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동상 관풍루에서 바라본 최제우 동상. 달성공원 내부를 향해 서 있다. 좌우의 향나무가 장엄하다.
정만진
최제우의 동상은 달성공원 관풍루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마치 '높이 날고. 멀리 뛰라!'하고 소리높여 외치는 듯 그는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공원 입장객들 상당수는 수운을 만나지도 못하는 채로 멀리 사라져 간다. 그들이 동물 구경에 여념이 없고, 동상 자체도 말끔하게 자란 향나무들로 좌우가 웅혼하게 가려져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 민족종교 동학이 세를 잃어 교조가 처형당한 자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실정이니, 성지도 아닌 달성공원에나마 동상이 세워진 것도 감지덕지를 해야 할 일인가.
수운이 경상감영에서 처형장인 아미산으로 끌려가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의 처형장이 아미산 관덕정 자리가 아니라 지금의 병무청 뒤 전동(前洞) 일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운을 아미산까지 압송하다가는 운집한 추종자들에게 탈취당할 우려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걱정한 나머지 경상감영 바로앞[前] 군영(軍營) 자리[洞]에서 형을 집행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물론 통설은 관덕장 자리를 수운의 처형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찌 사람들만 그의 처형을 지켜보았을까! 지금의 병무청 주변에서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높고 우람한 고목들도 그의 죽음을 생생히 보았을 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로초등학교 교정 복판에 버티고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에 '최제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수운 최제우의 자취는 없어졌고, 같이 숨쉬고 웃고 울었던 당대의 남녀노소도 모두 죽어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하늘과 땅과 바람과 나무 들만은 여전히 그의 죽음을 증언하리라, 대구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최제우 나무 사진은 경상감영 자리 옆에 있는 종로초등학교 전경이다. 최제우가 감영에서 처형장인 관덕정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아마도 이 나무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에 '최제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만진
수운이 죽자 제자들은 그의 주검을 거두어 경산 자인을 거쳐 경주에 당도한 후 용담정 아래에서 장례를 지낸다. 그 날이 3월 17일. 사교(邪敎)를 일으켜 민심을 혼란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던 그는 1907년 순종 임금으로부터 사면을 받게 된다. 그러나 동학혁명과 3.1운동으로 이어진 그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냉동설한보다도 더 엄혹한 식민지 시대와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을 거치면서 무성한 잎새 다 잃어버린 채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버렸다. 봄이 오면 다시 '사람이 곧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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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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