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겉표지
랜덤하우스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섹스에 중독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없이 살지 못하는 것처럼 섹스 중독자들은 섹스없이 살지 못한다.
섹스 중독자들은 강박적으로 섹스 또는 자위행위에 집착한다. 직장에서도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찾아다니고 자신의 이상형과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섹스 중독자들도 그렇다. 업무시간에도 머릿속이 섹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중독에서 탈출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알코올이나 니코틴에 중독된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처럼.
게다가 섹스는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몸을 심하게 망가뜨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굳이 중독에서 빠져나올 필요도 못 느낄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섹스야말로 인생의 기쁨이니 당당하게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성충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천만에! 세상에 섹스보다 좋은 게 뭐가 있지?
섹스중독에 빠진 남자와 여자들척 팔라닉의 2001년 작품 <질식>의 주인공 빅터 맨시니도 섹스중독자다. 그는 의과 대학을 중퇴하고 박물관에서 18세기 시대 재연배우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부업으로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면서 질식사를 연출해서 손님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빅터가 이렇게 된 것은 치매에 걸려서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 때문이다. 빅터는 형제도 아버지도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빅터는 섹스중독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같은 증세로 고민하는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방식으로 치료과정이 진행된다. 이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성욕은 가히 전설적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로 달려가서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도 있고, 승용차 안에서 기어 변환 레버로 신나게 자위하다가 죽을 뻔한 여자도 있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빅터를 포함해서 이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빅터는 모임에 참가하는 여성 한 명과 모임시작 전에 여성 화장실에서 섹스를 한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모임에서 새로운 섹스파트너를 만난 셈이다.
그러던 어느날, 빅터는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요양병원에서 새로 부임한 여의사 페이지를 만난다. 빅터는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페이지에게 끌리고 페이지는 빅터에게 어머니를 완치시킬 획기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그리고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어머니는 빅터에게 자신의 일기장을 건네며 그 안에 빅터의 출생이 비밀이 담겨있다고 말해준다.
어떻게 섹스중독을 치료할까섹스중독자는 끊임없는 섹스로 생산되는 신체적 화학작용에 의존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르가즘을 느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이 통증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의존하듯이 섹스중독자들은 엔도르핀에 의존한다. 그리고 거기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다. 회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작가 척 팔라닉은 섹스중독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이 작품의 소재를 찾았다고 한다. 독특한 소재처럼 <질식>의 등장인물들도 특이하기만 하다. 빅터는 자신을 한심한 못난이이자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빅터의 친구는 자위행위를 참을 때마다 기념으로 돌덩어리를 하나씩 집으로 가져온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에 중독되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굳이 섹스나 알코올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활자에 중독되고 어떤 사람은 TV에 중독된다. 자신이 중독된 대상에 탐닉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려운 현실을 잊는다. 빅터도 자신의 내면을 짓누르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섹스를 택했을 것이다. 중독이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다보면 피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질식> 척 팔라닉 지음 / 최필원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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