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군산시 나운동 진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신묘(辛卯)년 '정월 대보름 민속 풍물 한마당'에 다녀왔다. 올해 대보름(17일)은 목요일 평일이어서 행사를 앞당겨 주말에 개최한 모양이었다.
군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진포문화예술원이 주관하며 군산시에서 후원하는 행사였다. 며칠 전 다양한 먹을거리와 전통 민속놀이 체험, 풍물 공연 등이 펼쳐진다는 내용의 초청장을 받고 달력에 메모해 놓았었다.
마침 아내가 쉬는 날이라며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집에서 행사장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리고,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가 주말에는 건너뛰기도 해서 고민이었는데 고마웠다. 아내 덕으로 행사가 시작되기 전 운동장 분위기도 취재할 수 있었다.
승용차로는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밥을 아홉 번 먹는(정월 대보름엔 한 해 동안의 건강 등을 빌며 밥 먹는 것을 포함해 모든 행위를 아홉 번씩 하는 풍습이 있다.) 정월 대보름 행사라서 먹을거리도 공짜고, 체험도 공짜이니까 함께 즐기다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돌아갔다. 입장료를 내도 보기 어려운 구경거리인데 섭섭했다.
"대보름, 부럼이나 까먹는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놀이가 이렇게 많네요"
운동장 입구 좌측에 세워진 먹을거리 부스에서는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이 반찬을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소한 대보름 음식 냄새가 코끝을 훔치고 달아났다. 성질이 급한 몇몇 참가자는 곁에서 빈대떡과 홍어회 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이 쬐는 맑은 날씨였지만, 바람은 손등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행사가 시작되기 30분 전인데도 많은 사람이 운동장을 메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주변이 아파트 단지여서 그런지 노인보다는 아이들과 30~40대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윷놀이 장소에서는 이미 윷판이 벌어졌고, 방패연, 양반탈, 계란 꾸러미 만드는 곳에서도 학생들이 체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줄넘기에 참여하고 널뛰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언니, 오빠, 엄마가 양반탈과 연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꼬마 눈길이 제법 진지했다.
볏짚으로 계란꾸러미를 만드는 체험장에서는 계란집을 만드는 수에 따라 계란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머리에 빨간 털모자를 쓴 여성이 계란꾸러미를 양쪽 손에 들고 흡족해하고 있었다. 계란을 몇 알 얻으니 부자도 부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홑몸이 아닌 모양인데 어떻게 나오셨나요?"
"네, 둘째인데 8개월째예요. 한참 전에 남편이랑 함께 나와서 한 바퀴 돌았는데 재미있고 좋아요. 놀라기도 했어요. 대보름날 부럼이나 까먹지 재미있는 놀이가 이렇게 많이 있는 걸 몰랐거든요."
"정초에 계란을 상으로 받아서 올해는 건강한 둘째도 보시고 복도 많이 받겠네요. 남편은?"
"감사합니다. 딸이라고 해서 '강예주'라고 이름도 지어놓고, 건강하고 예쁜 딸 낳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웃음) 제 남편은 저쪽에서 군고구마 굽고 있어요. 아저씨도 계란 꾸러미 만들기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만들수록 재미있어요. 계란도 꽁짜로 많이 얻고···."
이름은 남유래(34)라고 했다. 그는 딸을 원하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이랑 가족이 모두 딸을 원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됐어요. 그래도 건강하기만 하면 아들도 괜찮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정월대보름 달집에 붙은 '키 크게 해주세요' 소원 쪽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고구마를 구워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손수경(41)씨를 만났다. 고구마를 열심히 굽던 그는 대보름 행사를 개최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활동하는 단체(행복비타민 가족봉사단)에서 알려주어 자원봉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목에 '손수경 가족'이 적힌 명패를 걸고 계시는데 몇 분이 나오셨나요?"
"대보름날 쥐불놀이하다가 손을 다쳐보기도 했고, 더위를 팔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통 민속놀이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그런데 직접 체험하면서 하루를 뜻있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해서 가족 넷이 모두 나왔습니다."
