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1.02.16 16:17수정 2011.02.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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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서두른다. 집사람의 부지런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 늦어도 무슨 대수냐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집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다. 집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되면 결국 나 자신만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집사람이 하라는 대로 따르게 된다. 집사람의 말이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모두가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따를 수밖에 없다. 단지 집사람의 재촉이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는 날이다. 한 달이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병이 얼마나 귀찮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병에 걸려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병으로 수난을 당하는 책임은 모두 다 나에게 있다. 내 스스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이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병은 귀찮고 고통스러운 존재이다. 함께하고 싶지 않지만 악착같이 따라 붙는 병을 어쩔 수가 없다.
병원에 들어서니, 시장처럼 북적인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를 일이다. 대기하는 의자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도착하였음을 알리니, 눈짓으로 기다리라는 표정이다. 아침 10시가 조금 지나고 있을 뿐인데, 간호사의 얼굴 표정은 벌써 지쳐 있었다. 기다리라는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빈자리가 하나 나서 그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힘들고 지쳐 있는 표정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나는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하루. 병으로 고통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을 수 있는 약이 있고,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은 아파 죽겠는데, 의사 선생님도 없고 먹을 수 있는 약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생각만 하여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처방 받은 약을 받았다. 한 보따리의 약을 받아 들고 나니,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이 귀찮고 어려운 일을 말없이 대신해주고 있는 집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집사람이 동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다. 집사람이 옆에 있어서 그나마 편안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새삼 집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찮다는 표정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하였다.
"맛있는 점심 먹자."
집사람은 얼굴이 멍해졌다. 기대도 하지 않은 제안을 받으니, 감동하는 표정이었다. 시간이 조금 이르기는 하였지만 집사람과 함께 가까운 음식점을 찾았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점심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일이라고는 없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쉬운 일은 그동안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행복해 하는 표정으로 즐거워하는 집사람을 바라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 또한 덩달아서 행복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은 행복한 하루였다.<春城>
2011.02.16 16:17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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