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트리폴리'...카디피 눈치만 보는 국제기구

광기의 카다피와 끊이지 않는 리비아 학살... 국제정치는 무고한 목숨 못 구해

등록 2011.02.26 12:52수정 2011.02.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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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리비아 동부 항구도시 토브루크에서 시민들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카다피는 벵가지와 토브루크에서 잇달아 통제력을 상실했다. ⓒ EPA=연합뉴스


시민 저항이 시작된 지 10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리비아는 살육의 땅으로 변했다. 현지에서의 직접 취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확한 사망자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300명, 국제인권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은 700명, 알 자지라(Al Jazeera)는 프랑스 인권단체 간부의 말을 빌려 사망자가 2000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수를 세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계속 사망자가 늘고 있고, 그들이 모두 광기로 똘똘 뭉친 독재자와 그의 아들들에 의해 살해됐으며, 앞으로도 얼마나 더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리비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독재자인 카다피의 퇴진이다. 그러나 42년을 집권한 카다피는 권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고 광기와 엽기가 섞인 말들로 리비아 국민들과 세계를 우롱하고 있다. 그의 아들들은 독재자의 자식답게 역시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협박하면서 일선에서 학살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카다피를 축출할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42년 독재라는 말이 어울리게 카다피는 국민들의 목숨을 건 봉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국 용병까지 동원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온 세상에 자신과 자식들의 치부가 드러나고 세계인들의 비난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원유 채굴 시설을 폭파하고 유럽으로의 불법 이주민 통제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고 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한 현재로선 카다피를 끌어내릴 방법이 없다.

'국제사회 개입, 무력 사용' 힘든 상황... 리비아에 대한 관심 끊지 말아야

학살을 멈추게 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 리비아 사람들은 스스로 학살을 멈추게 할 힘이 없고 국제사회 역시 독재자의 비인도적인 범죄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구조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리비아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쓴 언론과의 전화 통화나 스스로 촬영한 이미지의 공유를 통해 계속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세계는 가슴을 조리면서 학살을 지켜보는 것밖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들의 연합인 유엔이 할 수 있는 대응책도 제한돼 있다. 금요일(현지 시각) 소집된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의 폭력을 중단할 행동을 취할 때임을 강조하고 결의안 초안을 논의했다. 유엔이 고려하고 있는 결의안에는 유혈진압 중단 촉구와 무기 금수조치, 자산동결, 여행 금지 등의 제재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하무인이자 광기를 보이고 있는 카다피가 그런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금요일 카다피의 둘째 아들인 사이프 카다피는 비비씨(BBC) 기자를 초청해 외신들이 유혈진압을 과장해 보도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향후 계획을 묻는 씨엔엔(CNN) 기자에게는 자신들은 리비아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겐 플랜 A, 플랜 B, 플랜 C가 있다. 플랜 A는 리비아에서 살고 죽는 것이다. 플랜 B는 리비아에서 살고 죽는 것이다. 플랜 C 또한 리비아에서 살고 죽는 것이다."

25일 리비아 벵가지에서 금요기도회를 앞두고 한 여성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카다피 친위병력이 이슬람 사원에서 금요 예배를 마치고 거리로 나온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수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AP=연합뉴스


유엔인권이사회가 리비아의 유혈진압에 대한 현장 조사를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리비아 정부가 조사위원들의 입국을 막으면 그만이다. 국사형사재판소를 통해 기소하는 방법도 있지만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나지 않는한 집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이 역시 카다피가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학살을 중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무력개입을 결정할 수 있는 유엔, 유럽연합, 나토 등이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력개입 논의는 논란만 키울 가능성이 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사이에 동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유엔이 파견하는 평화유지군은 내전과 그에 준하는 무력 충돌 상황이 종식된 후 휴전 상태를 감시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해당 정부의 요청 하에 파견될 수 있다. 그러나 리비아 상황은 이 조건에 맞지 않는다.

1999년 나토는 수적으로 다수지만 정치적으로 소수집단인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세르비아의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해 코소보에 대한 무력개입을 단행했다. 나토의 무력개입 결정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의 정치적 불안이 유럽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또한 코소보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다른 유럽 국가로 난민이 유입될 것을 우려한 예방 조치이기도 했다. 나토의 무력개입이 학살을 줄였는지 그 후에 학살이 더 심해졌는지, 또한 무력개입이 정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무력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두 가지 근거는 세계평화의 위협과 학살과 같은 인도적 재난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리비아 상황이 위의 두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두고는 정부들 사이에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부담이 큰 무력개입 결정을 유엔이나 지리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유럽연합이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국제정치 무대에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들이 사실상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자국민을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고 나토 또한 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리비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리비아 국민들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더 많은 희생을 예고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한 도시가 늘어가고 카다피가 트리폴리에서만 겨우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카다피가 포기하지 않는한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가 당장 효력 있는 대응책을 찾을 수 없지만 언론과 세계인들은 리비아 사람들의 저항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지지를 보태고 독재자 카다피의 학살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가 관심을 끊는다면 리비아 사람들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학살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비록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언론 인터뷰에 응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은 여전히 세계의 이목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다면 심리적으로 위협을 느낄 것이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제3국을 찾기 위해서 최후의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리비아 #아랍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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