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녀와 바람 피우고 난 뒤 이렇게 벌받아요"

한의사에게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한 아저씨의 이야기

등록 2011.02.26 14:14수정 2011.02.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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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 진료실 모습 침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환자분들 ⓒ 최성규



잊을만하면 보건지소에 들르는 분들이 있다. 김동환(가명)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손해사정인으로 일하는 게 너무 바쁘고 고되서인지 목과 어깨는 항상 굳어 있다. 꾸준히 치료를 못 받으니, 변함없이 굳은 어깨로 내 앞에 나타난다.

"어? 오랜만이네요. 김동환 아버님."
"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환자분들이 뜸한 오후의 진료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하품을 참고 있는데, 마침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이번에 서울에서 나로도로 내려오는 길에 30분밖에 못 자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란다.

"항상 올 때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도 어깨랑 목이 문제죠?"
"지금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몸이 말이 아니에요. 목도 개운치 않고 답답한 게."

항상 하던 식으로 후두부의 근육들을 눌러본다. 승모근, 두반극근, 두판상근, 흉쇄유돌근. 통증이 있을만한 곳들을 누르다 보니 '아야'하는 곳이 있다.

"여기 누를 때 제일 아픈가요?"


순간 목을 돌리면서 내 손을 뿌리치는 아저씨. 약간 당황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다시 눌렀다.

"여기가 제일 아프시죠?"

다시 목을 돌리면서 내 손을 치우는 아저씨. 마른 침을 삼키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서서히 당혹스러웠다.

"거기 누르니까 목이 너무 답답해요. 머리까지. 아, 이거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네."

숨이 가쁜 듯 자리에 가만히 있질 못하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래도 한의사 체면에 냉정한 말투로 얘기해보지만, 속이 타는 건 어쩔 수 없다. 견디기 힘든 듯 목을 여기저기 돌리면서 눈을 끔벅인다.

"오른쪽 팔로 막. 뭐지. 저린 것도 아니고 감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되지? 뇌졸중 같은 건가요?"

불안해하면서 질문을 하는 아저씨를 달래본다.

"자각증상이 있다고 해서 뇌졸중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단순한 신경통으로도 그 정도 증상은 나타납니다."

혹시 몰라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지만 괜찮단다. 우선 좀 쉬게 해야겠다. 10분 정도 지났더니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평소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듣고, 스트레스와 관련이 가장 깊은 '간장'을 풀어주는 쪽으로 침을 놓았다.

"이대로 맞고 계세요."

혹시 몰라서 옆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먼저 말을 꺼내는 아저씨.

"선생님. 제가 예전에 바람을 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랑. 소문 다 났죠. 아내가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뭘 한 건가하는 생각이 번쩍 드는데. 저도 충격을 받았죠. 원래 건강했는데 그때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보통 바람을 피는 사람은 뻔뻔한데, 아버님이 충격을 받으셨어요? 그러고 보면 모질지 못하신가 봐요?"

"그런가 보네요. 목이 답답하면서 죽을 거 같은 게 오늘만이 아니에요. 작년에는 119에 실려나가는 걸 아들이 봤죠. 제가 죄 받고 있나 봐요. 아내가 힘든 거에 비하면 제가 충격받고 이렇게 머리 아픈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주홍글씨 아시죠? 선생님. 나한테 붙어서 안 지워져요. 계속 따라다녀요."

지금 자신이 고생하는 게 다 업보라고 느끼는 듯했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말하기도 듣기도 좋았다. 어슴푸레 몰려오던 피곤이 확 달아났다. 나는 어느덧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선생님을 보면 차분하게 얘기를 잘 들어줘요. 저번에도 느꼈는데. 참, 제가 손해사정인으로 일하는 건 알죠?"

"병원에 자주 다니다 보면 환자들이 의사만 봐도 안정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의사들이 좋아요. 특히 교통사고 환자들한테는 그런 의사가 필요해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적으로 잘 돌봐줘야되거든요."

어느덧 아저씨는 나에게 좋은 의료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자동차 보험 환자들 참 불쌍해요. 보험회사가 뒤통수 많이 치거든요. 제가 일하면서 답답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에요. 계란으로 바위에 부딪치는 느낌이랄까. 보험금 타기 너무 힘들어요. 우리나라에 광고 많이 때리는 메이저 보험회사가 몇 개 있는데 다들 독해요."

"에휴. 제가 소인배인가 봐요. 그릇도 작고."

한참 얘기 잘 하다가 다시 신세 한탄이다. 몸이 아프면 감상에 잘 빠지는 게 사람이긴 하지만. 다행히 침을 맞고 나니 괜찮아졌다.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문을 나서는 아저씨. 바람 핀 게 잘 한 건 아니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적인 모습에 병도 쉽게 들락날락하는건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한마디 했다.

아저씨, 딴 건 몰라도 스트레스에는 뻔뻔해지세요!
#나로도 #공보의 #스트레스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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