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돼지는 없다, 도랑엔 붉은 핏물
역한 냄새...20일간 퍼낸 침출수 400여톤

[현장르포] 구제역 매몰지 경북 영주 안정면 묵리를 가다

등록 2011.02.21 10:45수정 2011.02.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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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 부석사 무량수전, 소수서원….'

경북 영주는 소백산에 둘러싸인 도시다. 조선시대의 한 풍수가가 소백산을 두고 "사람을 살게 하는 산"이라고 했고, <정감록>의 10승지(勝地)중 제1승지로 기록될 정도로 경북 영주는 살기좋은 고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바로 인접한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이후 경북 영주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구제역 감염 가축 매몰지 105곳에 6만5000여 마리의 소·돼지가 매몰됐다. 낙동강 유역 매몰지(영남권) 908곳의 11.6%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경북 영주가 '사람을 살리는 땅'에서 '가축을 묻는 땅'으로 변한 것이다.

살아 있는 돼지는 없었다... "여름이 되면 냄새 더 심해질 것"

a  구제역 매몰지와 연결돼 있는 이 도랑까지 침출수가 흘러 내려 톱밥을 깔았다.

구제역 매몰지와 연결돼 있는 이 도랑까지 침출수가 흘러 내려 톱밥을 깔았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18일 오전 11시 10분께 도착한 경북 영주 안정면 묵리에서는 살아있는 돼지를 구경할 수 없었다. '○○농장'이라고 적힌 푯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A양돈농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작은 하천이 있었다. 평생 묵리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하천과 연결된 도랑을 가리키며 "도랑에 핏물이 흘러서 톱밥을 깔았다"고 말했다.

"핏물이 여기까지 흘러오니까 신고를 했다. 그래서 도랑에 전부 톱밥을 깔았다. 특히 여기는 지하수로 물을 마신다. A농장은 구덩이도 파지 않고 그냥 돼지를 묻어서 오염이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관정을 다시 박았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구제역이라는 것이 그냥 지나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들게 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때 바람이 기자의 코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났다.  

"바람이 불면 냄새가 엄청 난다. 정말 역겨운 냄새다. 여름이 되면 냄새가 더 심해져 살기 힘들어질 것 같다."


A농장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도랑을 살펴봤다. 그 주민의 말대로 거의 전부 톱밥이 깔려 있었다. 톱밥 위로 올라온 물은 약간 붉그스레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농장쪽에서 흘러나온 돼지핏물이 이곳까지 흘러나왔음을 보여준다. 

A농장에서는 지난 1월 13일 약 3000마리의 돼지를 매몰했다. 바로 위에 있던 양돈농장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는 바람에 이곳의 돼지도 살처분해야 했던 것. 그런데 며칠 후 침출수 문제가 생겨났다.  

이날 침출수 시료를 채취하러 온 김정수 시민환경구소 부소장은 "침출수가 흘러나와 돼지 사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고 오염된 침출수를 뽑아올리고 있는 단계"라며 "(사체를 옮겼는데도 침출수가 계속 나오는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A농장에 들어서자 아주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맡았던 그 냄새였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웠다. 하얀 방역복에 마스크까지 착용했지만 냄새는 계속 났다. 옆에 있던 한 방송사의 카메라 기자가 이렇게 투덜거렸다.

"나도 구제역 매몰지를 좀 돌아다녀봤는데 이곳은 냄새가 심하다."

a  도랑에 깐 톱밥 위로 새나온 물이 붉그스레한 빛깔을 띠고 있다.

도랑에 깐 톱밥 위로 새나온 물이 붉그스레한 빛깔을 띠고 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한번에 5톤씩, 하루에 네 번 침출수 퍼내"

농장 안으로 들어가니 넓다란 웅덩이가 있었다. 돼지를 묻었다가 다시 파낸 자리였다. 웅덩이 바닥에는 검붉은 침출수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주변 토양으로 들어간 침출수가 지하수와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역겨운 냄새가 더 심하게 났다. 

