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죠? 이런 건 한국인밖에 안 해요

[동티모르 봉사기 ①] 9시간 비행, 13시간 노숙 끝에 만난 동티모르

등록 2011.03.03 17:56수정 2011.03.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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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언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으로 알려진 그곳에 경원대학교 해외봉사단인 아름샘이 지난 2월 10일 열흘간 봉사를 다녀왔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봉사단원들은 2010년 11월 선발돼 3개월간 준비기간을 가졌다.

봉사단 이름인 '아름샘'은 아름다운 샘을 뜻한다. 아름샘의 모토는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샘이 동티모르에 남겨놓은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까지는 못 되더라도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리고 이 글이 동티모르 소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주

지난 2월 11일 인도네시아 발리 섬 덴파사르의 응우라라이 공항(발리 국제공항). 인천공항을 떠난 지 7시간여 만에 인도네시아 발리에 도착했다. 한국에는 동티모르 직항 항공편이 없어 발리를 경유해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로 가야만 한다.

자정이 지나서야 발리에 도착했지만 오전 10시 50분 발 딜리 행 비행기를 타려면 발리 공항에서 10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단원들 모두 한국에서부터 노숙을 각오하고 온 지라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출입국 관리 직원 한 명이 봉사단의 입국을 막은 것이다. 이유인즉슨, 출입국 관리 직원이 한 장 한 장 손수 붙여야 할 인도네시아 입국비자를 봉사단원들 스스로 미리 여권에 붙여 버렸으니 다시 비자를 사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자를 미리 붙였던 봉사단원 중 절반 이상은 이미 별 탈 없이 입국을 한 상태였다.

한참 동안 실랑이가 오고가다 출입국 관리 직원을 설득해 겨우 입국을 허가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공항 직원들이 봉사단의 짐을 허락도 없이 카트에 싣고 게이트 밖까지 끌고 가더니 수고비로 일인당 10달러씩을 요구한 것이다. 동행해 주신 김한정 교수님의 설득으로 겨우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제야 발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찬바람 쌩쌩 부는 한국과 달리 후텁지근한 열기가 훅 느껴지는 발리의 날씨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거대한 야자수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해준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발리구나.

화장실에서 씻고, 공항 바닥에서 자고... 발리에서 생긴 일

 끝없는 딜리행 비행기의 연착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아름샘 봉사단
끝없는 딜리행 비행기의 연착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아름샘 봉사단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공항 주변 구경을 마친 봉사단원들은 공중 화장실에서 대충 세면을 마치고 공항에 놓인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 2~3시가 넘어가자 하나 둘씩 공항 바닥에 피곤한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낯선 이국에서, 그것도 차갑고 딱딱한 공항바닥에서 편히 잠들 리 없다. 이쯤되면 모두에게 드는 생각은 '딜리 행 비행기에서 밀린 잠을 자자'는 것 하나 뿐이다.

그러나 딜리 행 비행기의 끝없는 연착은 이러한 희망마저 사라지게 했다. 원래 오전 10시 50분에 이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딜리 행 비행기는 오후 1시 30분으로 미뤄졌다. 그나마도 확실하지 않아서 어쩌면 오늘 안에 비행기가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7시간 비행에 10시간의 노숙. 지칠대로 지친 봉사단원들은 기약 없는 딜리 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점점 우울해졌다. 오후 1시 30분 이륙예정이라던 딜리 행 비행기는 오후 2시가 한참 지나서야 발리 공항에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발리에서 2시간 정도 비행한 끝에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 도착했다.


다같이 돌자, 딜리 한바퀴... '한 올 한 올' 정성들인 동티모르 타이즈

 딜리 탐방 중 방문한 크리스투 레이
딜리 탐방 중 방문한 크리스투 레이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현재 동티모르는 우기. 평균 기온이 섭씨 30도에서 37도까지 되는 뜨거운 계절이다. 딜리에 도착한 후 봉사단은 3~4명씩 팀을 짜서 딜리 시내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봉사단에게 주어진 것은 일인당 용돈 10달러와 팀당 두 장의 딜리 시내 지도,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인 떼뚬어 기초회화가 적힌 종이 한 장.


