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관 찾아라"... 정보부 타격 나선 이집트인들

[이집트는 지금] 잿더미 된 각 지역 정보부 빌딩...군 "탈취 서류 반납해야"

등록 2011.03.08 15:33수정 2011.03.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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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인들은 차량에 '분노의 날'인 1월 25일을 기념하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차량에 '분노의 날'인 1월 25일을 기념하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 서주

이집트인들은 차량에 '분노의 날'인 1월 25일을 기념하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 서주

3월 5일은 "지난달 괴한들에 의해 시나이반도 북부의 가스관이 폭파된 이후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에 천연가스가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도 이집트인들의 관심 밖에 있던 하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인들은 오랜 숙원이던 '무바라크맨들을 눈앞에서 치우는 일'을 막 해치운 뒤였기 때문이다.

 

토요일이던 이날 이집트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차량들은 '분노의 날'인 1월 25일을 기념하는 스티커를 차창에 붙이기 시작했다.

 

새 총리로 임명된 에삼 샤라프에 대해서는 그가 전직 교통부 장관이었고 무바라크의 눈에 나서 지위를 박탈당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사항이 없다. 그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조차도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간에 '반무바라크맨'이 된 그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가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죠?"

"그야 간단해요. 또 갈아치우면 되거든요."

 

나의 질문에 사람들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나는 '대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대중 다수의 시위'가 전 국민이 누려야 할 민주주의를 대변할 수 있는지 잠깐 의구심이 들었다. 이집트는 농업국가인 데에다가 농부들은 정치보다는 안정을 원하며 잦은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난달 CNN에서 무바라크의 고향인 시골 농촌마을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무바라크를 자랑스러워 했으며 사랑한다고 했다. 무바라크의 처인 수잔의 고향(그녀는 지방의 대도시 미니아 출신이다)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들이었다. 미니아에서는 무바라크 퇴진 직후 그 어느 곳보다도 먼저 "수잔의 이름이 붙은 로터리와 도로와 학교들을 개명"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오늘의 이집트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대도시의 '과반수는 넘지만 전부는 아닌' 시위참가자들이 '좀 더 안정적인 방법과 방향으로' 시국을 이끌어갔으면 한다. 지나치게 급한 변혁에 머지않아 대중은 질리고 말 것이다.

 

국민의 피를 빤 대통령 일가에 민중은 폭발했다

 

3월 6일 쿠웨이트발 뉴스가 이집트 축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이 이스라엘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대가로 이집트가 얻는 수익대금의 10%를 요구했다는 서류가 발견되었다고 <알 자리다 데일리>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누구한테 이 정보를 얻었는지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계약서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2008년 2월부터 향후 15년간 이 계약의 내용은 유효하다고 되어 있으며, 같은 해 12월 계약기간은 20년으로 연장되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저임금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대로 오른 이집트 국민들은 이 뉴스에 전방위로 폭발해 버렸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이집트는 한 주의 시작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국가안전부(EGID) 건물'에 대한 시민들의 테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카이로 인근의 6 옥토버시티에서도, 이집트 남부의 지방도시들에서도 '국가안전부 건물'과 소유지들, 그리고 경찰차들이 시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시민들은 특히 '지난날 자신들을 고문했던 관리들의 행적'과 관련된 서류들이 소각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아 있는 증거물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매스컴들은 일제히 잿더미가 된 각 지역의 국가안전부 빌딩과 사무실들을 보도했다. 군 당국에서는 '혹시라도 탈취한 서류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일 수 있으니 모두 군에 반납하라'며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단 한 장 한 글자라도 '자신들을 핍박했던 증거'들을 잃을까 찾아내기에 열중했고 획득한 것들은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카이로의 내무부 빌딩을 에워싼 시위대를 향해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총과 칼을 들고 위협했다는 보도가 <알 마스리 알윰>신문을 통해 흘러나왔다. 카이로 시민들은 시위진압에 살상무기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 정부에서 동원한 자들인지 아니면 친 무바라크 잔존세력들인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은 없다.

 

하지만 오늘도 이집트는 이로 인해 진통할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 고문과 인권 유린으로 상처입은 이집트인들이다. 살상이라는 단어에 무력진압이라는 단어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카이로의 현주소

 

 이집트 카이로의 거리 풍경. 바로 스무 시간 전에 총격이 벌어진 장소와 같은 시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전경이다.

이집트 카이로의 거리 풍경. 바로 스무 시간 전에 총격이 벌어진 장소와 같은 시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전경이다. ⓒ 서주

이집트 카이로의 거리 풍경. 바로 스무 시간 전에 총격이 벌어진 장소와 같은 시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전경이다. ⓒ 서주

하필이면 시내에서 그것도 총칼로 무장한 사람들이 시민들을 공격했다는 말에 나는 선뜻 출근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회사직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카이로 시내의 안전을 무려 한 시간이나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오늘 정상 출근을 할 수가 있었다. 시민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오늘 시내의 지하철과 도로들은 몹시 한산했다.

 

타흐리르에서 '어제의 총격사건'에 대하여 항의를 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나는 얼른 앞만 보고 뛰어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불과 두 블록 너머 노천카페는 시내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거리의 상점들은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바로 스무 시간 전에 총격이 벌어진 장소와 같은 시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전경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카이로는 안전한가. 나는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립니다. 트위터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1.03.08 15:33ⓒ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립니다. 트위터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집트민주화 #서주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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