'구제역·AI 시민조사단'은 이곳에서 20여분간 총 3리터의 침출수 시료를 채취했다. 김정수 부소장은 "매몰지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침출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영주시에서 하루에 세 번 정도 침출수를 퍼내고 있다"며 "이곳은 매몰지의 침출수가 주변지역 토양에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마침 침출수를 퍼내러 온 정교준(43)씨를 만났다. 정화조 차량 운전수인 정씨는 "오전에 세 번, 오후에 한 번, 즉 하루에 네 번 정도 침출수를 퍼내고 있다"며 "이 일을 1주일 전부터 해왔다"고 전했다.

정씨에 따르면, 한번에 침출수 5톤을 퍼내고 있다. 그러니까 하루 약 20톤, 1주일간 140톤의 침출수를 퍼내고 있는 셈이다. 기자가 '냄새가 심해 구역질이 올라왔다'고 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악취는 다른 썩은 냄새와 다르다.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 코로 맡기 힘들 정도다. 봄에 땅이 녹으면 더 심해질 텐데 그것이 문제다. 그래도 그동안 계속 침출수를 퍼내서 이 정도다."

'퍼낸 침출수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시 쓰레기 하치장으로 가지고 가서 약품처리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 침출수가 땅으로 들어갔을텐데 시골에서는 지하수를 많이 먹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식수원 오염을 우려했다.

1주일간 침출수를 퍼냈는데도 핏물의 농도가 크게 떨어진 것 같지 않았다. 정씨가 침출수를 한번 퍼냈지만 웅덩이 바닥은 30여분 만에 다시 침출수로 가득 찼다.

결국 침출수를 퍼낼 정화조 차량이 한 대 더 동원됐다. 침출수를 뽑아내는 통(호스)이 들썩일 때마다 역겨운 냄새가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a  경북 영주 안정면 묵리 A농장의 최초 매몰지에 고여 있는 침출수. 아주 역한 냄새가 났다.

경북 영주 안정면 묵리 A농장의 최초 매몰지에 고여 있는 침출수. 아주 역한 냄새가 났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a  A농장의 침출수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구제역·AI 시민조사단'.

A농장의 침출수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구제역·AI 시민조사단'. ⓒ 오마이뉴스 구영식


영주시, 매몰지 환경 관리 방안으로 '액비탱크' 설치  

현장을 방문한 영주시청 한 관계자는 "구덩이를 파지 않고 그냥 땅 위에 돼지를 모아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묻었다"며 "이곳 지반이 약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언론이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오염을 막기 위해 침출수를 빼고 있다. 그런데 언론이 아무런 설명없이 이곳 침출수를 보도하니까 마치 우리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것처럼 돼버렸다. 기자들이 올 것 같았으면 (침출수 현장이 보이지 않도록) 이곳을 덮었을 것이다."

매몰지를 방문한 강신호 영주시 녹색환경과장은 "오히려 이곳은 매몰지 관리 모델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13일 이곳에 돼지 3000마리를 묻었다. 하지만 매몰한 지 5일 만에 침출수가 새나와 인근 농지와 도로, 수로로 흘러 2차 환경오염이 우려됐다. 이에 영주시는 "주변 농지에 집수정을 파서 1일 20~30톤 침출수(를) 제거"했다.

"우수기시 빗물과 혼합되면 대량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끝에 결국 ▲지하 차수벽 설치 ▲매몰지 이전 ▲지상부 저장탱크 설치 후 이전 보관 관리 등 세가지 '침출수 누수방지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지하 차수벽의 경우 설치에만 3억~3억5000만원의 고비용이 들어가고, 매몰지 이전은 인근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확산' 우려 때문에 결사반대했다. 결국 영주시에서는  '돈사 액체비료(액비)탱크'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3000만 원의 예산만 있으면 200톤의 '액비탱크' 설치가 가능했다.

영주시는 "지상부 밀폐형 저장탱크 보관으로 우수기 누수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고, 저비용 이전관리로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구제역 매몰지 환경적 관리사례'로 꼽아 조만간 사례발표를 할 계획이다.  

a  경북 영주시가 '매몰지 환경적 관리 사례'로 꼽고 있는 '액비탱크'.

