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독재비용'부터 책임지십시오

[주장] 왜 우리가 독재자의 수천억 이상의 인권탄압 비용 물어줘야 하나

등록 2011.02.21 17:50수정 2011.02.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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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실물크기 사진. ⓒ 김갑수

"인권 좋아하시네."

이것은 박정희가 즐겨 쓰던 말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경멸하고 냉소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 나라를 18년 5개월 동안 통치했다. 그 중 계엄령이나 위수령 등의 비상대권을 남용한 기간도 8년 5개월이 넘는다. 

박정희는 타인의 재산을 강탈했고 수천억으로 추정되는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 기간 죽음을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무고하게 투옥된 이도 1만 4천 명이나 된다. 단지 한 사람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으로는 우리가 치른 대가가 너무도 혹독했다.

박정희의 장기집권 무기는 반공법과 긴급조치였다. 그런데 이 두 법에 의해 형사재판을 받아 사형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한 피고인들에게 속속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아울러 그들에 대한 민·형사 보·배상 판결도 뒤따르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법원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36년 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해 재판 자체가 회복할 수 없는 인권 침해의 수단이 되었다. 사법부는 당시 재판을 30년이 넘도록 바로 잡지 못한 것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사과한다. 노년기에 이르거나 이미 고인이 된 분들께 재판부의 사과가 위로가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하는 계기가 돼 이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민청학련 재심공판을 맡은 한 재판장의 사과 말

엄청난 액수의 형사피해보상과 민사손해배상

지난 1월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임범석 부장판사)는 이강철(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3명과 가족 등 3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들에게 약 71억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민청학련사건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민간인들을 군사법원에 기소해 사형을 선고하는 등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탄압 사건이었다.


지난 1월 13일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민족일보' 사건으로 사형 당한 조용수 사장의 유족과 생존 피해자 양실근씨 등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조 사장의 유족 8명에게 23억 원, 양씨 등 2명에게 6억 원과 이자를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보다 앞선 작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는 민청학련사건으로 처벌받은 장영달 전 의원을 비롯한 피해자와 친인척 15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520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장영달 전 의원 등은 반국가단체 민청학련을 구성해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할 목적으로 대규모 폭동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지난 1974년 실형이 확정됐었다.


또한 11월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민족통일연합사건으로 1961년 징역 15년 형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에게 국가가 형사보상금 3억2900여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자의적으로 남발된 박정희의 인권탄압

지난 1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박홍우)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를 위반한 혐의로 323일 간 구금당한 뒤 최근 면소 판결을 받은 황아무개(59)씨에게 하루 16만원씩 5168만 원을 지급하게 하는 등 모두 8명에게 4억1595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이에 앞서 2009년에는 이른바 '이수근 간첩사건'에 대해 10억6700만 원, 2008년에는 태영호 납북사건의 선원 8명과 유족들에게 각각 1000만~5억6000만 원, 그리고 간첩누명을 받았다가 무죄선고를 받은 강희철씨에게 6억6000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박정희는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를 내렸는데, 1호를 통해 유신헌법을 부정·반대하거나 헌법을 개정하자고 주장·청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구속했으며, 심지어 이런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제1호 자체를 비방해도 처벌했다.

이로 인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는 사건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까지 나온 것이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589건 중 282건이 음주 대화 또는 수업 중 유신체제를 비판한 경우에 해당하는 점을 볼 때, 박정희의 인권탄압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남발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죽은 박정희의 것을 살아있는 박정희에게 물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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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발동 ⓒ 조선일보


작년 12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 2월 11일에 긴급조치 4호도 위헌이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처럼 긴급조치에 대해 잇따라 위헌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박정희 정권 하에서 긴급조치로 처벌받은 589명에 대한 형사보상과 민사배상이 확대될 것이며 그 금액은 줄잡아 최소 수천억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런 엄청난 돈을 왜 우리가 세금으로 감당해주어야 하는지에 있다. 물론 우리는 그 시절 죽음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한 민주인사들에게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수구신문이나 조갑제·이인화 같은 박정희 예찬론자가 아닌 담에야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박정희 독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피해보상이나 손해배상은 가해자에게 물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만약 지금 시점에서 제1 가해자인 박정희의 재산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당하는 것이 원칙 아닐까. 박정희 예찬론자들이나 박정희 유가족들은, 박정희가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지도자였으며 부정축재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그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할까?

박정희가 강탈하거나 축재한 재산은 지금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아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 명칭은 5·16장학회이고, 5·16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이다. 부일장학회는 삼화고무와 부산일보 등을 운영했고, 부산 지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고 김지태씨의 재산으로 만들어진 장학회였다. 김씨는 5·16 이듬해인 1962년 3월 재산해외도피 혐의 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두 달 정도 구금생활을 하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쓴 며칠 뒤 공소취하로 풀려났다.

박근혜 의원은 그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일장학회의 재산 포기는 헌납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지태씨의 큰아들 김영구 전 조선견직 회장은 "그해 5월25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상태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며, "내가 장남이라 인감도장을 가지고 가서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16장학회는 김씨가 재산을 '헌납'한 닷새 뒤 설립됐다.

정수장학회는 그동안 박정희의 친인척과 측근 등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박정희의 동서인 조태호 씨와 딸인 박근혜 의원이 각각 5·8대 이사장을 지냈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박준규 전 부산일보 사장, 진혜숙 전 청와대 총무비서 등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이사를 지냈다. (이상 네이버 '위키백과'에서 인용)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의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10·26 이후 청와대에 들어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박정희 집무실 제1금고에서 9억 원을 발견하고는 박근혜를 불러 준 일이 있다. 그런데 이 돈을 받아 간 박근혜는 얼마 후 다시 전두환을 찾아가 3억 원을 되돌려주며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 수사를 철저히 하는 데 써 달라고 했다고 한다. (전두환은 이 돈을 계엄사령관 정승화에게 2억, 국방장관 노재현에게 5000만 원을 주고 나머지 5000만 원은 자기가 썼다.)

또한 박근혜 의원이 퍼스트레이디 시절에 가까웠던(박 의원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최태민 목사 유가족의 재산만 해도 수백억에 이른다고 한다. 권력자 주변의 사람들은 왜 그리도 돈이 많은 건지 우리 서민으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박정희 대통령을 누구보다도 존경하며 모셨던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회고를 읽으면 어렴풋이나마 그 이유가 유추된다.

"육 여사 서거 후 큰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모'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김정렴 회고록, '아! 박정희')  

흔히 박근혜 의원을 가리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일화들과 그 '원칙과 신뢰'라는 것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박 의원은 '복지국가' 운운하기에 앞서, 우선 아버지의 피해자들에게 갚아야 할 비용을 애먼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 불합리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가 저지른 인권 탄압의 피해보상은 그의 유산인 정수장학회의에서 출연토록 함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 박 의원이 자진해서 노력을 보임으로써 '그 아버지의 딸'에 대한 새로운 신뢰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박 의원이 진정 '원칙과 신뢰'의 지도자라면 아버지의 '빛과 그림자'를 구별 없이 문제시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그 빛은 쪼이되 그림자는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원칙이 아닌 '변칙'이며 신뢰는커녕 불신밖에는 남을 것이 없을 터이다.
#박정희 #정수장학회 #박근혜 #긴급조치 #반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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