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비상사태선포 미국보다 북에 먼저 알렸다"

'민주·평화·복지포럼' 주최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서 박명림 교수 주장

등록 2011.03.15 10:01수정 2011.03.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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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 직전인 1971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알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 전 대통령이 내세운 '북한의 남침위협', '국가안보', '국가안정' 등의 유신체제의 명분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 권우성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미국의 미공개 비밀자료를 토대로 "박정희는 국가안보와 안정을 유신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국가기밀사항이라 할 수 있는 헌정체제 변화를 사전에 북한에 통고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 같은 조치는 박정희 정권의 자기모순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며 "그 체제 아래서 제정된 법률이 지금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복지포럼'(상임대표 이부영) 주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5·16 군사쿠데타 50년을 맞아 '정치사적 의미',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대한 해석', '사회통제와 저항운동'이란 주제로 각계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 교수는 '한국 군부통치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맡았다.

"'반공태세 확립'은 유신체제 수립의 명분 아니다"

박 교수가 "유신이 북한의 양해 하에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미 국무부의 미공개 비밀문서였다.

그는 1972년 10월 31일 작성된 문건의 내용을 소개하며 "남북조절위원회와 관련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상인 특보를 통해 하비브 주한 미 대사에 남북회담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며 "여기서 김 특보는 '북한측이 계엄령 선포와 헌법개정이 남북회담의 지속과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수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다른 보고서에는 '남한 정부가 박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의지와 집권 연장계획을 미국정부보다 먼저 북측에 알렸을 것'이라는 미국 측의 구체적인 진술도 담겨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북한의 공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대화내용은 이런 사실들을 뒷받침했다. 박 교수가 제시한 미국 측 자료에 의하면 미국정부 관계자와 한 대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김일성의 결정에 영향을 줄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본다면, 공격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 교수는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 대사들과의 모임에서 박 전 대통령이 '김일성이 군사력으로 남한정부를 전복하려는 희망을 포기했으며 봉기를 조직할 것을 목적으로 한 침투를 통해서 한국을 전복하려는 것이 헛된 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단언했다'는 첩보가 미 대사관에 전달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들 문서를 통해 '반공태세 확립'은 유신체제 수립의 명분도 실질도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 명백히 밝혀졌다"고 결론 내렸다.

박 교수는 이어진 발표에서 박정희 시대 헌법들이 소수의 비 선출직, 비국민대표에 의해 제정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신헌법은 전두환 헌법과 함께 건국 이래 사상 최악의 헌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제1조2항)고 정한 것은 대표 및 투표 이외의 주권행사 방식을 원천 박탈한 것"이라며 "대통령을 간선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지명하는 이중 간선을 도입함으로써 국민은 대표 및 정부 구성의 기본권한을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조국 "건국헌법과 임시정부 헌법으로 가야"

a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토론에 나선 조국 서울대 교수는 박 교수의 발표 내용에 공감을 표하면서 " 5·16 쿠데타가 법치주의를 망가뜨린 주요 지점은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입법 증가와 위임입법의 확대"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박정희 정부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을 다 가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천여 개의 법률을 만들었고 그때 만들어진 법안들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 법치의 골간을 형성하고 있는 법안들이 무너진 헌법 체계에서 만들어 진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공, 3공 시대의 헌법이 아닌 건국헌법, 더 나아가서는 '임시정부 헌법'의 민주주의관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며 "건국헌법은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시장경제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임시정부 헌법은 급진적 진보정당과 보수 정당까지 모두 포괄했던 헌법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김재홍 경기대 교수는 "5·16 쿠데타 이후 권력유지를 위해 필요할 때마다 군부대를 동원한 사실상의 병영국가 체제가 지속됐다"며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투신과 같은 극단적인 저항의 정치문화가 유산으로 남겨졌으며 이 때문에 타협과 협상이 아닌 갈등과 대립의 문화가 뿌리내렸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며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를 누가 해야 하는가?"라며 "학자나 지식인들이 볼 때는 억압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아직까지도 가장 인기가 1위"라고 반박했다.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 구도를 예상할 경우 5·16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이 행사도 '학술대회'라고는 하지만 나름의 정치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게 불리한 자리로 본 것이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경제발전에 우월"