내가 속해 있는 팀이 가장 먼저 가기로 정한 곳은 딜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투 레'(CRISTO REI)이다. 크리스투 레이는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예수상으로 1976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출발지인 티모르 호텔에서 크리스투 레이까지는 꽤 먼 거리이기 때문에 일단 택시를 잡아야 했다. 택시의 기본요금은 미화 1달러. 미터기가 없기 때문에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기사와 합의해야 한다.

 크리스투레이에서 바라본 딜리 해변. 해변을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크리스투레이에서 바라본 딜리 해변. 해변을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한참 동안 아름다운 해변도로를 달리다가 산 중턱쯤에서 내렸다. 크리스투 레이는 산 위에 있기 때문에 가까이서 예수상을 보려면 짧은 코스지만 어쩔 수 없이 등산을 해야 한다. 하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딜리 해변을 바라보면 등산하는 데 쏟은 땀이 아깝지 않다. 더운 날씨에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나서야 가까이서 보게 된 예수상은 지구 위에 올라 양팔로 눈앞에 펼쳐진 딜리 해변을 품안에 안으려 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투 레이를 둘러본 후 재래시장으로 이동했다. 딜리의 재래시장은 한국의 재래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노점마다 좌판을 벌여놓고 과일, 채소, 향신료 등을 판다. 한국의 재래시장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익지도 않은 새파란 바나나를 무더기로 판다는 것과 생고기를 냉장보관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좌판에 벌여놓고 판다는 것뿐이다.

 딜리 재래시장 풍경
딜리 재래시장 풍경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딜리 재래시장에서 만난 가게주인 아저씨. 카메라를 보고 반갑게 포즈를 취해주셨다.
딜리 재래시장에서 만난 가게주인 아저씨. 카메라를 보고 반갑게 포즈를 취해주셨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재래시장을 한참 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어디선가 서툴게 "안녕하세요"하는 한국말이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한 상점 주인이 웃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사진 찍으라고 한다. 티모르에는 중국인도 많은데 우리가 한국인인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사진 찍으면서 돌아다니는 건 한국인밖에 없어요" 라고 말한다. 티모르 인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2003년까지 동티모르에 주둔했던 우리나라의 상록수부대가 좋은 인상을 남겨놓은 모양이다. 어찌 됐든, 티모르가 한국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바로 타이즈 마켓. 타이즈는 동티모르 전통 직물인데 타이즈로 만든 전통의상, 컵받침, 가방, 필통 등 여러 종류의 제품이 있다. 사람이 손으로 한 올 한 올 만드는 수공예 작품이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딜리 타이즈 마켓은 타이즈 종류가 많고 값이 싼 편이지만 제품의 질은 알로라 샵이 더 좋단다. 알로라 샵은 동티모르의 여성과 아동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 기구 '알로라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동티모르의 커피, 타이즈 등을 판매한다. 특히
알로라 샵은 2006년 경기도가 '동티모르 여성 직업훈련 및 공예품 전시 센터'로 기증한 장소이므로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딜리 타이즈마켓. 동티모르 전통직물인 타이즈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딜리 타이즈마켓. 동티모르 전통직물인 타이즈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딜리 타이즈마켓에서 파는 타이즈로 만든 가방
딜리 타이즈마켓에서 파는 타이즈로 만든 가방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우리는 시간상의 문제때문에 딜리를 더 둘러보지 못했지만 딜리 시내 가까이에는 동티모르의 아픔을 간직한 산타크루즈 묘지가 있다. 산타크루즈 묘지는 1991년 11월, 평화시위를 벌이는 동티모르의 군중을 향해 인도네시아 군이 저지른 학살로 희생당한 약 200명의 딜리 시민들이 잠든 곳이다. 동티모르는 1975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으나 바로 그 해 7월에 인도네시아로부터 강점당했다.

이후 티모르인들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저항했다. 그러나 1991년 인도네시아 정보원이 세바스티앙 고메즈라는 소년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딜리 시민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소년이 묻힌 산타크루즈 묘지까지 행진하며 평화시위를 벌였는데 그 때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산타크루즈 학살사건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4·19 혁명도 김주열이라는 소년의 죽음이 시발점이 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동티모르의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를 듣고 나니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이룩하기 힘든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동티모르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밥값 2번이나 낸 동티모르 식당... 드디어 로스팔로스에 도착하다

