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2.03 15:01수정 2011.02.03 15:01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역사서가 있다.
이 책은 오늘날의 기자들인 당시 사관(史官)들이 직접 발로뛰며 취재해 보도한 책인데 그 세밀함과 객관성이 학계에서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록의 내용을 조금 엿보면 왕의 일거수 일투족 기록, 관료들의 중요 회의내용 보도, 모반과 반역을 일삼은 관료들의 인터뷰와 그 내용은 물론, 왕이 직접 신하를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 여성들을 겁탈하는 장면까지 그 옆에서 세세히 취재해 보도했다.
그런데 그 어떤 왕이 자신이 누군가를 고문해 죽이고 겁탈하는 장면까지 역사적 기록에 남도록 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관 기자들은 법과 사회적 보호를 받으며 외부 압력없이 꿋꿋이 기사를 작성해 보도해 나갔다.
이 사관 기자들의 취재기록 등은 실록으로 보도되기 전까지 절대 권력자인 왕은 물론 편집 관계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열람하거나 볼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취재내용이 외부 압력에 의해 변하거나 수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조선왕조 내내 일본침략 시기를 제외하고는 충실히 지켜졌다.
간혹 연산군이 이 사관 기자들의 취재내용을 엿보고 무오사화를 일으켰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당시 연산군 밑에 있던 훈구파 관료들이 사림파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이 취재 편집본을 우연히 보고 연산군에게 고자질 했던 것이다. 결국 연산군 조차 이 취재내용을 끝까지 직접 열람하지 못했으나 당시 이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였던 김일손과 취재원들을 죽였다.
그런데도 이 연산군 조차 사관직을 폐지하거나 정부기관 혹은 자신의 회의실에 출입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그 관계자들을 죽이긴 했어도 다른 기자들의 출입을 막거나 언론을 탄압하지는 못했다.
사관 기자들은 때에 따라 변장을 하거나 몰래 숨어 취재를 하기도 했는데 연산군은 이런 사관 기자들을 매우 두려워 했다.
조선왕조 500년동안 일본침략기를 제외하고 이 사관기자들의 취재와 보도는 법과 사회로 부터 완벽할 만큼 보장됐으며 그로 인해 후세의 우리들이 당시 정부의 실상과 잘못을 평가 할수 있게 됐고, 당시 절대 권력자인 왕과 정부관료들 마저 옳지 않은 일을 할 수 없도록 견제됐다.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면 그 기사의 속보성 정도인데 그와 관계없이 오늘날에 와서는 군부가 정부를 장악해 언론을 탄압하는 자신감 없고 천박한 일들을 벌였고, 이번 정부는 엠바고 등을 빌미로 기자들의 출입을 막기도 했는데 이런 일은 조선시대 그 어떤 폭군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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