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와 까치들.
김어진
그날 이후, 나는 여러 날을 연속으로 공릉천을 찾았다. 독수리들이 고라니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독수리들은 까치랑 까마귀들이 신나게 고라니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나타나면 날아가 하루 종일 높은 하늘을 빙빙 돌 뿐이었다. 그러다가 잠을 자러 파주 적성면 쪽으로 날아가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하루는 독수리들이 하늘을 빙빙 돌고 있어서 멀리 컨테이너 박스 뒤에 숨어서 독수리들이 앉길 기다리자 하나둘 땅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은 땅에 내려앉을 때 날개를 구부려 급강하를 하는데 어찌나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지 깃털이 휘날리면서 바람과 부딪치는 "후우웅~"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독수리들이 논밭에 착륙을 했고 다른 독수리들은 계속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날은 다른 때와 달리 독수리가 무척 많았다. 나는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 뒤에 몸을 숨기고 접근했는데, 어떤 구간은 퇴비를 쌓아놔서 지나가기 괴로웠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그렇게 접근해서 독수리와 30m 정도의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몸을 숨길 마땅한 공간이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다시 나와 논두렁 밑으로 빙~ 돌아갔다.
신현칠 선생님은 15m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안 날아간다고 하였는데, 어림잡아 50m,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독수리들이 날아갔다. 기러기나 오리들처럼 한꺼번에 날아오르진 않지만 한 마리 두 마리 날아가니, 나중에는 한 마리도 논밭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은 독수리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앞쪽에 있는 논밭이었다. 여기에는 비닐하우스처럼 몸을 가리고 접근할 곳이 없어 포복을 해서 앞에 있는 수로에 몸을 숨겼다. 이래봤자 독수리들은 바로 나의 존재를 알아채겠지만 적어도 날아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힘들게 접근을 해서 독수리들이 고라니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독수리들은 여전히 고라니 사체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독수리들이 고라니 사체를 안 먹는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아직 고라니 사체가 썩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