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고 박일수 열사 7주기만약 정규직 열사 추모제 였다면 이리도 적은 인원이 모였을까?
변창기
지난 12일부터 내린 눈으로 울산은 온통 눈 속에 덮여 있었다. 14일엔 눈 때문에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하루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2월 14일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였던 박일수 열사가 산화해 가신 지 7주기 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추모제에 가보려고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지회장 핸드폰 번호로 추모제 하는 날짜와 시간을 문의했었다. 처음 문자가 오기를 14일 오후 5시 30분부터 박일수 열사 추모제를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한다고 했는데 14일 오후 다시 문자가 왔다.
"14일 박일수 열사 추모제를 하기로 했으나 폭설이 내려 하루 연기합니다. 15일 오후 6시에 박일수 열사 7주기 추모제를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하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7년 전으로 기억한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에 다니던 어느 노동자가 자신이 소속된 업체 사무실 앞에서 새까맣게 불에 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오늘 15일,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박일수 열사 7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나는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알아 보려고 추모제에 참석해 보기로 했다.
추모제에 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에서 하는 행사고 현대중공업 노조도 있지만 불참했다. 민주노총 간부, 금속노조 간부, 사회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에서 참석한 60여 명 정도가 15일 화요일 오후 6시에 모여 박일수 열사 7주기 추모제 행사를 진행했다.
"박일수 열사 7주기... 노동조건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너무도 먼 현대중공업 정문나는 7주기 고 박일수 열사 추모제 간판과 영정 사진을 들고 서있었다.
변창기
▲ 현대 중공업 정문쪽 경비실 2층 모습. 2층 왼쪽에 있는 사람이 추모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변창기
추모제가 열린 공간은 현대중공업 정문 바로 앞도 아니었다. 6차선 길건너 현대중공업 정문이 보이는 길거리였다. 길건너 현대중공업 정문 앞엔 경찰차 한 대가 불을 번쩍이며 서 있었고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거북이 등처럼 만든 사내 체육관 앞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중공업 정문에는 팔각정 모양의 기와로 된 경비실이 있었는데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경비실이고 왼쪽엔 외부인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경비실은 2층으로 된 건물인데 그 건물 2층에 서너 사람이 모여 있었고 회사 복장이 아닌 사복차림의 옷을 입은 사람이 성능 좋은 사진기로 우리 쪽을 향해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금부터 7년 전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산화해 가신 박일수 열사 7주기 추모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후 6시가 되자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나는 박일수 열사 7주기를 알리는 간판과 열사 영정 사진을 들고 건널목 앞으로 가서 서있었다. 6시가 되자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잠시 지나치는 사람들이지만 박일수 열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건널목은 6차선이라 길었다. 빨간불이 들어오는 틈을 타 서둘러 사진 몇장을 찍고 다시 2단으로 간판을 들고 서있었다.
추모제에서는 노조간부가 나와 박일수 열사가 염원했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해 나가자고 말하고 노동자 노래패가 추모 노래를 했다. 추모제는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를 세우고 위원장을 지냈던 조성웅씨가 사회를 맡아 보았다.
추모제가 끝나고 현 하청노조 위원장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는 금속노조에 가입해서 공식명칭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로 되어 있다고 했고 자신을 지회장이라 불러 달라 했다. 그렇게 오세일 지회장을 만나 잠시 궁금한 점을 물어 볼수 있었고 박일수 열사에 대한 자료도 받아보게 되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 오세일 씨 "열사정신 계승하여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오세일 지회장은 강조했습니다.
변창기
나는 고 박일수 열사가 분신하기 전과 지금 상황에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내 질문을 접하고 오세일 지회장은 말했다.
"네 있지요. 경제 이익이 조금 개선되었어요. 없던 귀향비도 생기고 성과금과 학자금이 생겼지요. 3년이 지나면 중·고등 학생의 학자금 50%를 주고 일한지 5년이 지나면 대학 학자금50%를 줍니다. 그게 다이긴 하지만요."한편 오세일 지회장은 "3년간 비정규직으로 노동착취 해먹으면 3년 후 자녀 학자금 주고도 남는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오 지회장은 이어 말했다.
"결국 노동조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요. 토요일 8시간 유급으로 주어지던 것이 2009년 말 부터 사라지기 시작 했어요. 게다가 2000여 명을 일이 없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했지요. 남아 있던 하청노동자은 10%씩 수당과 임금이 삭감되기도 했어요. 지금 중공업 일이 엄청 많이 늘면서 사람 뽑느라고 야단이지요. 현대중공업 지난해 매출이 22조 4052억 원이었고 영업이익이 3조 4394억 원 이나 되었지요. 당기 순이익은 3조 7611억원을 기록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두었다고 현중노조 소식지에서 봤어요. 이렇게 흑자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수주도 잘되고 있다지만 정작 지난해 강제로 삭감 처리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상회복 안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나는 오늘 추모제에 온 하청노조원이 몇 명 정도 되는지를 물어 보았다. 오세일 지회장은 "우리 조합원들 여기오면 큰일 나요" 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23년이나 지닌 대기업 노조다. 그럼에도 아직 사내하청노동자가 고 박일수 열사 7주기 추모 행사에 올 수 조차 없는 현실인가?
그런 현실이 맞나 보다. 추모제 날 오세일 지회장에게서 받은 박일수 열사 추모 소식지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추모기간 현장조합 활동은 현대중공업 사측의 방해로 인하여 현장 출입이 되지 않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20여층 높이의 현대중공업 정문에 있는 본관 건물"저 건물 짓는데 얼마 들었을까요?" 저 건물 지은 돈 상당수가 하청노동자에게 착취한 돈이라 말하였다. 하청노조 어느 간부는.
변창기
고 박일수 열사는 1954년 9월 3일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에 취업했다가 그만 두고 2002년 3월 경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인터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2002년 12월 소급분이 미지급 된 사실을 알고는 소급분 지급을 요구하며 동료들과 작업거부를 시도 했다. 그 후 한마음회라는 하청노동자 모임을 만들고 체불임금 지급과 근로조건 개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2003년 주차, 연원차, 잔업특근 수당, 유급휴가를 요구하며 70여 명의 동료들 연대서명을 조직하기도 하여 노동기본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2003년 7월 22일 '하청 노동자 박일수' 라는 소식지를 실명으로 현대중공업 모든 공장에 배포하였다. 2003년 12월 현대중공업 원청사는 해고 통지서도 없이 박일수 열사의 모든 전산자료를 말소 시키고 강제로 해고 해버렸다.
2004년 2월 14일 새벽, 공장안에서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그 날 아침 일찍 출근한 어느 노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온 몸이 시커멓게 불에 타 있었고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2004년 4월 9일 전국 노동자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양산 솥발산 묘역에 안치되었다.
▲조촐한 추모 행사현대중공업과 먼 거리에서 하는 추모제도 사쪽은 감시하고 있었다.
변창기
고 박일수 열사 유서 내용 중에서 |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어짜피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나의 신분에 한 점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이 사회 또는 공장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서 오는 분노.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 착취, 비리, 직영노동자들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대하는 행패와 멸시, 고위관리직 이사부터 하위 관리직 팀장 반장까지 안 썩은 곳이 없고 상납이라는 추악한 고리에 향락 접대에 연결 안 된 XXX가 없다. 이런 현실의 피해자가 하청노동자다.
대한민국 노동법은 자본을 위한 법이고 하청 비정규에게 생색만 내는 노동법이다. 현대 어용 노동조합은 그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이고 노동자는 하나다는 원칙은 말장난일 뿐. 열악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다.
세상이 이렇다 하여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
부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4년 2월 14일 박 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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