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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대서양을 끼고 있는 세 나라 기행 ⑮] 모로코 카사블랑카

등록 2011.02.09 10:55수정 2011.02.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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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노래도, 호텔도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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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사블랑카>의 포스터 ⓒ 이상기


카사블랑카로 가면서 우리는 영화 <카사블랑카>를 본다. 영화를 다시 보니 내용이 의미 있기는 하지만, 릭(Rick)과 일자(Ilsa)로 대표되는 두 남녀의 관계가 지나치게 이지적이다. 좋으면 좋은 거지, 지나치게 뜸을 들이고 상대방을 배려한다.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안개 낀 카사블랑카 비행장에서 주인공 릭이 사랑하는 연인 일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이다. 그것도 일자의 남편인 빅터 라즐로와 함께. 릭은 추적해 오는 독일군 비밀경찰 슈트라서 소령을 죽이면서까지 그들에게 여권을 건넨다. "나는 이게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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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과 일자의 재회 ⓒ 이상기


그러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릭의 카페에서 일자가 옛 연인 릭을 만나는 장면이다.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샘을 본 일자가 그에게 '세월이 흘러(As time goes by)'를 부탁한다. "샘, 그 노래 좀 연주해 줘요. '세월이 흘러'." 머뭇거리는 샘 앞에서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자 샘이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이걸 기억해야 해.         You must remember this
키스가 아직 남아있는 듯 하고   A kiss is still a kiss
숨결도 바로 여기 있는 듯해.     A sigh is still just a sigh
세월이 흐르면                        The fundamental things apply
본질적인 것만 남아.                As time goes by

연인들은 구애를 하면서           And when two lovers woo
"사랑해"라고 여전히 말을 하지. They still say "I love you"
당신은 그 말을 믿을 거야.        On that you can rely
세월이 흘러                           No matter what the future brings
미래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As time goes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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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 히긴스 홈페이지에 나오는 해적 밴드(The Band of Pirates) 그림 ⓒ Bertie Higgins


영화가 끝나자 안혜영 가이드가 버티 히긴스(Bertie Higgins)가 부른 노래 '카사블랑카'를 틀어준다. 이 노래는 영화 <카사블랑카>와 직접 관련은 없다. 그러나 가사 내용을 보면, 두 연인이 야외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카사블랑카>를 함께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인은 멀리 떠났고, 그녀가 돌아오길 애타게 노래한다.


나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당신과 사랑에 빠졌었지,
흐릿한 불빛 자동차 극장 뒷좌석에 앉아.
별빛 아래 팝콘과 콜라가 샴페인과 캐비아가 되고,
길고 무더운 밤에 사랑을 만들었지.

당신도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나와 사랑에 빠졌던 거 같아,
촛불 켜진 릭의 카페 선풍기 아래서 두 손을 잡았었지.
정탐꾼들을 피한 어둠 속, 당신의 눈엔 모로코의 달빛이 비쳤지,
낡은 차속에서 영화를 보면서 매직을 만들었지.


카사블랑카처럼 키스가 아직 남아있는 듯 해
그렇지만 당신의 숨결이 없는 키스는 키스가 아냐.
카사블랑카처럼 나에게 돌아와 줘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당신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걸. 

두 노래 중 똑같은 구절은 '키스가 아직 남아있는 듯해(A kiss is still a kiss)'이다. 이 노래는 1982년 발표되어 17주 동안 빌보드 차트에 머무는 히트를 기록했고, 그해 빌보드 차트 히트곡 100곡 중 8위에 랭크되었다. 1983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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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호텔 카사블랑카 ⓒ 이상기


영화도 보고 노래도 듣고 나니 버스가 벌써 카사블랑카 시내를 지나고 있다. 카사블랑카는 대도시답게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시내를 돌아 어떻게 왔는지 버스가 꽤나 좁은 도로로 들어선다. 도로에 승용차들이 북새통을 이뤄 빠져나가기도 힘들다. 그러나 운전사는 이곳에 익숙한지 잘도 빠져나가 우리가 묵을 호텔 앞에 선다. 호텔 이름을 보니 역시 카사블랑카다. 카사블랑카 호텔은 구시가지에 있는 역사가 꽤나 오래된 호텔이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마라케시까지 갔다 온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동거리가 우리보다 더 많아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다. 우리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말 강행군을 했다. 또 내일 아침에는 일찍 카사블랑카를 관광하고 탕헤르와 타리파를 거쳐 말라가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가이드가 가능하면 밤에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무하마드 5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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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옆의 이슬람 모스크 ⓒ 이상기


새벽같이 일어난 나는 호텔 주변을 산책한다. 아직 어둠이 깔렸고, 길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가까운 곳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어 구경을 가니, 사람들이 그곳으로 기도하러 오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들도 온몸을 감싼 옷을 입고 있다. 무슨 수도사 같다. 이슬람교도들은 해가 뜰 때쯤 해서 새벽기도를 드린다.