 딜리 현지식당에서 먹은 동티모르 현지식.
딜리 현지식당에서 먹은 동티모르 현지식.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한참을 돌아다니다 점심 때가 되어 현지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티모르의 식당들은 대부분 창가에 음식들을 진열해 놓고 팔기 때문에 어느 식당에서 어떤 요리를 파는지 알 수 있다. 음식 가격은 미화 1달러~2달러 정도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는 음식값을 선불로 지급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니까 식당주인이 음식값을 내고 가라며 붙잡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음식값을 내려고 할 때 주인이 다른 일로 정신없어 하길래 종업원에게 대신 지불했었다. 아까 전에 음식값을 받았던 종업원은 배달을 나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식당 안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우리의 답답함을 해결해 줄 사람도 없다. 식당 주인은 계속 돈을 내라고 하고, 우리는 아까 전에 냈다며 손짓 발짓 섞어가면서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주인은 우리가 돈을 낼 때까지는 놓아줄 기세가 아닌 데다 식사 중이던 현지인들도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더러는 주인과 뭐라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다 괜히 봉사활동 시작하기도 전에 큰 소란을 일으킬까 싶어 음식값 6달러를 마지못해 지불하고 나왔다. 좀 씁쓸하긴 하지만 주인이 아닌 종업원에게 돈을 지불한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우리의 과오를 인정하고 딜리에서의 좋지 않았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돈에 관한 문제는 뒤끝 없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버스 안에서 찍은 딜리에서 로스팔로스 가는 길.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길을 5시간 동안 달리면 로스팔로스에 닿는다.
버스 안에서 찍은 딜리에서 로스팔로스 가는 길.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길을 5시간 동안 달리면 로스팔로스에 닿는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봉사단이 이번에 활동하기로 한 장소는 딜리에서 차로 5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라우템 주의 로스팔로스 시. 전 국토가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 크기이긴 하지만, 고속도로도 없고 딜리에서 로스팔로스로 연결되어 있는 길이 딱 하나 뿐이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 5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래도 그 길이 외국인을 위해 동티모르에서 유일하게 포장해 놓은 도로라고 한다. 하지만 도로는 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고 산이나 언덕 같은 험지를 지날 때는 차가 덜컹거리면서 한 쪽으로 기우는 곡예운전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험한 길을 달려 오랜 여정 끝에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로스팔로스 시에 도착했다.

봉사단이 머물게 된 곳은 NGO 단체인 지구촌 나눔운동이 개관한 라우템 주 공공도서관. 봉사단은 로스팔로스에서 지내는 동안 도서관 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도서관 안에 짐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들이 신기한지 마을 아이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도서관 안에 있는 우리를 쳐다보니 마치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된 기분이다.

저녁식사는 현지인 아주머니께서 지어주신 현지식을 먹었다. 현지식은 주로 인도네시아 전통 국수인 미고렝, 야채 수프, 그리고 풀기 없는 인디카 쌀로 지은 밥이다. 우리가 사용하게 된 화장실은 너무 좁아 한 사람이 들어가 씻기도 힘든 데다 17명이 제대로 씻을 수 있을 만큼 물이 충분치도 않다. 다들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화장실 밖에서 대충 세면을 했다. 어느덧 밤이 되자 도서관 바닥에 준비해 간 장판을 깔고 침낭을 펴고 누웠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모기장 텐트는 너무 작은데다 수량이 많지 않아 몇 명은 모기장 밖에서 자게 되었다. 내일은 여태까지 준비해 온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는 날이다. 벌써부터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까,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뒤척이며 로스팔로스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아름샘 봉사단의 숙소로 사용하게 된 라우템 주 공공도서관. 라우템 주 최초로 세워진 도서관이라고 한다.
아름샘 봉사단의 숙소로 사용하게 된 라우템 주 공공도서관. 라우템 주 최초로 세워진 도서관이라고 한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아름샘 봉사단의 봉사활동계획표
아름샘 봉사단의 봉사활동계획표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로스팔로스에서 맞는 첫날 밤. 바닥에 장판을 깔고 침낭을 펴고 누웠지만 내일 만날 아이들 생각에 한참을 뒤척거렸다.
로스팔로스에서 맞는 첫날 밤. 바닥에 장판을 깔고 침낭을 펴고 누웠지만 내일 만날 아이들 생각에 한참을 뒤척거렸다.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덧붙이는 글 |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덧붙이는 글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경원대학교 #아름샘 #해외봉사 #동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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