내 나이도 60이 지났지만, 어릴 적 어머니의 화장대 앞에 놓인 동동구루무를 본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구루무 통이 자취를 감추고, 당시 말로 꼬부랑글씨가 쓰인 화장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동동구루무가 사라진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다.

 

a

동동구루무 2004, 9, 26 한국민속촌에서 ⓒ 하주성

▲ 동동구루무 2004, 9, 26 한국민속촌에서 ⓒ 하주성

a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50여년 전에도 이 구루무는 온 가족이 아껴 쓰는 화장품이었다 ⓒ 인터넷검색

▲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50여년 전에도 이 구루무는 온 가족이 아껴 쓰는 화장품이었다 ⓒ 인터넷검색

 

영화 속에서나 나올만한 장면

 

동동구루무 한 통만 사면

온 동네가 곱던 어머니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이름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언 손을 호호불면서

눈시을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아~ 동동구루무

 

김용임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추억의 동동구루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예전에는 이 동동구루무가 여성들에게는 꽤나 호사스런 품목이었던 것만 같다. 가끔은 퇴색한 영화 속에서 장에 나갔던 돌쇠녀석이, 세경을 받은 돈으로 동동구루무 한 통을 사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그 동동구루무는 돌쇠가 연모하던 마을 양반집의 여종인 옥분이에게 건너갔을 테고.

 

동동구루무 한 통을 받은 옥분이는 그동안 벌처럼 돌쇠만 보면 쏘아대던 말투가,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띠면서 고분고분해졌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가진 동동구루무는 꽤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동동구무루란 명칭도 아마 화장품을 팔고 다니던 장사꾼의 모습 때문에 나온 이름인 듯하다.

 

a

동동구루무 당시에도 어디를 가나 동동구루무 장사 뒤에는 많은 아이들이 따라다녔다 ⓒ 하주성

▲ 동동구루무 당시에도 어디를 가나 동동구루무 장사 뒤에는 많은 아이들이 따라다녔다 ⓒ 하주성

a

동동구루무 마을마다 다니면서 동동구루무를 팔고다니던 장사의 모습이다. ⓒ 하주성

▲ 동동구루무 마을마다 다니면서 동동구루무를 팔고다니던 장사의 모습이다. ⓒ 하주성

 

등 뒤에 짊어진 북소리 '둥둥'

 

어릴 적에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동동구루무를 파는 장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야 지금처럼 대형 슈퍼마켓 등 종합적인 물건을 파는 곳이 없었다. 그저 마을마다 몇 개씩 있는 '○○상회' 혹은 '○○상점'이라는 간판을 단 구멍가게들이 다였으니까 말이다. 이때는 간장과 같은 찬거리며, 이것저것을 팔러 다니는 장사들이 연신 마을을 돌아칠 때다.

 

아마 당시에는 이 동동구루무만큼 인기가 있었던 상품도 그리 흔하지가 않았다. 등 뒤에는 대북을 메고, 손에는 작은 북이나 하모니카 등을 들고 다닌다. 북소리가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던 아이들이 쫒아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마을의 아낙네들이 몰려나오면, 용기에다가 듬뿍 큰 통에 든 구루무를 퍼 담아 주기도 했다.

 

동동구루무 장사가 걸어가면, 등 뒤에 맨 북의 채와 발목에 연결한 끈이 북을 친다. 그 북을 치는 소리가 걸어갈 때마다 '둥둥'하고 울렸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걸음을 흉내내기도 했다. 벌써 그런 모습을 본 것이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렸으니, 이도 당시의 신풍속도였다는 생각이다.

 

a

동동구루무 2004년 가을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동동구루무 장사를 만났다 ⓒ 하주성

▲ 동동구루무 2004년 가을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동동구루무 장사를 만났다 ⓒ 하주성

 

어머니의 정이 그리운 동동구루무

 

한 겨울에 찬바람이라도 나가서 쏘이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동동구루무를 듬뿍 손에 발라 비벼주시고는 했다. 그 냄새가 그때는 왜 그리도 좋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 냄새는 당시 일을 하느라 땀에 절어버린 어머니의 냄새와 함께, 지금도 기억을 할 만한 나름의 포근한 어머니의 냄새를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요즈음 여인들은 동동구루무라고 하면 싸구려 화장품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당시의 동동구루무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 구루무 한 통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구루무 한 통으로 사랑을 얻기도 하고, 많은 눈물도 흘렸기 때문이다. 연일 영하로 떨어져 올라갈 줄 모르는 날이 계속돼서인가? 어머니의 동동구루무가 그리운 날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동구루무 #화장품 #신풍속도 #대북소리 #어머니의 냄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3. 3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4. 4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5. 5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