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시작하며...

[인터뷰] 경기도 안성농민의원 이인동 원장

등록 2011.03.07 20:00수정 2011.03.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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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선비, 지방에 근거를 두고 새 시대를 도모하는 은둔한 학자가 떠오른다. 깔끔하게 다린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갓 쓰고 정좌해 독서를 하거나, 사랑에서 지역의 숨은 브레인들과 모여 나라의 앞날을 도모할 것 같다. 말이 많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으며, 떠들고 즐기는 일을 삼간다. 허투루 말을 던지지는 않지만 잘못된 일들 앞에서 쩌렁쩌렁 호통 치기에 머뭇거림이 없다.

 

강직한 선비의 면모를 가진 이 사람은 안성농민의원 이인동(51세) 원장이다. 평소에 오가며 인사는 했지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기운이 온몸에 풍겨 왠지 어렵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숨겨진 부드러움이 강물처럼 흐른다. 반백의 그의 머리카락이 가벼우면서도 곧고, 부드러우면서도 정직하다.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이인동씨가 안성에 처음 온 것은 87년도이다. 연세대 기독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고삼면 가유리로 의료봉사를 나오게 되었던 것. 졸업 후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그는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했다. 의사로서의 도덕성이 그즈음 그의 화두였다. 농민회도 없던 시절, 의료봉사단과 가유리 청년회 사이에서 함께 무언가 꿈꾸고, 무언가 이뤄보자는 결의가 세워졌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협동조합의 방식을 빌어 출범한 안성의료생협이다. 전국 최초였다.

 

의사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삶으로 방향을 잡을 때 갈등이 없었을까? 이인동 원장의 대답에 머뭇거림이 없다.

 

"나를 희생한다는 느낌 같은 건 없었어요. 의료생협 의사여도 보통 의사들처럼 취직 걱정이나 돈 걱정에서 자유로운 건 마찬가지에요. 보통 의사라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런 차원에서 보면 생협 의사들보다는 다른 직원들의 희생이 더 컸죠. 희생이라 생각하면 그 누구도 평생을 걸기가 어려워요."

 

분명하고 깔끔하며 자기연민이 전혀 없는 대답이었다. 

 

이인동씨는 더불어 95년 창립된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대표이기도 하다. 시민모임은 백성교회를 다니던 이들이 성서를 읽으며 발심했다고 했다.

 

"다들 생태맹이었는데, 그즈음 세 차례 안성천 탐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강의를 듣고 탐사를 하면서 생태의 중요성을 처음 인식했어요. 생태가 단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 삶의 모든 분야와 다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그 과정에서 환경단체를 만들어 지역에서 역할을 해보자는 마음이 모였던 것이지요."

 

이인동씨는 시민모임의 회의와 행사에 참여하며 정신적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의료생협과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은 그가 안성에 일으킨 두 개의 큰 봉우리이다.

 

이인동씨는 현재 농민의원 근무시간을 주 30시간으로 줄였다. 까닭을 물으니,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생협도 길어야 십 년쯤 하겠죠. 그럼 지금의 평균 연령을 감안하면 20~30년의 생이 남았는데, 노후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노후의 새로운 설계를 위해 그는 준비작업에 들어간 듯 보였다. 이인동 원장이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는 앞으로의 설계들이 퍼즐처럼 한 조각씩 흘러나온다.

 

"아직은 막연합니다. 도심이 아닌 외곽에서 사회에서의 나쁜 습관들을 고치고, 사람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좋은 환경에서 삶을 돌아볼 수 있고, 동시에 또 다른 방향성을 가진 치료적인 접근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말이죠."

 

그럼 이 다음에 안성을 떠나실 수도 있느냐 물었다. 그러자 "안성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한다.

 

"안성은 사회활동을 하기에도, 무엇을 벌이기에도 사이즈가 적당하다는 느낌입니다. 도시도 아니고, 복잡하지 않고……. 나는 안성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서울 출신 도시내기는 안성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안성은 생의 중요한 건설들을 다 이룬 곳이다. 그는 도시나 중앙을, 중심을 싫어한다.

 

"원래 반골 기질이 있습니다. 항상 마이너리티에서 활동하죠. 가능하면 비주류에 머물려고 하구요."

 

'반골'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인동 원장은 메이저리그를 뛰지 않는다. 그의 주 활동 공간은 여기 안성이며, 저기 비주류다. 협동조합의 의사로서의 그의 생이 그렇고, 시나 관으로부터 일체의 돈을 받지 않고 십수 년 자립적 운영을 이룬 시민모임 또한 그렇다. 그런 이인동 원장은 2003년 소각장 문제가 터졌을 때 11일 동안 단식을 했다. 지역에 옥석 같은 '사회지도층'이다.

 

의료생협이 일반적인 병원과 어떻게 다를까 물었다.

