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 '만화로 세상 보기 강풀과의 문화 데이트'에서 수강생들이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유성호
강풀이 대학시절 총학생회 간부를 하다가 만화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94학번으로 상지대 총학생회에 몸담으면서 학생들이 대자보에 무관심한 학생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만화대자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그린 만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후 민중만화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지금은 "만화 그리는 게 너무 좋아져서, 이제는 안 그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 그의 작품은 이런 민중적 뿌리에서 묻어난 것이다. 결국 그런 역사 때문에 그에게 '좌파 만화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강풀은 짧은 강연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할애했다. 그는 "2002년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고, 그 뒤로 전교조, 딴지일보, 참여연대에서도 활동했으니까 그걸 보고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그런 활동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생각에서 한 것이지 좌파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때는 노빠(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 만화가라는 소리도 들었다"며 "실제로 노사모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탈퇴했다"고 밝혔다. 강풀은 "탄핵사태 때도 만화를 그렸고, 그 후로 무슨 만화를 그려도 그런(노빠라는) 식의 해석이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그분을 정말 존경하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마음에 담고 있다"며 "한때는 내가 왜 '노빠'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좌파'니, '노빠'니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고,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강풀은 항상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이런저런 논란을 겪어왔다. 그의 최근 작품 <당모순>에서도 유독 노란색이 많이 쓰여 논란이 됐다. 그는 "<당모순>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오해"라며 "만화의 재미를 거스르면서까지 그런 의미를 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만화를 재미에 목적을 두고 그리지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며 "다만 <26년>에만 다른 목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정치이야기 많이 해야 한다"그의 작품 <26년>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자녀들이 모여 당시 끔찍한 학살을 일으켰던 장본인을 암살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2003년 누군가가 '통장에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사흘 동안 꼬박 시나리오만 썼다"며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런다고 그때의 본질이 잊혀서는 안 된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그 일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6년>이 나간 이후에 상당한 협박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그런 게 있어 은근히 화제가 되길 바랐지만 없었고, 말로 담지 못할 욕을 하는 전화는 몇 통 받았다"고 전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크리스천이다. 예전부터 꼭 만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개 있었는데, '어린예수'에 대한 것과 바로 <26년>이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재능)라고 생각한다. 그 재능을 가지고 <26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처음에는 <23년>으로 썼다가 2년 동안 겁이 나서 하지 못했다. 결국 결혼을 앞두고 '결혼하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게 됐다. 큰 협박은 없었다. 잘못돼서 소송이 걸리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 일본으로 튈 생각도 하고 준비도 해놨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강풀의 <26년>은 <29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될 뻔했으나 최종 촬영 돌입 단계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당시 출연배우와 감독, 스텝까지 모두 섭외된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돼 정치적인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강풀은 자신에게 쓰인 편견에도 앞으로도 사회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계속 그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야기는 교수님이나 정치인쯤 되는 뭔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한나라당 비판하면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하는 식이다. 하지만 정치만큼 우리 일상과 밀접한 게 없다. 정치를 잘 못해 전셋값이 오르고 등록금이 오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고, 나는 그걸 만화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대사>는 할머니가 내게 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