오늘 우리가 갈 관광지는 무하마드 5세 광장과 핫산 2세 메스키다다. 메스키다는 모스크의 아랍식 표현이다. 무하마드 5세 광장은 1907년 이후 구시가지 남동쪽에 조성된 신시가지의 중심광장으로 주변에 공공건물이 모여 있다. 광장 남쪽에는 카사블랑카 지방정부 청사가 있고, 동쪽에는 법원이 있다. 이 지역은 1914년 프랑스 건축가 앙리 프로스트가 15만 명 정도 거주하는 신도시로 계획을 했던 곳이다. 그는 유럽식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모로코식 전통건축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우리는 1910~20년대 모로코 건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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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5세 광장과 법원 건물 ⓒ 이상기


그러나 아직도 어둠이 도시를 덮고 있어 이들 건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나마 광장 동쪽의 법원 건물이 야자수와 어울려 멋지게 보인다. 이에 비해 광장 남쪽의 지방정부 청사는 조금 멀어서 그런지 흐릿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건물 한 가운데 유명한 시계탑은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을 보니 아침 6시40분이다. 문화유산 관람을 이렇게 일찍 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핫산 2세 메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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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 2세 메스키다 ⓒ 이상기


무하마드 5세 광장을 보고 나서 우리는 대서양쪽 바닷가에 있는 핫산 2세 메스키다로 간다. 이 이슬람 사원은 현재 카사블랑카의 트레이드마크다. 1980년 프랑스 건축가 미셸 핀소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해 1993년에 완성되었다. 원래 핫산 2세의 60회 생일을 기념해 1989년 완성하려고 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4년이 늦어졌다고 한다.

핫산 2세는 이 사원 건축을 의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물 위에 사원을 짓고 싶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천국이 물 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원으로 기도하러 가는 신심 깊은 사람들은 땅 위에서 창조주를 찬양할 것이고, 하느님이 만든 하늘과 바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메스키다를 짓는 데는 무려 8억 달러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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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로 핫산 2세 메스키다가 보인다. ⓒ 이상기


이 사원은 코르도바의 모스크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건축을 모방해서 무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핫산 2세 메스키다는 사원 안에 2만5000명이 들어갈 수 있고, 밖의 광장까지 합하면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 규모로 볼 때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다. 또 사원의 탑인 미나렛은 그 높이가 210m로 세계 최고다. 그리고 이 사원은 이슬람 신자가 아니더라도 들어가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하루에 네 번 정해진 시간에.

우리가 사원 앞에 도착하니 건물에 조명이 들어와 있다. 새벽기도 시간이기 때문이다. 탑의 꼭대기 황금빛 조명과 하늘색 조명이 신성한 기운을 내뿜는다. 사원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정문 쪽으로 가니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7시10분이 되니 조명이 모두 꺼진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아 사원의 문과 타일의 장식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보아오던 이슬람 사원과 별로 다르지 않다. 건물의 외벽은 대개 황갈색 톤이고 그것을 장식한 타일은 녹색과 푸른색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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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 2세 메스키다 ⓒ 이상기


이곳 핫산 2세 메스키다에서는 북쪽으로 펼쳐진 대서양과 동쪽의 항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아침의 여명 속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새들이 그 바람을 타고 사원 위를 난다. 사원의 첨탑인 미나렛에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조금씩 해가 솟아오르는 모양이다. 우리는 아쉬움 속에서 메스키다를 떠난다. 

카사블랑카 시내에서 만난 릭의 카페(Rick's Cafe)

아침이라 시내 도로는 한산한 편이다. 길을 가면서 보니 릭의 카페가 보인다. 그런데 이 카페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이름만 따온 것으로 실제 영화와는 관계가 없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실제로 카사블랑카가 아닌 세트장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이곳 카사블랑카에는 릭의 카페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가 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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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시내에서 만난 '릭의 카페' ⓒ 이상기


이제 카사블랑카와 작별이다. 사실 카사블랑카에 와서는 뭐에 홀린 것 같다. 어제 저녁 어둠 속에 들어와서는 오늘 아침 어둠이 걷히면서 떠나기 때문이다. 겨우 12시간을 체류한 셈이다. 꿈속에 무릉도원을 찾아간 안평대군처럼, 꿈속에 카사블랑카에서 놀다 떠나는 느낌이다. 아! 아쉽다. 이게 바로 패키지여행의 단점이고 문제점이다.

페스, 라바트, 카사블랑카를 제대로 보려면, 페스에서 하룻밤을 자고 카사블랑카에도 하룻밤을 자야 한다. 그런데 그걸 카사블랑카에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해결했으니 그럴 수밖에. 이제 A1 고속도를 타고 탕헤르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점심은 중간에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탕헤르에서 페리를 타고 다시 스페인의 타리파로 넘어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버티 히긴스의 최근 노래를 듣고 싶으면 http://www.bertiehiggins.com/로 가면 된다.


덧붙이는 글 버티 히긴스의 최근 노래를 듣고 싶으면 http://www.bertiehiggins.com/로 가면 된다.
#카사블랑카 #릭의 카페 #버티 히긴스 #무하마드 5세 광장 #핫산 2세 메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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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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