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된장국호박된장국이 주는 시원하고 구수한 감칠맛은 어느새 집안분위기를 넉넉하고 포근하게 채운다
이종찬
올 겨울과 봄은 제 정신을 잃었는가. 설과 입춘을 지나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아스라이 봄기운이 다가서는가 싶더니, 또 바늘바람이 얼굴을 콕콕 찌른다. 날씨가 엎치락뒤치락해서일까. 남북에 부는 얼음바람 때문일까. 서민들 얇은 지갑을 희롱하며 마구 치솟는 물가 때문일까. 곧 내야 하는 두 딸 대학등록금 걱정 때문일까.
속이 쓰리고 아프다. 이럴 땐 답답한 속을 확 풀어주는 시원한 동탯국이나 명탯국 같은 생선국을 포옥 끓여 후루룩후루룩 마시면 참 좋은데. 생선 값이 너무 비싸다. 그렇잖아도 설을 쇠기 위해 고향에 다녀온 탓에 벌써부터 이달 생활비가 달랑거리는데 말이다. 1~2천 원만 들여 속을 시원하게 풀만한 그런 음식, 서민을 왕으로 받드는 그런 음식은 없을까.
있다. 호박된장국이다. 요즘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 해도 1천 원만 주면 애호박 1개는 살 수 있다. 호박은 예로부터 씨앗부터 줄기, 잎, 열매까지 먹을 수 있어 버릴 것이 없는 뛰어난 먹을거리다. 호박열매는 국이나 죽, 떡을 해먹을 수 있고, 호박씨앗은 간식이나 약재로 쓰인다. 호박잎은 쪄서 쌈을 싸먹으면 향긋하고도 깊은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보약'이라 불리는 호박. 이 으뜸 음식 호박을 누가 못난이에 빗댔을까. 옛말에 "동짓날 호박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호박이 그만큼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얘기다. 조선 허리춤께 명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에서도 "호박은 성분이 고르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면서 오장을 편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한의학에서는 호박을 부인병, 위장질환, 빈혈, 기침, 감기, 야맹증 치료 등에 쓴다. 호박은 몸이 자주 붓거나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따르면 호박을 당근, 고구마와 함께 즙을 내 하루 반 컵 정도 매일 마시면 폐암에 걸릴 위험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호박에서 노란빛을 내는 루테인은 암 예방뿐만 아니라 시력을 감싸는 영양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