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서평] 성불구자도 스님이 될 수 있을까?

등록 2011.03.08 16:10수정 2011.03.08 16:10
0
원고료로 응원
a  일기에나 쓸 만한 은밀한 이야기는 없지만 까치발을 딛고 들여다보는 승가의 담장 안 풍경정도는 충분히 그릴 수 있을듯합니다.

일기에나 쓸 만한 은밀한 이야기는 없지만 까치발을 딛고 들여다보는 승가의 담장 안 풍경정도는 충분히 그릴 수 있을듯합니다. ⓒ 임윤수


드러내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스님들의 세계가 많이 궁금했습니다.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스님들의 생활이 아닌 스님들만의 세계, 스님이 되어야만 경험하거나 알 수 있는 일상이나 과정들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스님이 되려면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본인이 원하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스님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스님이 되고, 스님이 되면 어떤 일들을 하며 생활을 하는지 등 말입니다.


출가를 결행할 주제가 되지 못하니 정색을 하고 물어보기가 그래 그냥 궁금증으로만 가지고 있던 차에 답을 얻었습니다. 비구니 원영스님이 쓰고 불광출판사에서 출간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원영스님 저, 불광출판사 펴냄)에 바로 그 답이 있었습니다. 가려운 곳을 콕콕 집어 손톱으로 구석구석 긁어주듯 시원스런 답과
전거(典據)들이 줄줄이 들어 있었습니다.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30대 비구니 스님이 출가하면서 경험한 일들과 그 일과 관련한 일들을 담백하게 정리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뜬구름 가리키듯 애매모호하고 관념적인 내용들이 아니라 스님이 돼서 살아가는 이야기,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사는 이야기가 독자를 맞이 합니다.

책을 통해 출가수행자가 되려면 반드시 건너야 했을 이런저런 과정을 간접으로나마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대개의 스님들이 감내하거나 극복했을 애로사항과 진솔한 내용들이 겨울나무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촘촘합니다. 

출가의 조건 10가지... 성불구자 및 동성애자는 스님될 수 없어

책에서는 출가자의 열 가지 조건인 차법(遮法)과 이 차법에 13가지의 조건을 더한 '사분율'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금욕생활을 전제하고 있는 승가에서 성에 관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고 있을까요? 성 불구자도 스님이 될 수 있을까요? 답은 '될 수 없다' 입니다.


황문(黃門)은 성불구자 및 동성애자를 말한다. 승가는 성(性)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원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불구자의 입단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이 성불구자의 범위는 선천적인 성불구자뿐 아니라 자라면서 거세를 당한 경우도 포함되며, 다른 이의 성행위를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성기가 일어나는 경우, 직접 피부에 닿는 접촉에 의해서만 성기가 일어나는 경우에도 성불구자로 보았다. … 중략… 또 보름 정도는 남자 노릇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보름 동안에는 성욕으로 인한 아무런 신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불구자로 간주하여 승가는 이들의 입단을 거부했다고 한다.

동성애자의 경우 남과 여로 나뉘어 집단생활을 하는 승가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구분의 어려움 등의 고민으로 출가에 제한을 두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a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글 원영스님 / 불광출판사 / 2011-03-02 / 12,800원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글 원영스님 / 불광출판사 / 2011-03-02 / 12,800원 ⓒ 임윤수

책에서는 출가자가 되어가는 과정인 수계, 출가자를 이끌어 주고 지도해 줄 화상(은사스님), 출가수행자들의 집단인 승가, 출가자가 되어야만 경험 할 수 있는 탁발, 법문 등에 대한 의미와 그것들이 유래하게 된 제도적 배경 등이 전거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금하는 율이 나오면 언제, 어떤 일이 있어 그런 행동이나 일을 금하게 하였다는 것을 유래와 전거로 설명하고 있으니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이건 왜 금지하고 있지'하며 가졌던 궁금증들이 말끔하게 해소됩니다.

일기에나 쓸 만한 은밀한 이야기는 없지만 까치발을 딛고 들여다보는 승가의 담장 안 풍경 정도는 충분히 그릴 수 있을듯 합니다. 세속에서는 흔히 친구라고 하는 도반에 대한 내용도 소개되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 추억의 저편에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걱정 듣던 기억도 있고, 벌레를 무서워해 소름이 돋아가며 배추밭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벌레를 잡고, 또 잡은 배추벌레를 조심스레 방생해 주던 기억도 있다. 절에서 일하시는 거사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다가 와장창 넘어져 무릎이 깨진 적도 있고, 달밤에 몰래 나가서 라면 끓여 먹다가 들킨 적도 있다. 아침 공양시간에는 발우 펴다가 졸아서 밥을 못 받아먹은 적도 있고…, 사건과 사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더러는 훌륭한 기억도 있다. 『화엄경』80권 사경, 무릎 관절이 망가지도록 한 절 기도 등… 중략

구도의 길 위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런 도반의 말 하 마디는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하고, 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기도 한다. 도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성숙시키고, 긍정의 씨앗을 뿌려 물을 주고 꽃을 피운다는 것을 나는 안다.중략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출가자에게 금전도 사용하지 말고, 통장도 갖지 말며, 카드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타당한 요구일까? 만일 그것들이 전부 위법이라고 한다면, 스님으로 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자연히 승가도 무너질 것이요, 한국 불교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다. … 중략

그렇다면 과연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을 만한 승다운 행동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승가에는 여러 가지 처지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관이나 사유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게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출가자들에게 통일된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규제, 즉 승가 내의 법률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제정된 것이 바로 율이다.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을 만한 승다운 행동을 위해 공공의 규범으로 율이 제정된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한국불교, 계와 율, 법에도 신경 좀 써야

저자인 원영스님이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통하여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과거가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인도에는 율이 있었고, 중국에는 선원청규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는 종헌종법이 있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인도의 율을 받아 정식 출가자가 되고, 선원에 가면 선원청규에 의지해서 생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든 스님들이 종헌종법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중략

한국에서 출가한 스님들이 한국 불교를 구성하는 것처럼, 한국 불교의 역사가 한국의 스님들이다. 혼돈의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진정 가치 있는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계와 율, 법에도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마무리 글, '계와 율, 법에도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를 어느 스님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계와 율, 법에도 신경 좀 쓰는 한국불교'가 되기를 진심으로 고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글 원영스님 / 불광출판사 / 2011-03-02 / 12,800원


덧붙이는 글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글 원영스님 / 불광출판사 / 2011-03-02 / 12,800원
#원영스님 #불교 #불광출판사 #황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