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머리하는 날!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

몸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찾아가는 이미용 봉사 6년째

등록 2011.02.01 16:13수정 2011.02.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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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 앞두고 이미용봉사 훈훈 바르게살기 태안읍위원회가 반년만에 태안읍 송암2리 마을을 찾아 덥수룩해진 노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설명절 앞두고 이미용봉사 훈훈바르게살기 태안읍위원회가 반년만에 태안읍 송암2리 마을을 찾아 덥수룩해진 노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김동이

"새색시처럼 고우시네. 할아버지도 오셨는데 오늘 시집가셔도 되겄시유."


한파와 잦은 폭설로 인해 길이 꽁꽁 얼면서 노인들의 바깥 출입이 어려워 한적했던 시골마을이 오랜만에 북적인다. 게다가 마을회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나는 트로트 음악은 회관으로 향하는 노인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줬다.

설 명절(3일)을 앞두고 이 마을에 반년만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벌써 6년이나 계속됐는데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마을 노인들의 주름살이 활짝 펴지며 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드리운다.

송암2리 마을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은 바로 태안군 바르게살기 태안읍위원회 회원들. 이들은 미용사, 이발사들과 함께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시골길을 달려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좁은 포장길에 빙판으로 뒤덮인 위험한 길임에도, 이들이 한달음에 마을을 찾은 이유는 이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 때문이다. 이들은 노인들의 말벗도 돼 주고, 어느새 덥수룩해진 머리를 곱게 빗어주기도 한다.

특히 마을에 이발소나 미용실이 없어 노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 태안읍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던 것. 자원봉사자들은 이런 노인들의 불편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줬다. 이미용 봉사는 단순히 봉사 차원을 넘어서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태안군의 노인들이 즐거운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반년만의 방문에 온 동네가 들썩... 훈훈한 분위기 연출

미용은 기본, 재치있는 입담은 보너스 가위손 한승희씨. 태안읍에서 여성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그의 봉사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미용은 기본, 재치있는 입담은 보너스가위손 한승희씨. 태안읍에서 여성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그의 봉사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김동이

반년만의 방문이라서 그런지 마을노인들이 모인 마을회관은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봉사팀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이발할 준비를 서두른다.


거실에서는 할아버지들의 이발이, 한쪽 작은방에서는 할머니들의 미용이 진행된다. 나머지 다른 한쪽 방은 순번표를 받아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대기하는 대기소로 사용된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이발사와 미용사의 현란한 가위질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날 첫 번째로 순번표를 받아들고 이발의자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부인지라 주위에서 지켜보는 노인들의 우스갯소리가 이어진다.

"할머니 너무 이쁘시네. 새색시 됐시유~"
"할아버지도 이발을 마치셨는데 가봐유. 이쁜 모습 보여드리세요."
"둘이 이쁘게 머리 깎았으니께 오늘 예식해도 되겄네."

한분 한분 머리가 단정하게 변할 때마다 주위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들의 평가는 계속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인들의 이구동성 칭찬 한마디. "머리 깎는데 달인이네~"

노인들의 칭찬의 주인공은 이날 바르게살기 회원들과 함께 봉사에 참여한 이발사와 미용사. 이들은 태안읍에서 각각 '헤어뱅크'와 '현대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이미 머리손질하는 데는 정평이 나 있는 이미용의 달인들이다.

할아버지도 말끔하게 단장하고 이발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태안읍까지 나와야 하는 불편함을 직접찾아가는 이미용봉사가 해결해 주고 있다.
할아버지도 말끔하게 단장하고이발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태안읍까지 나와야 하는 불편함을 직접찾아가는 이미용봉사가 해결해 주고 있다.김동이

이중에서도 싹둑싹둑 현란한 손놀림으로 할머니들을 금세 새신부로 변신시키는 가위손 한승희씨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태안읍에서 여성위원장까지 맡아 솔선수범하고 있다.

한씨는 "내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 동네 어르신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라며 "말끔하게 이발을 마친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항상 뿌듯함을 느낀다"고 뿌듯해했다.

오후 늦게까지 진행된 이날 이미용 봉사에는 송암2리 마을노인이 자그마치 50여명이나 찾아왔다. 때문에 두명의 이미용사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가위손을 움직였다. 힘들 법도 하지만 마지막 노인이 말끔하게 변신하기까지 이들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이날 머리를 단정하게 이발한 김아무개(73) 어르신은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운을 뗀 뒤 "바르게살기 태안읍위원회에서 원래 노인들을 위해 그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해 왔는데 이렇게 설날 선물을 미리 줘서 기쁘다"며 "오늘 사진이라도 찍어둬야겠다"고 즐거워했다.

한편, 이날 이미용 봉사를 펼친 바르게살기 태안읍위원회는 지난 2005년부터 관내 어르신과 노인병원 등을 대상으로 1년에 두 번씩 찾아가는 이발봉사를 해오고 있어 고령화사회에 활기찬 노후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태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바르게살기태안읍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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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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