학술대회 2부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와 근대화의 해석'이라는 주제의 발제를 맡은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경제 신화'를 비판하며, 보수진영에서 주장해 온 '선경제발전, 후민주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임 교수는 "87년 민주화 이래 민주 정부의 초라한 경제적 실적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많은 권위주의적 발전론자들은 고도성장의 재현을 위해 박정희를 무덤에서라도 불러와야 한다고 선동했다"며 "이러한 '박정희 향수론'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체제보다 민주적 체제가 경제 발전에 우월성이 있다"며 "민주화로 인한 법치주의가 재산권 보호에 있어 권위주의 독재보다 효과적이었고, 또 민주적 책임성이 부패 행위를 억제하며, 국민의 표에 대한 의존성이 '응답성' 즉 국민의 요구에 부흥하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87년 이후 민주정부의 경제 실적은 강건하고 튼튼하고 지속성이 있었다. 9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이것이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았고, 87년의 GDP성장률도 11%로 박정희 시대 평균 성장률보다 높았다"며 "민주정부 통틀어 IMF 시기에 -7% 성장을 제외한 평균 GDP 성장률은 6.28%로 권위주의 시기(1961~1986년) 평균 성장률보다 낮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석훈 2.1연구소 부소장은 이어진 토론에서 "박정희식 국가주도 경제정책이 과연 우파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계획경제는 오히려 좌파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데, 그렇다면 보수들의 주장은 그런 좌파의 것을 많이 들여와야 한다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경제모델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인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경제 모델이 된 한국 경제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조망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삶의 불안정성이 강력한 지도자 원한다"

a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책세미나가 사월혁명회, 6·3동지회,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동아투위 등이 참여하는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박정희 시대의 사회 통제와 저항'과 관련해 발제를 맡은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언론 검열, 문화 통제, 사상 통제, 노동 통제 및 사회의 조직화와 동원 등을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곧바로 내려진 계엄령은 그의 죽음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시민적 논의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청산'의 기회를 장기적으로 유보시켰고 어쩌면 박탈해버렸는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어 "한국의 (박정희 시대를 포함한) '압축적 근대' 속에는 경제적 성취 뿐 아니라 강제적 권력 기술, 저항을 통한 근대를 성취하고자 하는 역량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2000년 이후 박정희 체제가 은폐한 사건 등에 대한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 공론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진실규명 프로젝트의 외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양극화가 강화되고 적잖은 국민들이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리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면, 이런 삶의 불안정성이 강력한 지도력으로 상징화된 박정희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하며 "박정희 모델을 진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발전 패러다임의 제시는 진보개혁 세력에 중대한 정치적 과제다"라고 밝혔다.

최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전 상임대표는 "박정희 정부는 경영안정을 위한 자금 융자, 용지수입관세 인하 등 언론기업에 대한 특혜를 통해 권언유착을 불렀고, 이는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는 현상을 초래했다"며 "이후 언론사는 자본주의 공정 경쟁의 규칙 밖의 존재가 됐고, 왜곡된 특혜집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 전 대표는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며 "우리 국민들이 그런 독재를 다시 허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권노갑 전 의원,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대표를 비롯한 다수의 야당 원로들과 함세웅 신부, 문규현 신부,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특히 유일한 여당 쪽 인사로 이재오 특임장관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유신정권 시기 옥살이를 한 적도 있는 이 장관은 현재 '개헌 전도사'로 불리며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지지세력들의 '개헌 반대론'에 맞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는 토론회를 30여 분간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박정희 #5.16 #이재오 #헌법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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