 

"일단 주인이 다른 거죠. 의사나 법인이 주인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인인 거죠. 주인이 다르니 운영방식, 정책적인 차이가 생겨나겠지요? 정직하게 운영할 것이고, 환자가 중심이 되는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일반인들이 양질의 진료라는 걸 피부로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전문적인 영역이니까. 과잉진료, 무리한 진료가 아닌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적절한 처지에 대한 차이를 일반인이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재 의료생협은 일반적인 병원과의 차이를 수치화하기 위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종의 사회회계를 내어보는 것이다. 항생제나 스트로이드제, 주사제 사용, 1인당 진료비 등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는 이번의 작업으로 안성의료생협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수치로 환원되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인동 원장은 환자와 조합원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처음에 3백 가구에서 시작했던 조합원 수가 지금 3천 8백 가구 정도로 열 배가 늘었지요.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는 의료생협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심각한 잡음 없이, 별다른 일탈 없이 나아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처음의 정신을 잃지 않고 가는 것이 중요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는 구속이 있음에도, 창립 초기의 정신이 희석되지 않고 점점 강화되어가야 합니다."

 

이즈음 이인동 원장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그것이다. 안성의료생협의 임원들이 주도적으로 나선다. 1인당 1만1000원의 보험료를 더 납부해, 50%대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90%까지 올리자는 운동이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어떤 경우에도 모든 병원비에 대한 본인부담을 100만 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결국 궁극적으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일을 없애는 것이다. 신기한 이야기였다.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는 의료, 공공의료의 실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그동안 깨닫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하나로 시민회의는 현재 전국적으로 발기인 백만 명 모집을 목표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주요 이슈화될 거예요. 건강권은 기본권입니다. 개인에게 맡길 일이 아니지요. 민간의 의료보험에 의존해 개인에게 건강의 모든 부담을 돌리는 것은 미국식이죠."

 

하지만 그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간보험기업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로비 등의 갖은 방법을 써서 저지하려고 할 겁니다. 기업들도 건강보험료 부담이 더 늘어나니 좋아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대만 같은 경우, 국가가 중소기업의 건강보험비를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에요. 반대할 수 있겠지만 대놓고 보면 불이익이 없습니다. 돈과 상관없이, 소신껏 환자를 진료할 수 있으니 의사들에게도 좋은 거죠."

 

이인동 원장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운영은 비교적 효율적이지만 보장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미국을 제외한 OECD국가들의 평균 보장률은 70~80%대로 우리보다 높아요. 대만도 70%에 달하죠. 건강보험료가 가계지출의 5% 남짓인데,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납부해 보장성을 올릴 수 있습니다. 민간의료보험에 투자하는 돈이면 이를 실현하고도 남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의 공공성과 정당성은 명백하다고 그는 단호히 말했다.

 

"부인이 직장암에 걸려 두 차례 수술을 한 가정을 보았어요. 병원비가 1억에 좀 못 미치더군요. 그러니 가계가 휘청합니다. 입원하면 가장 큰 일이 뭔지 아세요? 간병이에요. 간병비만 한 달에 180만 원이더군요."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12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현재 일반 가정의 60%이상이 한달 민간의료보험료로 20만 원 이상을 납부하고 있다. 수치를 제시하며 이인동 원장은 놀랐다고 표현했다. 그는 민간의료보험을 하나도 안 들었단다. 어떻게 하나도 안 들 수 있나 반문하는데, 누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암 보험 지급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30%입니다. 로또 당첨금 지급률보다 낮아요. 로또는 50%는 지급하거든요. 정선 카지노도 30%, 건강보험도 90%를 지급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비싸게 민간의료보험에 들고 있는 겁니다. 물론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적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민간의료보험을 들 바에는 적금을 드는 게 낫죠."

 

아, 무언가에 속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점점 비대해지는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결국 보험회사와 영리의료기관만을 위한 정책이었다. 의사가 말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듯했다. 

 

이인동 원장은 다방면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사진도, 기타 연주도, 노래도 수준급이다. 세상이 평안했으면 시, 서, 화를 즐기고 자연을 벗삼아 평화롭게 한생을 소요했을 법도 하다. 그는 또 혼자서 연구하고 학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밖으로 나서기보다는 끌어당겨 안으로 이끈다.

 

그는 예전에 차갑고 호통 잘 치기로 악명이 높았다. 환자에게 야단치는 무서운 의사였던 것이다. 나쁜 생활습관을 고치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고 한다. 그게 싫어서 안 오는 환자도 있었다는데, 그런 방식을 3, 4년 전부터 바꾸었다. 호통으로 변화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의사 앞에서 그저 약자일 뿐인 환자를 부드럽게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까닭이다.

 

이 강직하고 무서운 의사 이인동 씨가 이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앞장선다. 안성에서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일으켰던 그의 일생이 또 하나의 큰 화두를 만났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며,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가 아닌, 진짜 의사가 나서는 운동. 아무리 뒤져봐도 반대할 명분이 없는 이 흐름에 몸을 담아보자! 이 강직한 선비가 추진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옳을 것 같다.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없는 정말 좋은 세상을 위해 이인동 원장이 다시 도포자락 휘날리며 길을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2011.03.07 20:00ⓒ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하나로 운동 #건강보험 보장성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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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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