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조선초중급학교 아이들이 학교는 지금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5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백창화
일본에 지진해일이 몰아닥친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네요. 처음엔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면서 우리들 맘에 두려움과 안타까움도 깊어갑니다. 지금 당장 죽음의 공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들은 일본에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아픔과 고통은 우리 사는 세상, 자연과 이 대지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을 깨우치기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때로 이토록 어리석어서 엄청난 경고가 있어야만 비로소 잘못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인간은 참으로 강인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재앙과 재난을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나는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걸 역사를 통해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웃 나라, 옆 집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우리 안의 이런 연민과 따스함이 어려울 때면 늘 빛을 발하기 때문에 우리 사는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또 희망이 있다고 하지요.
지금 어려움에 빠진 일본을 돕자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 구호와 모금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인데요, 저는 특히 일본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재일동포, 그중에서도 일본과 한국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하여 일본 내 약자이자 힘 없는 소수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학교 학부모들과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는 2005년부터 일본 내 조선학교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영화 <우리학교>, 그리고 정대세라는 축구선수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은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졌지만 조선학교와 그곳에 소속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는 '북한'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물론 '조총련'이라는 조직에서 만든 학교이고 그 조직은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민간 교류를 통해 만나왔던 조선학교 학부모들과 아이들은 단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기 위해 '조선학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식민화했던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싫어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배우고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학교를 지켜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조국은 남쪽도 북쪽도 아닌 분단되기 이전의 나라, 앞으로 반드시 통일되어 하나가 되어야 할 나라를 뜻하며 그렇기에 그들에게 조국은 남쪽이기도 하고 북쪽이기도 한 것입니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을 편들 수 없는...그들에게 조국은 아픈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들의 이런 아픈 현실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조선학교를 유지하고 조선인이길 유지하고자 하는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재일동포들은 누구보다 정당히 일본이라는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도 당연히 혜택받아야 할 교육지원의 기회를 받고 있지 못합니다.
학부모들은 어려운 살림에 학교 운영비를 모아서 어렵게 어렵게 학교를 운영해나가고 있지요. 학교의 살림살이는 어렵기 짝이 없어서 대부분의 학교가 수 십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 과 열악한 교육여건을 견디며 우리 말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네요. 3월 14일, MBC <뉴스데스크>는 센다이에 있는 한 조선학교의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운동장은 갈라지고 학교 건물 곳곳엔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이재민이 된 재일동포들은 갈 곳이 없어서 이 학교에 모여 촛불 아래 밥을 해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있었습니다.
일본 내 상황은 모든 곳이 어렵기 짝이 없겠고 순서대로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시간이 지나 상황을 정리할 때 이런 대재앙 속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차별 지원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일본의 학교들과 똑같은 복구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