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과 볼링에 빠진 남자

[현장에 산다⑧] 사업실패 딛고 형제들과 중화요리집 운영하는 장혁진씨

등록 2011.03.14 10:33수정 2021.07.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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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과 볼링은 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형길(36)-문호(34), 두명의 동생들과 함께 중화요리집을 운영중인 장혁진(41·짜장나라)씨는 세상누구보다도 자장면과 볼링을 사랑하는 남자다. 30살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준 은인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 비록 또 다른 꿈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이 두가지 다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벗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제가 중화요리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사실 장혁진씨는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조각가 지망생이다. 재학시절 과학생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학업에 열성이던 그는 전공을 살려 일찍부터 디자인 쪽으로 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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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면발처럼 긴 인내심으로 젊은 날을 불태우고 있는 장혁진씨. ⓒ 김종수

자장면 면발처럼 긴 인내심으로 젊은 날을 불태우고 있는 장혁진씨. ⓒ 김종수

하지만 사회에 갓 발을 딛었던 패기와 달리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야심 차게 추진한 '실내 인테리어 컨설팅'등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신용불량자가 될 정도로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던지라 지금도 당시만 생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어요."

 

현실도 어려웠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더욱 힘들었던 시절, 장혁진씨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앞날을 장담하기 힘든 디자인 쪽에 대한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밑바닥부터 다시 뛰기로 한 것.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던지라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30살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장혁진씨는 주저하지 않고 중화요리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부터 개인 시간은 없었다. 낮에는 배달통을 들고 열심히 시내를 누비고 다녔고 조금만 시간이 남으면 주방보조를 하며 요리 연마에 몰두했다.

 

다행히 운도 따랐다. 처음에는 자신 포함 주방 보조만 5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떨어져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끈질기게 버틴 끝에 짧은 시간 내에 부주방장까지 치고 올라 갈 수 있었다. 워낙 고된 일의 연속이었던지라 많은 이들이 중간에 포기했지만 당시의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 아니면 도였죠. 수없이 때려 치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마저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다행히 중화요리와 그의 궁합은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기쁨이 느껴지는 등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자신감도 점점 붙어갔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형제들을 불러모아 현재의 가게를 시작했다.

 

"솔직히 부담도 됐죠. 전에 사업을 하다 잘 안된 경험도 있고 또 동생들까지 끌어들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그 피해가 클 수 있잖아요."

 

가장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기술과 운영을 배웠던 탓이었을까,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결과 가게는 예상보다 빨리 자리를 잡게 됐다.

 

장혁진씨는 이러한 과정에 볼링도 한몫했다고 믿고 있다. 처음 가게를 시작했을 당시 그가 생각한 것 중 하나는 '건강'이었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어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뭔가 활력소가 필요했다.

 

"볼링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운동과 오락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체력관리는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장혁진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형제들과 볼링을 치며 건강도 챙기고 형제 간의 우애도 돈독히 했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마주치고 웃다보니 성격은 더욱 밝아졌고 지인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그는 주방장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모임을 하고 있는 편인데 볼링은 그러한 활동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 꿈요? 물론 지금도 있죠.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모으면 학창시절 특기를 살려 조각전을 열고 싶어요. 하지만 조강지처라고 할까요. 자장면과 볼링공은 놓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핫…"

 

자장면 면발처럼 긴 인내심으로 젊은 날을 불태우고 있는 장혁진씨. 그는 오늘도 '노력'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호쾌한 '인생의 스트라이크'를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디지털김제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3.14 10:33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디지털김제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30부터 #짜장면 #볼링 #형제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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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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