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라는 것이 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고위공직자나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회적 목표는 대부분 뒷북행정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관료들이 책상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사교육 줄이기는 역대 정권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정권 초기마다 매번 강력한 대책을 내놓지만, 그때마다 정부의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규제를 피해 현실의 교묘한 틈을 파고들거나 위장하고, 때론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살아남고 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의 맹점을 파고들어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내신에 비중을 두게 했더니만 내신을 올리는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고, 교과 위주에서 벗어난 평가를 위해 논술이나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더니만 그 부분에 대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 주는 꼴이 됐다. 이와 같이 교육정책이 교육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항상 뒷북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 있다. 그것은 교육학 이론이나 사회과학 분야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생물학이다.
자기복제 시스템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
<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저, 은행나무 펴냄)는 생명의 본질에 관한 통찰이다. 저자는 록펠러 의학연구소와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분자생물학자이다.
이 책의 미덕은 과학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한 지은이답게 딱딱한 이론이나 어려운 학설을 지루하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연구현장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과정을 재밌는 에피소드 속에 버무려 구수하게 풀어나가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구수한 입담 속에 슬며시 집어넣어 읽는 사람이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어려운 분자생물학의 개념을 흥미로운 소재에 녹여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도 거부감 없이 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맨해튼에 위치한 록펠러 의학연구소는 그리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생물학 분야에서는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한 곳이다. 일본 지폐에도 얼굴이 새겨진 노구치 히데요(지은이는 그렇게 높이 평가하진 않는다)가 있었던 곳이고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오즈왈드 에이버리가 연구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에이버리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DNA의 실체를 보여주고, 어윈 샤가프의 고민을 들려주며 DNA의 상보성을 밝혀준다.
괴짜 과학자 스티브와 멀리스의 에피소드로부터 과학연구가 실험실에 틀어박혀 심각하게 인상만 찌푸려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이십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일컬어지는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들려주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경쟁과 비윤리성을 까발린다. 일등만 기억하는 성과주의 틈바구니에서 연구자들은 어떻게 강박에 시달리고, 학술지 논문심사에서 동업자의 성과를 가로채고픈 유혹을 느끼기도 하는 과학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연구자들의 애환을 잔잔하게 들려주는 것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무거운 주제가 다루어진다. 이론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에르빈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물학자의 연구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생명은 단순히 자기복제를 하는 정보시스템뿐만 아니라 하나의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무질서로 향하는 엔트로피의 세계에서 질서를 부여하고(유전정보), 그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섭취하는 행위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
루돌프 쇤하이머는 생명체가 구조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걸 밝혀낸 과학자다. 그는 중질소를 염색해 실험쥐에게 투여한 다음 아미노산의 흐름을 추적해보았다. 애초 가설에는 중질소가 포함된 아미노산은 대사의 흐름에서 일부만 흡수되고 대부분 빠져나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체내에서 주입된 아미노산은 체내의 단백질에 반 이상이 흡수되었다. 그럼에도 쥐의 체중이나 지방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는 체내에서 기존의 단백질이 새로운 아미노산에 의해 끊임없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유기체는 그 하위단위에서는 항상 옛 것이 버려지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순환을 하고 있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흐름 그 자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란 개념이 파생된다. 저자는 쇤하이머의 개념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정의한다. 저자가 정의한 생명의 개념은 책상머리에서 도출해낸 사고모형이 아니라 직접 실험현장에서 겪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GP2는 소화효소의 분비과립막을 형성하는 중요한 단백질로서 저자가 속한 연구팀이 발견했다. GP2는 췌장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단백질이 없다면 소화작용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생각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원인을 제거해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를 통해 인과관계의 메카니즘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기계적 방법이다. 저자는 GP2의 기능을 밝히기 위해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즉 유전자를 녹아웃(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법. 여기서는 GP2를 제거한 것이다)한 쥐를 얻을 수 있다면 소화작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쥐가 태어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몇 번의 교배 끝에 의도한 대로 GP2가 녹아웃된 쥐가 탄생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심각한 소화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다. 실험과정에 문제가 있나 싶어 환경을 바꾸고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골머리를 앓던 저자는 마침내 자기의 실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이란 기계처럼 하나의 부품이 결여됐다고 그 기능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회수단을 쓰더라고 생명이 유지할 수 있는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요인이 결핍되면 시스템은 그걸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내지만, 결핍이 아니라 변형된 요인이 존재하면 시스템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결합한다. 그리하여 전체 네트워크에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면서 결과적으로 더 나쁜 해악을 초래하게 된다. 저자는 부분적인 결함이 더 파괴적인 결과를 낳고 오히려 처음부터 없는 편이 나은 생명의 시스템에 혼란을 느낀다. 그렇다고 생명의 과정에 환멸을 느낀다거나 회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으며 생명에의 외경을 변함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실험용 쥐)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우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연의 생명현상에는 단백질이 찢기고 변질될 것을 대비해 사전에 다양한 중복과 잉여가 준비되어 있다. 동적 평형이 깨어졌을 때 이들 중복과 잉여가 그 틈을 메우며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론 더 이익이라는 것은 수억년의 진화가 말해 준다.
2011.02.22 15:54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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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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