충남 서산이 고향이라는 손씨는 군산에 살면서 대보름날 행사는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작년에도 대보름 행사가 열렸었는데 몰랐느냐고 물었더니, 몰랐다며 진즉 알았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하러 다녔을 거라며 앞으로는 알아보고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쪽에서는 자그만 사각 한지에 한해의 소원과 희망이 담긴 글귀를 정성스럽게 적어 어두워지면 밝힐 달집에 매달고 있었다. 대부분 액운을 물리치고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는데 '키 크게 해주세요!'라는 어느 여학생의 소원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소원이 적힌 한지를 예쁜 꼬마와 달집에 매다는 김현진(43)씨에게 다가갔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이고 16년 전부터 군산에 살면서 회사에 다니는데 주말이어서 나왔다는 김씨. 그는 대보름 행사를 TV에서만 봤었는데 가족이 함께 나오니까 참 재미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행복하게 보이는데요. 무슨 소원을 적으셨나요?"
"우리 가족 네 명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큰애가 아홉 살이 되고, 작은 애가 여섯 살이거든요. 이 학교에 다니는 딸(2학년 김희서)이 얘기해줘서 알았지요. 아이들이 전통 민속공연도 관람하고 민속놀이도 체험할 수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낯선 글씨로 종이에 소원을 쓰는 여성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겸연쩍어하며 "베트남이에요. 저하고 결혼해서 군산에는 한 달 전쯤에 왔어요"라고 했다. 소원은 고국에 있는 부모 건강과 예쁜 아기를 낳게 해달라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소원을 비는 두 사람 표정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공짜로 먹는 찰밥과 귀밝이술 한 잔, 꿀맛이네
아침이 시원찮았는지, 아니면 남들이 찰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먹을거리 부스로 가서 자원봉사 아주머니에게 얘기했더니 쟁반에 뜨끈뜨끈한 찰밥과 홍어회, 겉절이, 고사리와 숙주나물 등을 담아준다.
누가 무쳤는지 홍어회 맛도 좋았고, 겉절이도 개운했다. 그렇잖아도 찰밥을 좋아하는데 야외에서 얻어먹으니까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같은 음식이래도 여럿이 먹어야 더 맛있다는 말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은데, 엄청 추운 날씨가 탈이었다. 손가락이 얼어 젓가락질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상에 걸린 손으로 눈과 얼음을 만지면서 즐겁게 놀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것도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 부스에 있던 군산 문화원 이복웅 원장이 다가와 귀밝이술 한 잔하라며 막걸리를 권하기에 고맙다며 한 컵 받아 마셨다.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식혜도 세 컵이나 마시고, 뜨거운 어묵 국물을 마시니까 몸에 온기가 돌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제1부 개막식이 끝난 무대에서는 2부 행사로 한량무, 설장구, 판소리, 사물놀이 등 국악공연에 이어 어린이 장기자랑과 주민 노래자랑, 새끼줄 꼬기 등이 열려 출연자 모두 푸짐한 선물을 한아름씩 받아갔다.
남녀 아이들이 굴렁쇠를 잡고 끙끙대기에 경험을 살려 도전해보았다. 그런데 묘기를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옛날 감각이 살아 있어 기분이 좋았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묻기에 요령을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몸에 익지 않은 아이들은 굴렁쇠를 자꾸 넘어뜨렸다.
이날 '정월 대보름 민속 풍물 한마당'에는 강봉균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도의원과 기관단체장들 얼굴도 보였는데 대부분 일찍 자리를 떴고, 문동신 군산 시장, 이복웅 문화원장, 한경봉, 강성옥 시의원 등은 달집태우기까지 참석하면서 시민과 행사를 즐겼다.
특히 문 시장은 동심으로 돌아가 굴렁쇠 굴리기에 도전했다. 그러나 몇 미터 나아가지 못했으며, 이 원장은 행사를 주도하면서 손님들에게 귀밝이술 권하느라 바빴고, 한 의원은 행사장 촬영, 강 의원은 볏단으로 새끼줄 꼬기에 참여, 줄넘기까지 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월 대보름 풍물 한마당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참가자들이 흰 끈을 잡고 우리 가락에 맞춰 달집을 도는 강강술래와 하늘로 솟는 불길에 한해의 소원을 비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아내가 떠오르면서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재밌고 존 걸, 자기는 정말 멋없는 아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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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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