경북 영주시가 '매몰지 환경적 관리 사례'로 꼽고 있는 '액비탱크'. ⓒ 오마이뉴스 구영식


"흙에 있는 미생물의 힘은 엄청나다... 지하수 오염 해결 가능"

강신호 과장은 "전염병이 생기지 않도록 소독하고 있고, 악취제거제를 3회 살포했다"며 "(최초 매몰지의) 침출수를 10일 동안 뽑아내고 있어 지하수 오염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부소장도 "밸브를 통해 정기적으로 침출수를 빼낼 수 있기 때문에 액비탱크 설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해볼 수 있다"며 "겨울에 땅을 파기 힘들고 액비탱크가 이미 제품으로 나와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강 과장은 "액비탱크는 돈도 적게 들면서 지하수 오염을 막을 수 있다"며 "이미 사체를 묻었다가 지하수 오염 등이 우려되는 지역에서 매몰지를 관리하는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과장은 "언론에 공개될 수 있는데 그냥 덮어버릴까, 아니면 침출수를 빼내고 덮을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결정한 것"이라며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웅덩이(최초 매몰지)를 덮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토양오염을 줄이기 위해 웅덩이의 침출수를 빼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포클레인으로 땅을 더 파보고 맑은 물이 나오면 덮을 계획이다."

강 과장은 "웅덩이에 핏물이 고여 있다는 것만으로 관리를 잘못하고 있다고 보면 안된다"며 "그것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기자가 "며칠 동안 침출수를 퍼내고 있는데도 30분만 지나면 침출수가 차고 있다"고 지적하자, 강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침출수의 97%는 물이고, 3%가 돼지피다. 특히 흙에 있는 미생물의 힘이 엄청나다. 그 미생물이 (침출수를) 다 분해해서 침출수가 없어진다. 지하 1미터가 오염됐다고 해도 3년 정도 지나면 미생물에 의해 (오염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매몰지를 3년간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3년까지 안 갈 것이다. (침출수를 퍼내면서) 악취도 70% 잡혔다."

강 과장의 진단은 전날(17일) '침출수 퇴비화' 발언으로 공분을 샀던 정운천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의 "자연정화능력은 대단하다"는 발언을 떠올리게 했다.  

김 부소장은 "액비탱크 설치 등 영주시가 고민은 많이 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성과를 홍보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a  두 대의 정화조 차량이 동원돼 침출수를 퍼내고 있다. 하루 동안 퍼내는 침출수는 20톤 정도.

두 대의 정화조 차량이 동원돼 침출수를 퍼내고 있다. 하루 동안 퍼내는 침출수는 20톤 정도. ⓒ 오마이뉴스 구영식


구제역 매몰지에 포클레인이 동원된 이유는?

그런데 침출수 제거작업 기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정화조 차량 운전수는 1주일간, 강 과장은 10일간 침출수를 퍼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 과장이 현장에서 기자에게 건넨 영주시의 '구제역 매몰지 환경적 관리사례' 문건에는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17일까지 20일간 침출수 퍼내기 작업을 해온 것으로 나와 있다.

하루 퍼낸 침출수가 20톤이라고 가정했을 때 17일까지 400톤 정도의 침출수를 퍼낸 셈이다. 아직도 침출수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나온 침출수만 수백톤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영주시는 이곳이 언론의 집중취재대상이 되자 검붉은 침출수가 계속 고이는 웅덩이를 덮으려고 한 것 같다. 이날 포클레인이 현장에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영주시 관계자들은 "이곳에 있는 흙들을 정리하러 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기자가 "오늘 웅덩이를 덮으려고 포클레인을 가져온 것 아니냐?"고 묻자 강 과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기자들이 간 다음에 검토하겠다(웃음)."

매몰지 현장을 떠난 뒤에서 매몰지의 악취는 기자를 계속 따라 다녔다. 전문가들이나 환경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날씨가 풀리면 악취와 침출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했다. 2차 환경오염은 조만간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 시민조사단은 이날 채취한 침출수 시료를 충남대와 서울대에 의뢰해 구제역 바이러스 생존 여부와 침출수의 독성을 분석할 계획이다. 분석작업에는 한 달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역 사태 #경북 영주시 안정면 묵리 #영주시 #김정수 #구제역 시민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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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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