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쭝런이 걸은 애국자와 변절자의 길

[중국근현대사 속 오늘-1969년 1월 30일] 리쭝런(李宗仁) 사망 42주년에 부쳐

등록 2011.01.31 19:34수정 2011.01.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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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국민당이 1921년 10여 명의 대표가 모여 창당된 공산당에게 패해 타이완(臺灣)으로 도망가는 중국 국공내전의 역사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보듯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1949년 건국 때까지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썰물 빠지듯 국민당 지지에서 공산당 지지로 돌아섰을까? 그 중에서도 국민당 총통대리까지 역임한 리쭝런(李宗仁)이 타이완을 버리고 중국대륙으로 돌아간 것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타이완의 역대 총통 타이완의 독립과 통일은 역대 총통들의 중요한 정치문제였다.
타이완의 역대 총통타이완의 독립과 통일은 역대 총통들의 중요한 정치문제였다.김대오

중국정부는 지구상에 하나의 중국(一個中國)만이 존재한다며 타이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양안(兩岸) 사이에는 긴장과 화해의 물결이 교차해 왔으며 타이완에서는 늘 '독립'과 '통일'이 뜨거운 정치문제로 이슈화되어 왔다. 총통대리에서 중간물처럼 존재하다가 결국 중국의 품에 안긴 리쭝런은 분단된 양안의 현실과 아픔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리쭝런(1891.8.13.~1969.1.30)은 광시(廣西)성 구이린(桂林)에서 태어나 구이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동맹회에 가입하였다. 북벌기간인 1925년 광시성에 난립하던 군벌을 일거에 제압하며 '광시의 왕(廣西王)'으로 불려졌다. 1926년 황포군관학교 교장이던 장제스(蔣介石)를 만나면서 동지와 배신자의 길을 오가는 두 사람의 지겨운 인연이 시작됐다.

중일전쟁시기인 1938년 4월, 제5전구 총사령관이던 리쫑런은 타이얼좡(台兒庄)전투에서 연승하던 일본군 3만여 명을 유인하여 몰살시키며 일약 항일전쟁 중국 최고의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리쭝런은 1945년 이후 장제스의 내전전략에 협력했으나 1948년 장제스가 지지하는 쑨원(孫文)의 장남인 쑨커(孫科)를 143표 차로 누르고 국민당 부총통에 선출되며 두 사람은 서로 불화의 길을 걷게 된다. 중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화 <건국대업(建國大業)>에 보면 장제스와 리쭝런의 이런 갈등이 잘 묘사되고 있다.

영화 <건국대업>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장제스는 리쭝런에게 부총통 출마를 만류하고 있다.
영화 <건국대업>의 한 장면영화 속에서 장제스는 리쭝런에게 부총통 출마를 만류하고 있다.황건신

리쭝런은 1949년 1월, 국공내전 패전의 책임을 물어 장제스를 하야시키고 국민당 총통대리에 취임하여 4월 공산당과의 화평교섭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시기 국민당은 당(黨)·정(政)·행(行)이 분리되어 당은 장제스가, 정은 리쫑런이, 행은 쑨커가 각각 맡고 있어 이미 공산당과의 정상적인 협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리쭝런은 결국 홍콩을 거쳐 12월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미국은 리쭝런을 이용하여 타이완과 중국에 동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나 투르먼대통령은 리쭝런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국가원수로서의 예우도 없이 쓸쓸한 말년을 지내게 방치했다.

리쭝런은 1965년 7월 20일, 중국으로 귀국하며 파란만장한 삶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항일전쟁의 영웅이었던 리쭝런은 장제스를 위협하는 가장 막강한 실력자였기에 결국 장제스로부터 버림받았고 이용가치가 없는 그를 미국 또한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으니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중국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저우언라이(周恩來)총기가 직접 리쭝런을 영접했으며 체제 선전이 한창이던 그 당시 중국과 타이완은 리쭝런을 둘러싸고 '애국자'와 '변절자'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기도 하였다.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던 리쭝런이 1969년 1월 30일, 향년 78세로 베이징(北京)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했을 때에도 중국과 타이완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고 중국은 그해 지하 핵실험에 성공하며 타이완을 위협했다.
#리쭝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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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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