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경고, 이 대통령 원전 비즈니스 욕심 버려야

[정욱식 칼럼] '평화적 핵 이용' 동의했던 거, 후회합니다

등록 2011.03.14 18:54수정 2011.03.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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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K-TV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가 14일 오전 11시 8분 수소폭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NHK-TV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가 14일 오전 11시 8분 수소폭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NHK-TV

대지진과 쓰나미를 맞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고는 '핵 숭배주의'에 익숙한 인류 사회에 어떤 교훈을 던져줄까?

대부분 원전 선진국들은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며 기존의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할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원전 1류 선진국으로 불려온 일본에서의 사고는 핵 에너지에 대한 전면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틈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원자력이 후쿠시마 사고를 거치면서 '핵과 인류의 미래가 양립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핵의 평화적 이용은 불가피"라고 주장했지만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핵에 대해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화운동가로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지대, 그리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원하고 있고, 또 이를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해왔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여겨왔고, 북핵 문제 해법으로도 북한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참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 

인류사회가 발전시켜온 과학기술이 대개 그렇듯 원자력도 '무기'에서 출발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핵무기를 손에 넣은 미국은 원자력을 '기적의 힘'이라고 부르면서 원전 건설로 전력 생산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도 원자력을 일컬어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극찬했다.

원자력이 핵무기로 전용되는 것을 막는다면, 그래서 자신들의 핵 독점 체제를 유지하면서 전력 생산용으로 전환한다면 인류사회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갖게 되고 이를 주도하는 국가들은 '돈방석'에 앉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이처럼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열망'과 핵무기라는 인류 절멸의 무기가 가져온 '공포'는 급기야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라는 구상을 낳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2월 8일 유엔 총회에서 "인간의 경의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공포의 무기' 핵은 '기적의 에너지'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죽음과 생명의 경계 허물어져


 지난 2005년 1월 7일 고리 1~4호기가 있는 고리 원자력 본부 정문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핵은 죽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005년 1월 7일 고리 1~4호기가 있는 고리 원자력 본부 정문 앞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핵은 죽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조혜진

그러나 아이젠하워가 말한 '죽음'과 '생명'의 경계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원전에서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의 원자력 선진국으로 자부했던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를 겪고 나서야 '원전 의존형' 에너지 정책을 수정했다. 미국과 함께 양대 핵 강국이던 소련에서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해 지금까지 1만 명가 정도 목숨을 잃었고, 사고 발생 지역은 아직도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다.

이 사고로 충격을 받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면서 체르노빌 참사를 '신사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많은 나라들 역시 체르노빌 참사를 보면서  핵 '무기'뿐만 아니라 핵 '발전'도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원전 확대 계획을 자제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지구 온난화라는 인류 사회의 또 하나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원전은 또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에 대한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고, 후발 국가들을 상대로 원전 수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한국의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원자력 보유를 강성대국론의 핵심 목표로 삼고 있는 세계 최빈국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

후쿠시마 참사는 바로 이와 같은 '핵을 향한 질주'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원자력 선진국들인 미국과 소련에 이어 일본에서도 대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자만심에 대한 경고다. 개발도상국들에 원전을 수출하고 이를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일부 국가 지도자들의 '책임성(accountability)'을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핵으로 인한 자유'에서 '핵으로부터의 자유'로

 삼척시내에 걸려 있는 원자력발전소 유치 지지 현수막들. 반대 현수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현수막들 모두 불법으로 내걸린 것들이지만 철거가 되지 않고 있다.
삼척시내에 걸려 있는 원자력발전소 유치 지지 현수막들. 반대 현수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현수막들 모두 불법으로 내걸린 것들이지만 철거가 되지 않고 있다.성낙선

지금까지 많은 나라는 '핵의 자유(freedom of nuclear)'를 추구해왔다. 그것이 군사적 목적이든, 평화적 목적이든, 핵 능력 확보를 주권국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선진국의 표상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핵전쟁은 물론이고 원전 사고도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미래 세대와 주변국 시민들에게까지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핵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nuclear)'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권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타국의 간섭과 요구에 따라 자국의 권리 행사가 제약받는다는 소극적 인식에서 벗어나, 비핵을 자국의 정체성과 비전으로 삼으면서 이를 지구 차원으로 확산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 변화를 통한 '비핵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무기든, 발전이든 '핵의 폭발'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주권 행사에서 상호호혜적인 연대로의 전환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사안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부족 해결과 지구 온난화 대처 방안으로 핵에 의존하려는 관성을 버리고, 재생 가능한 비핵 에너지의 적극적인 개발과 지구화에 나서야 한다. 개별 국가들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제 공조를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국제비핵에너지기구(International Non-nuclear Energy Agency)'와 같은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립해 지속 가능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원자력의 대안으로 삼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 '원전 비즈니스' 욕심 버려야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간) 아부다비 서쪽 해안의 브라카에서 열린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 참석, 모하메드(오른쪽) 왕세자와 기념동판을 제막한뒤 악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간) 아부다비 서쪽 해안의 브라카에서 열린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 참석, 모하메드(오른쪽) 왕세자와 기념동판을 제막한뒤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해 2010년 창설되었고, 2012년 4월 전세계 50여 국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해 두 번째로 열릴 예정인 '핵 안보 정상회의'는 이를 위한 좋은 논의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이 회의를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 및 핵 테러 예방'이라는 강대국 중심적이고 편협한 목적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핵무기 없는 세계'와 더불어 '핵 에너지의 비핵 에너지로의 대체'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의장으로 나설 이명박 대통령이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대회를 '원전 비즈니스'의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인간의 자신감은 '핵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에서 '핵을 다른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참사가 인류사회에 울리는 경종(警鐘)이자 지혜와 힘을 모아 핵의 시대를 이겨낼 것을 촉구하는 봉화(烽火)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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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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